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K-Pop 명곡 II, 백일흔넷

음악이 들려오네, 보싸다방 : 찾아가기 EP - 2010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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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 번째 '공연'은
언제였나요?


사실, '공연'이라는 말에서부터 스멀스멀 풍겨오는 느낌은 뭔가 그럴듯한 규모의 무대와 관객 앞에서 나름 전문적이고 거창하며 또 차별화된 '공식 퍼포먼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연극, 음악, 춤, 마술 등 대부분의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중 하나가 떠올려질 것 같다.


명절 때 집안 식구들끼리 모여하던 '장기자랑'과 같이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소소했던 이벤트까지는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 한 번쯤 학예회, 발표회와 같은 유년, 청소년 시기에 학교나 종교단체, 동아리 등에서 진행했던 다양한 행사에 '반 강제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을 테다.


늘어나는 머릿속 메모리 유실 때문인지, 정확한지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희미해지긴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입학 전, 미술학원(유치원)에서 준비한 연말 학예회가 처음 내가 마주한 그럴듯한 공연이었지 않나 싶다.


까만색 쫄쫄이 스타킹을 입고, 싸리 빗자루에서 떼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얇은 나뭇가지를 이어 붙여 나름 그럴듯한 치마를 만들고, 얼굴과 머리엔 인디언 분장과 거대한 깃털이 장식된 모자를 썼었는데, 손바닥을 입에 대었다 띠었다 하며 내는 인디언 소리와 함께 무슨 의식과 같은 신나는 율동을 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대 공포와
'J'의 시작


나름 기억의 순간순간들이 꽤나 디테일함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당시 작은 사고로부터 비롯된 나의 '무대 공포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다 강도 높은 준비와 계획에 신경 쓰게 된 내 MBTI 'J'형 시작이 이때부터라고 생각 들기 때문이다.


그저 선생님들이 시키는 동작과 노래를 무작정 따라만 하던 어린아이이긴 했지만, 나는 이 학예회 준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았었는지를 기억한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우린 수십 번 넘는 연습과 리허설을 반복했기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공연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숙련화된 춤꾼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 당일 그 사건이 일어났다.


문제는 싸리 빗자루로 만든 치마였다. 우리의 율동에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율동하다가 다시 일어나 동작을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는데, 허리를 움직이느라 살짝 내려와 있던, 그날따라 굉장히 빳빳하기만 했던 싸리 빗자루 치마가 내 허벅지/무릎을 방해하는 바람에 난 제때 일어나서 함께 동작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낑낑대는 내 모습을 보며 깔깔 웃어댔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이 내 울음을 터트렸다.


급하게 선생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와 치마를 벗겨 주셨지만, 쫄쫄이 스타킹만을 입고 울면서 춤을 추고 있었던 내 모습에 사람들은 더 깔깔 대기 시작했다.


난 생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느꼈고, 쓰디쓴 '실패'와 '비웃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무서워지기 시작한 게...



심박수, 몸의 온도, 땀과 같은 신체적 변화를 모니터링해서 과학적 수치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나의 떨림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현재로선 가늠할 길이 없기에 사람들 앞에 서기 전,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떨려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날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터질듯한 심장소리, 온몸이 마비된 듯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손, 혀가 입천장에 붙어 마비된 듯 어눌해지는 말투,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은 안될 것만 같이 턱턱 막히는 숨에 그저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질 뿐이고, 이내 서서히 다리의 힘이 풀려와 주저앉고 싶어진다.


어쨌든 난 괜한 자존심으로부터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부러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오랫동안 혼자만의 고통의 순간을 견뎌와야 했다.


잘 짜인 '계획'은 때론 이런 두려움을 완화시켜 주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류의 걱정과 떨림들은 워낙 기댈 만한 곳이 없기에 '최악'의 순간을 면하기 위한 'Plan B'와 같은 계획은 다소의 안도감을 전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난 항상 준비하는게 익숙해 지기 시작한 'J'가 되어 갔다.


무대 공포가 사라졌던
마법 같은 날.


사실, 대부분의 무대 공포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 최대치가 되었다가 적응을 시작하고 나면, 실제 조금씩 누그러 지기 마련이고 어느 정도 진정되는 경험을 늘 해왔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등딱지에 붙은, 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던 이 공포가 처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기적 같은 경험을 하게 된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우리'라는 '공감'을 느낄 때였고, 고등학교 무렵 친구들과 함께 작은 소극장을 빌려 공연했었던 그날, 그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거다.


공연 무대를 준비하던 때 갑자기 나가버린 전원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관객과 우리 모두 당황했었다.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던 그때, 어줍잖은 '파이팅'을 외친 친구 관객으로부터 시작된 '공감'은, 예정 없이 어쿠스틱 기타를 꺼내 든 멤버의 노래와 함께 '우리'라는 '공감'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돌이켜 보면 관객이 나였고, 그들이 뮤지션이었으며 우린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거짓말처럼,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무슨 영화에서 나올법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냐 할 수 있겠지만, 실제 친구들과의 스스럼없는 자리에서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듯이, '우리'라는 '공감'은 나의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편안함을 선사해 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치료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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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싸다방(좌)와 나희경(우) 사진


K-Bossa의 완결을 써 내려가는
뮤지션


오늘 소개할 백일흔 네 번째 숨은 명곡은 K-Bossa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장본인, 나희경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보싸다방'의 첫 번째 EP 앨범 '찾아가기'에 수록된 '음악이 들려오네'라는 곡으로 나희경이 작사/작곡을 하고 보싸다방이 편곡했다.


보싸다방은 기타와 보컬, 작사작곡을 담당한 나희경과,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고병근이 2008년 결성한 듀오로 2010년 데뷔 앨범인 '찾아가기' EP를 발매하고 2011년 보사노바 1세대 거장 Roberto Menescal과의 협업으로 유명했던 곡 'Um Amor'가 수록되어 있는 싱글 '여행의 시작'을 선보였다.


이후 나희경은 브라질로 건너가 오랫동안 체류하며 보사노바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녹음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국내 보사노바 명반으로도 많이 회자되는 그녀의 솔로앨범 1집 'Heena'를 2011년에, 브라질 뮤지션들과 협업한 앨범으로, 보사노바 본고장의 사운드를 담은 작품 2집 'Up Close To Me'를 2013년에 발매하며 정통 찐 브라질 보사노바를 K-Pop에 접목한다.


그녀는 2015년 3집 Flowing 발매 이후, 다시 1인 프로젝트 그룹으로 변모된 '보싸다방'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고, 2018년 4집 Amora, 비교적 최근인 2024년에는 5집 BOSSA로 K-Bossa의 완결을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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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싸다방과 나희경이 발매한 앨범 표지들


분주한 어느 오후의 거리, 웅성거리듯 사람들 간의 일상의 대화가 마치 배경 음악과도 같이 왱왱거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 사이를 파고드는 보싸노바 리듬의 기타 연주에 거리의 악사가 된 듯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함께 흥얼거리게 된다.


날 보는 여러분의 소소한 움직임
이 공간에 스미는 작은 바람의 숨소리
노래를 전하는 나의 이 떨림


이 노래는 작은 거리의 공연을 준비하는 어느 음악가의 진심이 느껴지는 곡으로 마치 수십 년 전 불 꺼진 무대 위, 어쿠스틱 기타에 진심을 담아 나의 두려움을 잊게 했던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그 소소한 움직임.

숨소리.

나의 떨림.


그리고, 잊고 살았던 '우리'




음악이 들려오네

보싸다방, 찾아가기 EP - 2010


작사 : 나희경

작곡 : 나희경

편곡 : 보싸다방

노래 : 보싸다방


음악이 들려오네

음악이 들려오네

음악이 들려오네


귓가에 들려온 창틀의 속삭임

내 팔에 스미는 너의 사소한 흔들림

콧등에 내려앉은 너의 향기가

음 들려오네 내게 들려오네


날 보는 여러분의 소소한 움직임

이 공간에 스미는 작은 바람의 숨소리

노래를 전하는 나의 이 떨림이

음 들려오네 음악이 들려오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NAOCi4sYi2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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