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K-Pop 명곡 II, 백일흔셋

카스트로 폴룩스, 한경훈(feat 조규찬) : OST - 1998

by By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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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 들어볼래?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여전히 씩씩거리며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던 후배 팀원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굳이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발끝에서부터 치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객사와의 미팅을 다녀온 뒤, 그녀는 회사 대표님께 관련 결과 보고를 하러 들어갔었는데, 이미 대표님과도 조율이 끝났고, 고객사와도 결론 지은 일을 아무런 사전/사후 정보 없이 대표가 아예 방향이나 의사결정을 틀어버리는 일이 그 자리에서 발생했고, 황당함을 뒤집어쓴 그녀는 후에 자신에게 닥칠 수많은 일들에 몸서리치는 스트레스와 짜증이 온몸에 퍼진 후였다.


이제는 시간이 한참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희미한 기억의 수풀을 헤쳐 조금씩 드러나는 풍경의 조각들을 맞추어 보면, 아마도 그때 난 그 팀원이 조금은 안정되도록 잠시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질 무렵, 노래 하나를 들려줬다. 마치 구급약 상자에서 방금 꺼낸 일회용 반창고와도 같이...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이 있나요?


한 연구에 따르면, 각 연령별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스트레스 해소를 아예 대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0~30대는 34~41%, 40~50대는 42~47%로 더 상승하며, 60~70대는 35%~71%로 압도적으로 많아진다고 한다.


청소년과 Z세대인 10대~20대 초의 경우에는 학업·관계·정체성 스트레스 등으로 감정 기복이 크기에, 즉각적 진정이 가능한 콘텐츠 기반 정서조절(음악/영상/게임/소셜)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고, 또래 친구에게 털어놓기가 강력한 완충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관계 스트레스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청년·밀레니얼 세대인 20대~30대의 경우는 취업/성과/경제/연애·결혼 등 압박이 커서, 짧은 시간에 회복감을 주는 활동(운동, 음악, 온라인 탐색/영상, 수면 보충)이 많이 선택되며, 중년으로 접어드는 40~50대의 경우는 업무 책임, 관리자 역할, 자녀·부모 부양, 건강 변화가 겹치며 만성 스트레스 비중이 커지는데, 이 시기 대처는 운동·수면·의료/상담·관계 조정 등 구조적 회복 루틴 구축을 시도하거나, 음주·폭식·과로·무기력형 탈출 등 단기완화형으로 기울어 악순환이 지속되는 두 갈래로 나뉘는 경향이 생긴다고 한다.


시니어 세대인 60대 이후에는 외부 성취보다 정서적 안정·의미·가까운 관계의 가치가 커지고, 불필요한 갈등/자극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택이 일어나는데 이는 “회피”라기보다 감정 손상을 줄이기 위한 선별적 만남, 루틴화, 종교, 봉사 등 ‘선택적 환경 설계’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음악은 검증된
스트레스 치료제!


많은 연구에서 음악은 실제로 심박, 혈압 등과 같은 생리적 각성과 코르티솔 등 스트레스 반응을 낮추는데 효과적이라 보고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런 객관적 사실을 꼭 들이밀지 않아도 세대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었던, 그 효과가 이미 검증된 치료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누구에게나 이런 터질듯한 마음과 복잡한 심경을 진정시켜 준 노래가 하나둘 쯤은 있을 만도 한데, 막상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시원하게 플레이리스트를 내미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 이미 사람보다 더 똑똑해진 머리와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인공지능 머신이 난립하는 요즘과 같은 세상에선, 씁쓸하지만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추천 리스트에 의존하는 이유도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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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개봉한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OST 앨범 표지


오늘 소개할 백일흔세번째 숨은 명곡은 1998년에 개봉한 장동홍 감독의 장편 데뷔작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의 OST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그 이름도 참 어려운 '카스트로 플록스 Castor & Pollux'라는 노래로, 빛과 소금의 전멤버이자 영화의 음악감독이었던 한경훈이 작사/작곡/편곡하였고, 조규찬이 노래했다.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은 故박용하, 김현주, 이서연, 권오중, 김지영 등의 배우가 출연한 로맨스 영화로 박스오피스 19,731명의 대중들에게 높은 인지도와 흥행 기록을 가진 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간단히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이 영화는 “오래된 약속”을 아주 낭만적인 장치로 꺼내 드는 멜로 영화로 어린 시절 두 주인공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눈 별자리 이야기가, 1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다시 두 사람을 만나게 만들고, 그 재회의 끝에서 결국 “운명”과 “현실” 중 무엇을 택할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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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의 스틸 사진들


특히 오늘 소개할 다소 어렵게만 느껴지는 노래 제목인 '카스트로 폴룩스 Castor & Pollux'는 영화 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단어이자 주문으로 별자리 중 쌍둥이자리를 의미하는데, 쌍둥이 형제인 카스트로와 폴룩스의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가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별자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카스트로와 폴룩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와 고니로 변신한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카스트로는 말 타기에 능했고, 폴룩스는 권투와 무기 다루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폴룩스는 불사신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카스트로가 죽게 되자 폴룩스 역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게 되지만 불사의 몸을 가진 폴룩스는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었다.


결국 폴룩스는 제우스에게 자신의 죽음을 부탁했고, 이들 형제의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는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두 개의 밝은 별로 만들어 형제의 우애를 영원히 기리도록 하였다고 한다.


영화에서 핵심 주제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별자리', '목성', 그리고 '12년'이라는 시간은 실제로도 목성의 공전주기가 약 11.86년으로 단순 허구가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한 그럴듯한 “운명 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빛과 소금의 원년멤버
레전드 한경훈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자 작사/작곡/편곡을 담당한 주인공 한경훈은 이미 본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도 여러 번 소개한 레전드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로 '빛과 소금'의 1, 2집 원년 멤버로 주옥같은 K-Pop 명곡들을 만들어 냈으며, 이후 잠시 미국으로 건너 가 LA,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재즈 클럽 활동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MBC 드라마 '사춘기', 재즈 잡지 '뭉크뭉크' CD인 'A Yellow Boy' 발표,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음악감독 및 OST 제작, 드라마 '여우야 뭐 하니' OST 제작 등의 음악 작업들을 해왔다.


https://brunch.co.kr/@bynue/233


https://brunch.co.kr/@bynue/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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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한경훈'의 사진들


Bynue가 전해드리는
한경훈과 조규찬의 치유


이 노래는 Castor & Pollux라는 두 단어로만 되어 있는 가사와 허밍으로 마치 아카펠라와 같이 느껴지는 곡으로 조규찬이 가진 좌중을 사로잡는 음색과 감성에, 얽히고설켜 단단하게 뭉쳐 있던 마음의 실타래가 어느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의 눈처럼 어느새 사르르 녹는 치유의 경험을 전달해 준다.


노래는 첫 시작부터 어느 유럽의 고즈넉한 성당 안에서 흘러나올 법한 아름답고 몽환적인 멜로디와 연주, 하모니가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데, 이는 조규찬 1인이 코러스와 메인 멜로디 모두를 혼자 소화한 것으로 그의 뛰어난 보컬 역량을 부족함 없이 보여준다.


이 노래는 안 그래도 상대적으로 적은 길이의 2분 30초가 더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짧은 곡이지만, 감정의 흐름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잘 짜여진 작은 스토리가 곡의 흐름으로, 또 흠잡을 곳 없는 화성과 악기의 합주로 꽉꽉 내재되어 있어 전혀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더 멋진 가사가 채워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작은 바람도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그냥 하얀 백지와 같은 이 노래의 허밍이 때론 연인으로부터, 때론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때론 나 자신으로부터 받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나의 상처를 그 어떤 가사의 노래보다 더 깊게 나를 위로해 줬던 것 같다.


때론 그 어떤 멋진 수식어로 포장된 수천번의 말보다 그저 따뜻한 눈으로 바라만 봐주는 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듯이...


만약 이 노래에 가사가 있었다면, 아마도 난 그 가사에 내 마음이 동화되는 특정 상황을 기억해야 하는 수고를 한번 더 해야 했을 테고, 그저 울고 싶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해열제와 같이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 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앨범에는 조규찬이 부른 또 다른 명곡 '그대에게'와 김조한과 한수연의 듀엣곡인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이 수록되어 있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두곡 모두다 꼭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좀 나아졌어?


후배는 노래를 듣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보다 평온해진 얼굴로 나에게 이어폰을 다시 건넸다.


음악은 정말 위대하다.




카스트로 폴룩스 Castor & Pollux

한경훈(feat. 조규찬),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OST- 1998


작사 : 한경훈

작곡 : 한경훈

편곡 : 한경훈

노래 : 조규찬


Castor & Pollux Castor & Pollux

우~

우~ Castor & Pollux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UvZQ7qcWW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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