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워, 김조한 : JoHan 1집 - 1998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내가, 우습니?
끝내하지 말아야 할, 금기의 말을 꺼내 버렸다. 그렇다고 금세 주워 담아 다시 입속으로 구겨 넣고 싶지도 않았다. 오로지 내 안에서 터져 나온 진심이었고 또 후회하지 않았으며, 사과할 생각도 없었다. 그녀는 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빠, 변했어"
그녀는 날카로운 문장을 혀끝에서 우리 사이로 힘껏 던져 놓고는 한참 동안 날 노려보다, 이윽고 울음을 터트렸다. 온 세상이 벚꽃 눈으로 뒤덮이던 어느 날, 우린 한참 동안 아무 말 없는 숨 막히는 정적 속에 갇혀 서 있었다.
봄은 늘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요즘과 같이 온 세상이 벚꽃으로 만개한 거리의 풍경만 떠올리면 봄은 꽤 대담한 계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시작은 늘 망설임에 가깝다. 아직 코트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차갑기만 하고, 햇빛은 꽤나 부드러워졌지만 손끝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으스스하기만 하다. 겨울 옷을 완전히 넣기에는 이르고, 그렇다고 두꺼운 코트를 입고 나서면 계절을 혼자 거꾸로 걷는 미개하고도 몰상식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봄은 그렇게
늘 반쯤만 열린 마음으로 온다.
사람 사이의 마음이 가까워지기 시작할 때도 이 반쯤의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너무 다가가면 놀랄까 봐 잠시 머무르고, 아무렇지 않게 쿨한 척 굴다가도 돌아서면 상대방이 했던 한마디를 천천히 곱씹어 보기도 한다.
함께 걷는 길에서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카페 창가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의 손등을 한 번쯤 바라보게 되는 순간, 괜히 애꿎은 컵만 만지작거리다 오늘도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 그 마음. 관계의 시작이라는 건 대개 그렇게 어리숙하고 또 조심스럽다. 마치 봄이 오는 지금과 같이.
하지만 계절이든 사람이든, 반쯤 열린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하면 곧 익숙함이라는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 익숙함이 참 반갑기만 한데, 기다리던 연락이 조금 늦어도 불안하지 않고, 굳이 멋진 말들을 골라내지 않아도 대화가 이어진다.
어느덧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 예전처럼 거울을 몇 번씩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고, 손끝이 스쳐도 더는 심장이 요란하게 먼저 몸 밖으로 달려 나가지 않는다. 사랑이 조금은 제자리를 찾은 것 같고, 관계가 드디어 편안한 궤도에 올라선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늘 그다음부터 몽글몽글 거품이 일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워졌다고 믿었던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자주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다.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더 이상 묻지 않게 되고, 잘 안다는 이유로 자세히 보지 않게 된다. 상대가 내뱉은 짧은 한숨을 피곤함쯤으로 넘기고, 무심하게 툭 던진 “요즘 좀 그래” 같은 말을 그저 지나가는 말로 흘려보낸다. 어쩌면 사랑이 무너지는 것은 크게 배신당했을 때보다, 작은 신호들을 오래도록 놓쳐버렸을 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시작한다.
솔리드(SOLID)와 함께 시작된,
K-Pop Top 보컬리스트
오늘 소개할 백여든네번째 숨은 K-Pop 명곡은 1998년 발매된 김조한의 첫 번째 솔로 앨범 'JoHan'에 수록된 노영심 작사, 김형석 작곡, Jetro Dasilva의 편곡의 '자연스러워'라는 곡이다.
김조한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싱어로, 오늘날까지 'R&B Daddy'라는 별칭과 함께 한국 R&B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가 처음 대중 앞에 선 건 1993년, 솔리드(SOLID)라는 이름을 통해서였는데, 정재윤, 이준, 그리고 김조한, 세 명의 재미교포로 이루어진 솔리드는 당시 국내 음악 씬에서 보기 드문 정통 R&B 그룹으로 K-Pop 앞에 서게 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음악은 그 시절 한국 가요와는 결이 분명히 달랐는데, New Jack Swing의 리듬감, 보이스 하모니, 그리고 한국어로 담아낸 흑인음악의 정서 등은 이전 서울 거리에서는 익숙지 않던 감각으로 곧 많은 대중의 시선과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천생연분'으로 솔리드는 빠르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R&B라는 장르가 단순히 서양 음악의 복사본이 아니라 한국어의 감정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낸 그룹으로 정재윤의 프로듀싱,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톤을 가진 이준의 랩, 그리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김조한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돌연히 1997년 해체를 선언한다.
사실 멤버들이 원했던 건 해체가 아니라 잠깐의 쉼이었다고 후에 밝힌다. 4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잠시 숨을 고르자는 것이었는데 그 사이 소속사는 일방적으로 해체를 선언해 버렸고, 정작 솔리드의 세 멤버는 자신들의 해체 소식을 뉴스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내린 결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 우연히 모인 친구 결혼식 자리에서 세 사람이 함께 축가로 '천생연분'을 부르게 되는데 그 순간 셋 모두 알았다고 한다. 다시 한번 뭉쳐야겠다고. 어쩌면 끝도, 다시 시작도, 모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2018년 우리들에게 '5집'이란 선물을 21년 만에 건네주게 된다.
혼자 선 무대,
여전히 빛나는 김조한
1998년, 김조한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만 걸고 세상에 나서게 되는데 많은 대중들은 세 명이 서로를 채워주던 공간을 목소리 하나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걱정되기도 했을 것 같다.
그의 1집 'JoHan'은 그 물음에 아주 조용하고 담담하게 답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휘황찬란한 복귀선언과 같은 거창함도 없었고, 홀로서기임을 애써 증명하려는 과잉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앨범 전체는 성숙하고 부드러운 R&B의 결 위에 솔로 아티스트 김조한이 가진 고유한 온도를 그대로 담아냈으며 세계적 세션들과 뮤지션들이 함께해 완벽한 음악적 완성도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은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는 1990년에서 2000년대 들면서 광풍으로까지 인기를 끌었던 R&B 씬 자체가 잠시 조용해지던 시기이기도 했고, 앨범의 색깔 자체가 자극보다는 완성도와 깊이에 무게를 둔 담담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듬해인 1999년, 2집 'Thank You My Friend'를 2001년에는 3집 '2gether 4ever'를 내놓았고, 수많은 아이돌들의 목소리를 다듬는 보컬 트레이너로서, 그리고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게 되는데, 태연, 제시카, 려욱, 예성, 효린과 같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듣는 그 목소리들 뒤에 그의 귀와 손길이 하나하나 닿아 있었다. 김연우와 함께 '연예계 양대 보컬 선생님'이라 불릴 정도였으니, 무대 위보다 무대 뒤에서 더 많은 음악을 만들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꽤 오랜 공백 기간이 지난 2005년 4집 앨범 'Me Myself My Music' 그리고 2007년 5집 'Soul Family With Johan'을 발표했고, 2015년 6집 'Once In A Lifetime'을 선보이게 되는데, 데뷔 20년이 훌쩍 넘은 제목 그대로, 평생에 한 번뿐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언어로 R&B를 말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백여든네번째 숨은 K-Pop 명곡은 김조한의 1집에 수록된 '자연스러워'라는 노래로 숨은 명곡 시리즈의 단골손님인 노영심, 김형석이 작사/작곡을 맡았으며, 편곡은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키보디스트이자 버클리 음악대학 교수, Jetro Da Silva가 맡았다. 휘트니 휴스턴과 10년간 월드투어를 함께한 그가 이 멋진 R&B 발라드의 뼈대를 완성했다.
이 앨범과 노래에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함께 했는데, 그 유명한 아카펠라 그룹 Take 6의 멤버 David Thomas, Alvin Chea가 함께 했고, Bass에 Abe Laboriel 기타에 Ray Fuller, Keyboards와 Piano에는 본 노래의 편곡을 담당한 Jetro DaSilva, 색소폰에 Brandon Fields까지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뮤지션들 이름에 그저 입가가 자연스레 벌어질 정도다.
감미로운 일렉피아노와 색소폰의 어우러짐에 지그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전주를 지나 서서히 하나둘씩 그 향연에 팔짱을 끼는 스트링과 드럼, 베이스 그리고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입가에 흐뭇함을 감출 수 없는 김조한 특유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이 노래는 정말 잘 만들어진 R&B 웰메이드 발라드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교과서와도 같아서 멜로디, 코러스, 편곡과 악기 연주 등 뭐 하나 특별히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구성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천천히 식기를 바래
뜨거운 나의 가슴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사랑은 무엇 하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아서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더 진심이었던 시절 내 맘이 모두 열렸다고 믿는 순간부터 서서히 처음의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면 편안함으로 바뀌고, 설렘은 어느새 일상의 '자연스러움'이 된다.
서로의 취향을 알고, 습관을 알고, 기분의 결까지 대강 짐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이해라고 착각한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해 봄이 거의 지나갈 무렵이었다.
나풀대던 벚꽃 잎은 세찬 봄날의 거친 비바람에 거의 다 사라지고, 나무는 어느새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무엇이 정확한 발단이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소한 말투였는지, 너무 늦은 답장이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쌓여 있던 서운함이 마침내 밖으로 나온 것이었는지.
다만 한 문장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
오빤 나를 지치게 해
그 말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오랜 침묵 속에 그동안 쌓여왔던 '자연스러움'에 무뎌진 관계와 이젠 아무렇지 않게 내뱉게 된 무시에 대한 발끈함이었는지, 나는 끝내 꺼내지 말았어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편안함과 무관심은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처음에는 그 자연스러움이 서로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떨림과 상처까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버리게 된다. 사랑이 익숙해지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 익숙함이 상대를 ‘이미 다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 관계는 조용히 메말라 가기도 한다.
요즘보다 조금은 더 싸늘했던 어느 봄날,
하염없이 쏟아지는 벚꽃비를 맞으며,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작사 : 노영심
작곡 : 김형석
편곡 : Jetro Dasilva
노래 : 김조한
자, 이젠 나를 붙잡아 그런 어색한 웃음 나 알아
이렇게 손을 어깨에 두고, 조금씩 밀고 들어와
내게 너를 그려봐
길들여 지기를 바랄게 그 좋은 사랑 앞에서
고개 숙이고 기대고, 아주 겸손하게, 다시
기대고 숙이고 더 감싸주면서, 그래
자연스러워 우리 사랑하는 건 아마도 넌 음악 같아서
너를 연주하듯 편하게 햇살처럼 누리고 싶어
그 좋은, 네 사랑 앞에서
아직은 손을 놓지 마 그런 맑은 눈빛에 끌려서
어쩌면 너를 놓는 순간에 모든 걸 잃을 것 같아
영원 같은 이 순간
천천히 식기를 바래 뜨거운 나의 가슴이,
너를 멈추고 감싸고 조금 담담하게 다시,
감싸고 기대고 더 열어주면서 그래
자연스러워 우리 사랑하는 건 아마도 넌 음악 같아서
너를 노래하듯 편하게 향기처럼 취하고 싶어
그 좋은 네 사랑 앞에서
자연스러워 우리 사랑하는 건 아마도 넌 음악 같아서
너를 노래하듯 편하게 햇살처럼 누리고 싶어
그 좋은 네 사랑 앞에서 행복한 그녀 안에서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