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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Apr 08. 2022

정동진은 추억을 타고

[강릉 06]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 DAY 2, 셋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10 | 고현정과 모래시계의 추억, 정동진역


장시간 예술의 바다에 빠져있던 나는, 잠시 '쉼'이 필요했다. 뭐든지 너무 넘치면 힘들어지는 법이니... 정신은 풍성해지고 활기가 넘치는데, 나이가 들어 늙어버린 저질 체력과 둔해져 버린 몸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동안의 꿀맛 같았던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역시 양보다 질이 중요한 건 '잠'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거짓말같이 찌뿌둥했던 몸도 체력도 다시 되살아 난 듯했다.


강릉 하면,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드라마가 한편이 있는데, 1995년 신생 SBS에서 맘먹고 제작했던 히트 드라마 '모래시계'이다. 이 드라마는 당시 가장 잘 나가던 TV 드라마 프로듀서였던 김종학 감독과 송지나 작가, 그리고 최경식 음악감독이 참여했는데, 이는 또 하나의 걸작이자 히트작이었던 MBC '여명의 눈동자'의 멤버 그대로를 SBS에서 스카웃(?)하여 제작한 것이었다.



잠시 추억을 회상하며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박상원, 최민수, 고현정, 이정재 등 지금 봐도 어마어마했던 캐스팅은 물론이거니와, 박정희 유신정권부터 5~6 공화국을 배경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등을 최초 다뤘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첫 드라마였다. 실제 사건과 가공의 등장인물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대본과 연출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그리고 시청률로 이어졌고, 당시 특히 직장인, 대학생 등 남성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나 떨고있니?'라는 전국민의 유행어를 만들어 낸 모래시계의 최종회가 생각난다.


특히 고현정(혜린)을 지켜주던 이정재(재희)의 죽음이나, 마지막 회의 최민수(태수), 박상원(우석)이 대화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명장면 중에 하나이다. SBS에서 무료로 시청이 가능한 듯 하니, 오랜만에 모래시계를 정주행 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듯하다.


SBS 무료 시청 Link
https://programs.sbs.co.kr/drama/sandglass/vods/51078 


어쨌든 모래시계와 정동진은 아주 큰 인연이 있는데, 드라마 속 학생운동을 하던 혜린(고현정)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작은 바닷가 마을에 피신하게 되고 강릉의 한 간이역에서 경찰에 붙들려 도피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혜린의 비극적 현실을 대변하듯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한 그루와 쓸쓸한 간이역의 풍경은 모래시계 시청자의 가슴 한켠에 오래도록 각인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정동진이었다.(강릉 일보 기사 일부 차용)



파도치는 해안가가 바로 옆에 있던 기차역 그리고 한그루의 소나무가 인상적이였던 모래시계의 정동진역


기차역 바로 앞 몰아치는 파도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이곳은 '해외'로 오인받기도 했었는데,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도 이곳이 어디 일지가 너무나도 궁금했었고, 얼마 뒤 친구들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와 강릉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숙소인 하슬라 뮤지엄 호텔로부터 여기 정동진은 차로 5분이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이곳까지 와서 정동진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여기 정동진역에 도착하고 나니, 뭔가 모를 뭉클함이 밀려왔다.


모래시계에 등장했던 소나무가 어느 것인지는 헛갈렸다. 그때는 하나의 작은 소나무가 있었었는데, 몇 개의 소나무가 더 생긴 것으로 봐서는 그 이후 조경을 위해 공사를 했었나 싶다.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던 드라마 속 여주인공 혜린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역으로 들어가던 그 모습, 그리고 배신 아닌 배신을 맞이하고 쓸쓸히 경찰에게 연행되어 잡혀 나오던, 온갖 복잡했던 감정에 뒤를 돌아보던 그때의 그녀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정동진역을 조금만 지나쳐 가면 정동진 건너편 해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작은 굴다리가 있는데, 여기를 통과해서 지나가면 멋진 암석들로 채워진 멋진 해변을 보게 된다. 이곳의 파도는 뭐랄까 모래시계에 나온 그때의 그 장면처럼 꽤 매서운데, 아마 암석에 부딪혀 오며 파도의 소리도 흩어지는 물보라도 거세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곳의 파도가
더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정동진의 파도를 바라보며 옛 추억을 되새기다가, 천천히 발길을 밀레니엄을 기념하는 커다란 모래시계가 있는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으로 옮겼다. 해도 슬슬 그 자취를 감추려는 듯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정동진을 뒤로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초당순두부 맛집 썬한식 식당으로 향했다. 언제나 실패하지 않는 전통 하얀색 초당 순두부와 아삭한 배추가 잘 어울리는 메밀전은 오늘 하루를 위해 많은 에너지를 발산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그런 맛있는 음식이었다.


과식한 배를 쓰다듬으며 이제 제법 많이 어둑해진 호텔에 도착하니 낮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이곳 하슬라 뮤지엄 호텔의 조명과 풍경이 너무나도 멋지게 나를 맞이해줬다. 소화도 시킬 겸 이 아름다운 봄저녁도 충분히 느낄 겸, 눈과 귀로 흐르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참 동안 호텔 주변을 꽤 오랫동안 천천히 산책했다.


강릉 봄 여행.
그 두 번째 밤은 이렇게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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