못(?)먹는게 아니다. 안먹는거다.
우린 살면서 작고 큰 배신을 당한다.
역사책에 나올법한, 나라를 팔아먹은 무리들 같이 거창한 배신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나름의 작은 인생 살이 속에서 크고작은 배신의 경험을 가지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굳게 믿었던 그 무엇이, 그 약속이나 의리를 저버렸을 때, 흔히 우린 배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 머리속 상상의 세계에서 정의내린 어떤 것이 다르게 보이거나 반대로 다가왔을때도
배신감을 느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느 어린아이는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열탕에 들어간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라는 말을 듣고,
열탕으로 들어갔다가 배신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맞다. 그래 그래. 이것도 일종의 배신이다.
그렇다면, 난 내 인생에 있어 어떤 배신들이 있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배신을 경험하며 우린 살아가는 것일까?
난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개를 먹는 미개한(?) 사람도 있나 싶을 정도로 요즘엔 보신탕 집도, 먹는 사람도 주변에 잘 안보이긴 하지만... 내 어릴적 그때에는 보신탕을 먹는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였다.
일명 멍멍이탕은 우리나라 전통의 음식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기도 하다. 사람을 주인처럼 따르는 일명 충견은 그 역사도 오래된인류의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가족이였지만, 먹기위한 개도 존재했고, 또한 사육되어 온 사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하튼 사육된 식용견을 먹는것이 옳으냐 아니냐의 갑론을박을 떠나서,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보신탕을 난 먹지 않는다. 평생 먹은 적이 없다.
몇살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아마 초등학교 때이거나, 아니면 그 이전에 일일 거다.
아주 먼 친척이 동두천 근처에 있는 연천이라는 곳에 사셨다. 하루는 가족끼리 그곳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말그대로 아주 시골이였고, 전형적인 시골 기와집이였다. 적당한 마당이 있고, 대청마루와 앞문과 뒷문이 있는 그런집 말이다. 흥분된 마음으로 가족과 떠난 여행이였고, 낯선 기와집이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했었다.
앞문을 들어서자, 저 멀리 뒷문쪽에 나름 귀여워 보이는 시골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날 반기는 모습이다.
우선 친척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려 신발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반갑게 우릴 맞이해 주셨고, 인사성이 밝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나는 당연히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라는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할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나를 무릎위로 앉히셨고, 바지 속 비밀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신다.
티나 크래커.
요즘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된 노란색의 동그랗고, 몇개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짭짤한 맛이 일품이 이였던 과자.
티나 크래커를 몇줌 받은뒤 난 방문을 열고, 뭔가 놀게 없을까 하는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문턱에서 신발을 신으며 뒷 문쪽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시골개는 나를 보고 있었다.
신발을 신은 나는 손에 든 티나크래커를 개에게 나눠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인간과 개는 더할나위없는 친구이며,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개를 향해 티나크래커를 내민다. 개는 나와 시선을 맞추고 꼬리를 흔든다.
꼬리를 흔든다......
이건 개가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개가 꼬리를 흔들면 상대방을 좋아하고 반기는 것으로 교육받아왔고 지금도 대다수가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거기에 결정적인 호의적 표현을 개에게 날려 보낸다. "얼레얼레~~"
어떻게 정확히 글자로 쓸수가 없다. 혀를 아랫이와 아랫입술 사이로 왔다갔다 위아래로 흔들며 나오는 이소리는 나에게 오라는 뜻이다. 누가 알려준적도 없는것 같은데, 난 이미 알고 있다. 오랜 인간의 습관적 학습 능력이였을까.
시골개도 알아차린듯 하다.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역시나 꼬리를 흔들며 뛰어온다.
개의 얼굴도 마치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잠시, 난 기분좋은 상상을 한다.
시골개는 나에게 뛰어와 약 2미터 전방에서 뛰어 오를것이다.
개는 내품으로 안기며 나는 시골집 마당에 개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개는 내얼굴을 핥으며 반길것이고, 나는 개와 좌측 3번 우측 3번 빙그르르 돌며,
개와 환상적인 시간을 가질 것이다.
저기 시골개가 뛰어온다.
2미터 전방..
개는 뛰어오른다.
나에게로 뛰어 오른다.
개의 점프력이 모자랐던 것일까...
개는 내 가슴으로 뛰어오르지 못하고..
내 왼쪽 종아리를 힘껏 물어버렸다.
...
난 울지 않았다.
손에 든 티나크래커가 다 뭉개지도록 두손을 꾹 쥐고, 내 밑에서 나를 물어버린 시골개를 바라보았다.
그래... 배신이다.
어떻게 니가 나를 배신할 수 있니.
나는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정말 싫으면 보기 조차도, 가까이 있기도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