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K-Pop 명곡 II, 백여든셋

전화, 변재원 : 1집 Simply "Byun..." - 1998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통신사가
제일 나쁜 새끼들이야!


수십 년 전 강남의 어느 술집


이미 술이 머리끝까지 차버린 친구는 벌써 몇 시간째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뭐가 그리 짜증이 났는지 애꿎은 통신사들에게 듣기 싫을 정도로 혀꼬인 말투로 온갖 날 선 역정과 욕설을 퍼부어 댔다.


'아니, 이 새끼들은 사람들 간의 안부와 사랑의 이야기를 중계하는 걸로 먹고살잖아'

'뭐 이리 파렴치한 놈들이 있어, 안 그래?'


어쩌면 그저 술집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진상 취객의 모습이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친구의 맘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었기에, 애처롭게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헤어지자는 말과 함께 연락두절이 되고 만 여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다 더 이상 화를 털어낼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누구나 가끔씩은 그렇게 응어리졌던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필요하니까.



사람이 살면서 가장 늦게 깨닫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사과하는 법'인 것 같다.


대개 그런 것들은 관계의 튼튼함이 한창이라 믿을 때는 잘 보이지 않게 된다. 특히나 연인 사이에서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내 감정이 더 크고, 내 사정이 더 절박하고, 내 상처가 더 중요하다고 믿기 쉽기에 상대가 얼마나 오래 참아 왔는지, 얼마나 조용히 상처 입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이 나를 이해해 주고 있었는지를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정작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어리고 오만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사람을 곧바로 더 나은 쪽으로 데려가기보다, 먼저 한없이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 애꿎은 통신사들이 우리들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먼저 사과라도 할껄......" 아직도 참 어렵기만 하다.


토이의 그 남자,
변재원


오늘 소개할 백여든세번째 숨은 K-Pop 명곡은 1998년 발매된 변재원 1집 'Simply Byun...'에 수록된 '전화'라는 노래로 그리운 마왕 신해철이 작사/편곡, 유희열이 작곡하였다.


변재원은 아주 대중적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90년대 후반 한국 팝 발라드의 섬세한 결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그 이름을 한두 번 들어봤을 수 있는 아티스트다.


1997년 자신의 1집을 준비하다 신해철의 소개로 Toy의 유희열을 만난 그는, 토이 3집 속 ‘바램’, '다시 시작하기'라는 노래를 통해 객원가수로 먼저 K-Pop에 데뷔하게 되고, 이듬해인 1998년 신해철이 제작·프로듀싱을 맡은 1집 'Simply Byun...'을 발매하게 된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인 변재원의 사진들


당대 가장 세련된 팝 감수성의 중심에 있던 프로듀서였던 거장들과 연결되는 호사 속에서 1집을 발매했지만 그의 첫 솔로앨범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앨범을 제작한 제작사의 사정으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에게는 당대 최고였던 신해철의 문장과 유희열의 멜로디 사이에서, 자기만의 보컬 색을 만들어야 했던 부담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1집의 좌절 이후, 한동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는데, 그 시절에 걷잡을 수 없이 밀어닥쳤던 그의 실망과 방황은 그의 음악 인생을 꽤 길게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998년 이소은 1집의 ‘우린 언제까지’ 듀엣으로, 1999년에는 드라마 고스트 OST, 2000년에는 지난 숨은 명곡에서도 소개한 앨범 'LONG LIVE DREAMFACTORY', 2005년에는 드라마 '루루공주', '비밀남녀' OST에도 참여하며 절대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 그는 직접 작곡에도 참여하는 프로듀싱의 능력을 한껏 보여준 2집 'Wind From The Sun'을 발표하기 되는데, 아쉽게도 그의 새로운 앨범 또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엔 어렵다. 이후 그는 2008년 디지털 싱글 ‘Question’, 2009년 싱글 'Bye', 2012년 싱글 '사랑이라면'을 발표했으며, 2008년부터는 '마이페어 레이디', '총각네 야채가게 2.0' 등의 뮤지컬에도 참여하며 배우의 삶을 함께 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토이의 대표적인 객원보컬이자 일명 '토이의 남자들'이라고 불리는 김연우, 김형중과 함께 프로젝트 프렌즈로 디지털 싱글 ‘I’m Your Friend’를 발표했는데, 지난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 소개한 박선주의 '여3'과도 결이 비슷한 노래로 그녀들이 오마주한 레전드 팝송 'That's what friends are for'의 비트 있는 남자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https://brunch.co.kr/@bynue/116


2016년 출연한 복면가왕에서 “지금까지 계속 앨범을 내는 등 한 번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라고 말했는데, 그때 그가 보여준 그 간절함 때문인지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뭉클함이 항상 가슴속에 맴도는 것만 같다.


최근에 그는 2021년 알리의 ‘그날밤 우리’, 이동휘의 ‘네가 아는 너’, 장필순의 ‘거기 그대’ 등에 기획·제작·작곡·프로듀싱에 참여하면서 아티스트보다는 프로듀서로서의 사람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현재의 일상을 인터넷을 통한 몇몇 자료들로만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 안에 있는 사람”이며 앞으로의 그의 멋진 음악 활동을 응원하고 싶다.


변재원이 발매한 앨범 표지들


초라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노래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은 1집 7번째 앨범 트랙에 수록된 '전화'라는 노래로 사랑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이해하게 된 사람의 노래,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그 사람을 잃었는지를 돌아보게 된 '초라함'에 대한 노래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시작되고, 마치 어느 늦은 밤, 어두운 방안에 듣는 이 없이 혼자 읇조리듯 꾸밈없는 변재원의 음색이 귓가에 서서히 스며든다.


신해철 특유의 진한 서정이 뱉어 내는 가사를 지나 유희열 특유의 도시적이고 차분한 멜로디 사이로, 변재원의 목소리는 그저 조화롭기만 하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있고, 얇지만 약하지 않고,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는 묘한 매력이 남는 목소리다.


당신의 마음은 매일 멍들어서
빈틈이 없었죠


이 노래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점은 신해철, 유희열, 변재원 서로가 앞서 나가지 않고 하나의 감정 안에 잘 머무르고 있다는 점인데, 누구 하나 더 빛나기 위해 튀지 않고, 세 사람이 함께 한 사람의 초라함과 후회를 완성한다.


1998년에 발매한 변재원 1집 앨범 표지


울릴지 말지 알 수 없는 벨소리를 기다리는 일, 수화기를 들었다 놓는 망설임, 상대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 우리 시대의 ‘전화’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부재와 기다림 자체의 상징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노래는 전화기 앞에 앉아 한 사람의 부재를 체감하게 되는 우리 모두의 후회에 대한 이야기로 지나간 나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폐부를 계속 찌르는 것만 같아, 너무나 가슴이 저려오기만 한다.


사랑할 때는 쉽게 알지 못하고,

놓친 뒤에야 조금 알 것 같아지는 것.


변재원의 ‘전화’는 바로 그 늦은 이해에 대한 노래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전화

변재원 : 1집 Simply "Byun..." - 1998


작사 : 신해철

작곡 : 유희열

편곡 : 신해철

노래 : 변재원


그저 멍하니 내 방에 혼자 앉아서 전화만 기다리잖니

지난 시간과 내가 한 일을 이제 와서야 알 것 같아요


내가 교만과 쓸데없는 고집을 남자다운 거라고 믿는 동안

당신의 마음은 매일 멍들어서 빈틈이 없었죠


당신이 그런 날 이해하며 날 감싸온 것을

그저 당연하게 생각하며 내게 보이는 당신만 느껴왔지만


당신이 떠나 비어버린 공간은 두려울 만치 빨리 커져서

우습겠지만 난 어린애처럼 불안할 뿐이죠


나 아닌 남을 이해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은데 너무 늦었나요


당신이 남긴 편지 위에 남아있는 눈물자욱에

난 느꼈어요 난 바뀌었어요 제발 전화기를 들어 대답해 줘요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니

마구 자라 수염과 힘없는 눈웃음이 나요

그렇지만 왜 눈물도 나나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y5s4f2g7k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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