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05]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 DAY 2, 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현대 미술관 3관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샌가 피오키오의 작품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게 되는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 전시관 경계가 참 모호했다. 3관 또한 그때그때마다 기획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라고는 하지만, 3관 입구부터 보이는 커다란 피오키오 설치물에서부터 3관내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하고도 아기자기한 작품들까지 피노키오는 하슬라 아트 뮤지엄을 대표하는 아이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4관 피노키오 전시관은 3관으로부터 계단을 내려가 한 층 아래에 위치해 있다. 잠시 피노키오에 대한 하슬라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피노키오는 1881년 처음으로 연재를 시작했다고 하니, 140여 년이나 건재하게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다. 피노키오는 1883년까지 총 36편의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나무인형이었던 피노키오가 여러 편의 다양한 모험을 통해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세상에 맞는 진정성을 갖게 되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예술이 가져야 하는 태도와도 맞닿는다'라고 하슬라 아트 뮤지엄은 말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이는 피노키오, 그리고 그의 변화되는 과정으로부터 인간이 지닌 잔혹함, 욕심, 희망, 인자함, 용서, 이기심 등 여러 감정의 양면성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쨌든 이곳 하슬라 아트 뮤지엄에 전시된 피오키오의 작품들은 조각, 그림, 판화, 팝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형태를 보이는 상당한 규모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5관 마리오네트 전시관은 4관과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 4관과 5 관도 공간적인 구분만 있지 전시물의 내용은 같은 전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모호한 경계에 서있다.
어찌 보면 마리오네트라는 말 자체가 프랑스어로 '줄인형'을 뜻하니, 피노키오의 줄인형의 경우는 4관, 5관 모두에 해당하는 작품일 것이다. 그렇게 다시 되짚어 보면, 피노키오가 인형극으로도 많이 시연되었으니, 경계가 애매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슬라 뮤지엄의 설명에 따르면 마리오네트는 ‘작은 성모 마리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베니스 사람들이 인형극 소재로 성모 마리아 상을 사용하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그 역사는 고대 이집트까지 올라간다. 마리오네트 극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부터이며 이때 다양한 형태의 마리오네트가 등장하게 된다. 마리오네트의 모습이나 움직임 이는 역할이나 사용처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에 따라 변형되는 조종대의 형태나 기술적 발전도 눈여겨 볼만하다고 한다.
5관까지 전시 관람을 마쳤다면, 이제 다시 외부로 나가는 출구가 보이게 되고 출구 밖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알 수 없는 긴 사람들의 줄이다. 아마 처음 이곳을 온 사람들이라면 뜬금없는 이 긴 줄에 대해 의아해할 사람도 적지 않을 듯싶으나, 조금만 더 앞으로 다가가게 되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SNS에 가장 핫한 사진 촬영 Spot으로 유명한 이곳은, 가지각색의 돌로 쌓여진 돌담 사이에 둥근 원형의 창이 뚫려 있다. 둥근 창 건너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푸른 나무는 마치 최고의 예술작품은 자연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이곳이 하슬라 아트 뮤지엄이 전시하는 마지막 작품이자, 관람객을 향한 그들의 메시지인 듯도 싶다. 실제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곳은 새로운 색감과 느낌의 작품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저 둥근 돌담에 앉아서 찍는 다양한 포즈의 사람들은 역광의 피사체로 담겨 오묘하고도 신비한 느낌을 주게 된다.
역시, 사람과 자연의 조화.
이게 최고의 예술작품이 아닐까?
하슬라 아트 월드가 좋은 점은 3만 평이 넘는 넓고 아름다운 공간에 특색 있는 야외 전시공간과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작품을 감상하기에 반나절 이상을 할애해야만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여기 하슬라 아트 월드는 건물 내 전시공간 이외에도 풍성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야외 조각 공원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주자창 옆 별도의 입구를 지나야 하는데 나무를 활용한 긴 터널과 같은 이곳은 새로운 공간으로의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야외 공원의 나무 조각 터널을 지나면, 탁 트인 바다가 나를 반겨주는 '하슬라 카페'가 나를 맞이한다. 오전 내내 쉬지 않고 전시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잠시의 휴식이 간절했는데, 이곳은 그런 나를 위한 최적의 안식처와 같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 음료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타원형으로 된 예쁜 카페 내부를 둘러보고, 산아래로 펼쳐진 소나무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역시 언제 봐도 탄식을 불러내는 동해바다와 싫지 않을 정도의 차가움과 살랑거림을 가진 바람이 느껴지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요즘 사람에게는 '멍 때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 공간은 따뜻한 커피 한잔이 언제 식었는지 모르게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꽤 오랜 시간의 '멍 때림의 미학'을 즐긴 나는, 서서히 야외 공원을 감상하러 강력본드로 붙여 놓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몸을 겨우 의자에서 떼어냈다.
바다 카페 옆으로 난 길로 조금만 발길을 옮기다 보면, 구름모양의 조각공원 입구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무심코 옆에 놓인 나무판자에 조각공원 입구라 써놓은 간판이 재미있다. 입구를 지나면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이 길은 "성성"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한, '천천히 성성 걸으며 구경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성성 활엽 길'이라고 한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걸으며, 작은 조각 작품들과 로드 아트를 즐기면 된다. 해안 절벽을 따라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자라난 수많은 소나무들도 감상하게 되는데, 동해바다의 바람을 이겨내며 척박한 절벽 사이에 뿌리내려 만들어진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품에 감탄하게 된다.
말 그대로 천천히 '성성' 소나무 사이사이로 걸어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조각공원 정상에 가까워지게 되는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의 바다와 나를 함께 담을 수 있는 멋진 포토존들을 만날 수 있다.
정상에 다다르게 되면 대지미술 작품인 거대한 해시계가 있는 긴 터널을 형상화한 해시계 광장을 보게 된다. 주위 12 간지의 동물들이 둘러 쌓여 있어 커다란 해시계의 시간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해시계 광장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시간의 광장으로 갈 수 있는데, 철골 구조물 위에 세워진 다양한 설치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 하고 이를 보다 자세히 관람하기 위해 밑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난간 사이를 걸어가야만 하는 짜릿함 또한 지루함을 덜게 해 준다.
시간을 광장을 나와, 좀 더 조각공원의 정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하얀색 돔 구조의 건물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은 이름부터 재미있는 '소똥 미술관'과 '돌 미술관'이다. 각각의 내부로 들어가면 소똥과 돌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체험학습 또한 이루어지는 듯했다.
소똥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서 다시 시간의 광장 쪽으로 내려오게 되면 이제 야외 조각공원의 마지막이 서서히 느껴지게되는 내리막 길을 만나게 된다. 눈에 띄는 붉은색 철제 구조물은 커다란 인간의 뇌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이 구조물 속으로 들어가 빙글빙글 원형으로 된 계단을 내려가게 되면 최영옥의 정원, 누드 미술관에 다다르게 된다.
머리 속 뇌를 빙글빙글 돌다 나오다 보면, 나도 내 생각도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다. 이제 이곳을 나가게 될터이니,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주문 속을 빙빙 돈것만 같다고 할까?
최옥영의 예술 정원인 '누드 미술관'은 밖에서 안이 일부분 들여다 보이는 온실처럼 꾸며져 있는데 각종 식물들과 작가의 예술작품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천천히 이 신기한 온실 내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한층 한층 건물을 내려오게 되면 오랜 시간 흠뻑 예술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했던 하슬라 아트월드의 모든 전시물 관람이 끝나게 된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예술에 허우적거리도록
흠뻑 빠지는 것도 좋잖아?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bynue/28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bynue/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