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K-Pop 명곡 II, 백여든둘

그리고 별이 되다, 나윤선 : 5집 Memory Lane - 2007

by By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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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예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에 몸을 담았던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인 20대 초반부터 사실 '구직'보다 '구인'의 어려움과 괴로움 속에 항상 시달리는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는 구직의 삶이 구인하는 삶보다 더 각박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람 구하는 일’이 더 쉽고 편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세상의 진리 중 진리인 '사람'은 감정의 생명체이기에 뭐 하나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인데, 요 근래 불어닥친 슈퍼 '을'이라 불리는 어렵기만 한 상황들은 서글프게도 이를 어느 정도 증명하는 팩트임은 확실하다.


어쨌든 얼마 전 회사 내 채용 면접을 진행하던 나는, 지원자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툭 던졌는데, 그저 짧은 시간 동안 몇 마디의 문장으로 그녀의 많은 것을 파악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름 지원자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회사의 방향성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는 서로를 위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에, 개인적으로 채용의 기준에 중요한 항목으로 생각한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는지, 지원자는 나름대로의 논리 정연한 말투와 어법으로 자신의 꿈이 뭔지,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어떻게 노력했고 또 살아왔는지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녀의 당찬 포부와 열정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즈음, 나의 머릿속 한편에서부터 모락모락 갑자기 피어난 생각, '내 꿈은 뭐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배웠지만 알지못하는 모순과 괴리를 경험하는 이상한 일의 연속인 것만 같다. 어릴 때 보다는 분명히 더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되었고, 또 경험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원하는 것 모두가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이 끝없이 넓어 보였고, 마음속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열망과 뜨거움이 있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었고, 무엇이든 되어 보고 싶었고,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당연히 기다릴 수 있었다. 부족했지만 충만했고, 없었지만 잃지 않았으며, 아직 닳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삶이란 가혹하게도 조금조금씩 현실의 무게를 우리의 어깨 위에 하나둘씩 얹어 놓기 시작한다. 몇 시간 정도 흘렀다고 생각한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 몇 번의 계절이 바뀌어 있고, 더 높은 비상을 위해 잠깐 숨을 고르는 줄 알았는데, 난 주저앉아 있는 게 더 편안해졌다.


한때는 꿈이라 불렀던 것들이 이제는 사치처럼 느껴지고, 설렘보다 내게 돌아올 책임이 먼저 떠오르게 되며, 몸과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머릿속에선 이미 치열한 계산이 앞서고 있다.


더 신중해지고, 더 조심스러워지고 졌지만, 그렇다고 실패를 겪지 않는 것도 아니며, 예전보다 확연히 떨어진 체력 때문이라 탓하며, 더 쉽게 지치게 된다.


그리고 일상적이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지나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 일정을 소화하며 새로운 인력의 면접을 보는 오늘과 같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될지 모른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거 맞나?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이런 깨달음조차 일상이 되어 무뎌져 가게 되는 것이다.

슬프게도.


한국이 나은 세계적 재즈 아티스트 나윤선의 사진들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
나윤선


오늘 소개할 백여든두번째 숨은 K-Pop 명곡은 한국이 나은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 나윤선의 '그리고 별이 되다'라는 노래로 2007년 발매된 그녀의 다섯번째 앨범인 'Memory Lane'에 수록되었고, 본 숨은 명곡에서도 자주 등장한 이규호가 작사를, 덴마크 피아니스트 Niels Lan Doky가 작곡했다.


나윤선은 1969년 서울 출생의 재즈 보컬리스트로, 한국에서 뮤지컬로 데뷔한 뒤 1995년 파리로 건너가 재즈와 샹송을 공부했고, 이후 프랑스와 유럽을 거점으로 세계적인 재즈 보컬로 성장한 아티스트이다.


특히 그녀의 음악은 재즈에만 머물지 않고 샹송, 포크, 팝, 월드뮤직의 감각을 끌어들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곡을 장르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해석력으로 재즈계나 음악계에서는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해 파리에서 재즈와 샹송을 공부하며 독자적 스타일을 완성한, 동시대 재즈의 중요한 목소리”라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합창 지휘자이자 테너 성악가였던 아버지 나영수, 뮤지컬 배우이자 성악가인 어머니 김미정의 첫째 딸로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긴 했지만, 부모님의 삶을 보며 음악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먼저 배웠고 이로 인해 “저 길은 너무 어렵다”는 감정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1989년에는 전국 샹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음악적인 출발점은 1992년 시작된 그녀의 뮤지컬 배우 시절을 지나 1994년 유명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주연급 역할인 ‘연변처녀’로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그녀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비로소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다'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5년, 나윤선은 “노래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게 되지만, 프랑스인 보다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처음에 선택했었던 샹송을 과감히 버리고, 보다 자유로운 장르였던 재즈로 전향하게 된다. 나중에 그녀는 “재즈가 이렇게 어려운지 알았으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남길 정도로 그 벽을 느끼기도 했다.


흉내 내지 말고,
내식대로 하자!


그녀의 해법은 생각보다 단순했지만, 참 어려운 것이었는데, 외국 보컬을 흉내 내기보다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방향을 택한 것이었다. 이름도 바꾸지 않았고, 외국 가수처럼 노래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재즈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재즈 앞에서 오래 배우며 결국 자기 목소리로 재즈를 다시 말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국제적 멤버로 구성된 자신의 퀸텟을 만들었고, 프랑스 각지의 페스티벌에 초청받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 약 6년 동안 5장의 호평받은 음반을 만들며 프랑스와 한국 양쪽에서 동시에 존재감을 키웠으며, 1998년에는 몽마르트 재즈 페스티벌 2위, 1999년에는 라데팡스 재즈 콩쿠르 특별심사위원상, 2005년에는 프랑스 Jazz à Juan Révélations 그랑프리 등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나윤선이 발표한 그녀의 정규 앨범 표지들


2007년 발매한 Memory Lane은 오늘 소개할 명곡이 수록된 앨범으로 어쩌면 그녀의 음악 인생에 있어 한국 대중음악과 유럽 재즈 사이를 잇는 전환점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샹송, K-Pop으로까지 확대된 그녀의 앨범 속 작품들에서 오랫동안 그녀의 내면에서 꿈틀거렸던 음악적 포용감을 볼 수 있기에 재미나기도 하다.


나윤선은 2008년 'Voyage', 2010년 'Same Girl', 2013년 'Lento'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아티스트로의 성장의 기반을 다졌는데, 특히 2010년 'Same Girl' 앨범은 나윤선을 “세계적 재즈 보컬”의 반열에 올려놓은 앨범으로 프랑스에서 2011년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이었고, Prix Mimi Perrin du Jazz Vocal 및 프랑스에서 골드 인증을 받는 등, 그녀에게 다수의 상과 대중적인 인기 동시를 안겨줬다.


게다가 이 앨범은 “My Favorite Things” 같은 스탠더드부터 Metallica의 “Enter Sandman”, 한국 민요까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를 가져와 전부 ‘나윤선의 노래’처럼 들리게 만드는 그녀의 팔색조의 매력이 폭발하는 앨범으로 '장르의 울타리를 부수는 해석'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2017년 허비 행콕과 듀엣 공연, 'She Moves On' 앨범 발표, 2019년 미국 음악시장으로 진입을 알렸던 앨범 'Immersion', 2022년 'Waking World', 2024년 데뷔 30주년 기념이자 12번째 앨범인 'Elles', 그리고 올해 발표한 'Lost Pieces'까지 나윤선의 여정은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긴 탐구의 기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지만 음악을 쉽게 택하지 못했고, 뮤지컬 무대에서 뒤늦게 노래의 기쁨을 깨달았으며, 재즈를 거의 모르는 상태로 파리에 건너가 낯선 환경과 음악적 혼돈 속에서 진정한 자신으로의 탐색으로부터 꿈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어쩌면 나윤선의 위대함은 아직도 완성보다 탐색을 선택한다는 것.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곡들을 그 결론이 너무나 잘 예상되는 화법으로 그저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태어난 어느 생명체가 선사하는 새로운 여정의 긴장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나윤선 5집 Memory Lane의 앨범 표지


오늘 소개할 노래는 '그리고 별이 되다'라는 곡으로 작사는 본 시리즈 백열한번째로 소개한 노래 '이사분기'의 주인공 이규호가 담당했고, 작곡은 김정렬과 함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덴마크 피아니스트 Niels Lan Doky가 참여했다.


https://brunch.co.kr/@bynue/173


미디엄 템포의 재즈 브러시 드럼, 피아노, 베이스, 기타의 악기로 시작되는 노래는 처음엔 베이스가 멜로디라인 그대로 따라 연주하다가 어느 새부터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위트 있는 편곡의 구성이 재미나다.


그리고 역시나 빼놓을 수 없는 나윤선만의 목소리가 잔잔한 내 마음속으로 천천히 들어와 그녀가 전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펼쳐 놓기 시작하는데, 어둡고 컴컴한 깊은 밤하늘, 그저 희미한 불빛을 향해 지친 몸을 한 발씩 내디뎌 앞으로 다가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노래는 재즈의 화려함보다 다분히 뉴에이지적이고 또 포크적인 감성을 팝의 느낌으로 담은, 정적에 가까운 곡인데, 단순한 위로나 감상, 미래에 대한 희망에만 기울어지지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삶과 꿈에 대한 막막함을 먼저 펼쳐 놓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윤선이 가지는 거스를 수 없는 매력은 다양한 음악적 장르에서 그만의 화법으로 청자의 마음에 직접 닿는 스토리텔링 능력이라고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런 면에서 ‘그리고 별이 되다’는 우리 모두가 숨기고 싶었던 꿈에 대한 먹먹함을 마법처럼 또렷하게 전달해 주는 것 같다. 단순히 멜로디를 귓속으로 밀어 넣기보다는 단어와 단어 사이를 오래 남겨 두는 식의 발성, 그리고 과한 비브라토나 감정 과시 대신 섬세하게 흔들리는 호흡으로 그녀는 이 노래를 더 쓸쓸하지만 품위있고 또 우아하게 만든다.


살아가는 건 영원히 깨울 수 없는
수많은 꿈들의 소리 없는 어울림 일지도 몰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큰 파도 없이, 적당히 안정적이고, 적당히 반복적이며, 적당히 조용한 삶.

그리고 어느 날 갑작스레 맞닥뜨려져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 "나의 꿈은 뭐지?"


어쩌면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쌓인 수많은 미완성들과 함께 늙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히 잠들지 않는 수많은 별들의 끊임없는 인형놀이"와도 같이.


다 이루고 난 뒤에 늙는 것이 아니라, 끝내 다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법을 습득하는 것,

그리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빛을 몇 번이고 다시 찾아내는 이야기.


그게 바로 '꿈'을 대하는 늙은 나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별이 되다

나윤선 : 5집 Memory Lane - 2007


작사 : 이규호

작곡 : NIELS LAN DOKY

노래 : 나윤선


깊은 밤하늘 숲 속 닿을 수 없는 길

그저 희미한 빛으로 어린 내 눈을 비추네


무리한 꿈의 티끌 숨 쉴 수 없는 길

그저 희미한 빛으로 슬픈 내 눈물 달래네


어쩌면 살아가는 건 영원히 깨울 수 없는

수많은 꿈들의 소리 없는 어울림 일지도 몰라


깊은 밤하늘 약속 돌아올 수 없는 길

그저 희미한 빛으로 지친 내 영혼 달래네


어쩌면 살아가는 건 영원히 잠들지 않는

수많은 별들의 끊임없는 인형놀이일지 몰라


깊은 밤하늘 약속 돌아올 수 없는 길

그저 희미한 빛으로 지친 내 영혼 달래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ZaHigAt48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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