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07]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 DAY 3, 하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여행은 동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모습이 틀려진다는 말이 있다.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함께하는 여행의 안정감이나 즐거움이 분명하게 있을 테지만, 그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린 여행지에서 싸우는 가족이나 커플들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는데, 어쩌면 이제껏 잘 몰랐던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 그리고 취향 등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을 잘 알고 싶다면,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
반대로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고 쓸쓸할 수 있다. 하지만 애써 누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결정은 내 맘대로 내릴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라는 것이 주어진다. 늦잠을 자고 싶으면 늘어지게 자도 좋고,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바람에 운동을 해도 좋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놨다 하더라도 좀 어기면 어떤가? '완벽한 계획이 항상 해피엔딩이 되는 건 아니기에...'
셋째 날은 예상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는데, 이젠 매일 아침의 일상처럼 되어버린 방안 커튼 개봉식을 시원스레 펼쳐보니, '영롱한 아침 해'가 수평선위로 서서히 고개 들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훅' 그렇게 가슴속으로 새로 들어온 감동은,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있을 수밖에 없도록 날 마비시켜 놓았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섬주섬 핸드폰을 들어 다행히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역시.. 동해였어.
참 이기적이지만 이런 풍경 앞에서라면, 혼자가 외로워 진다. 누군가를 가슴이 부서지도록 꼭 안으며 같이 함께 바라보고 싶다.
오늘은 강릉시내로 여행 장소를 이동할 예정이어서, 아침부터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와 짐들을 하나둘씩 챙겨 일지감치 로비로 내려와 체크 아웃했다. 이틀 동안 과부하가 걸릴 만큼 멋진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해 준 이곳, 뭔가 찐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는 듯한 아쉬운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하나 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걱정 마, 우린 또다시 만날 거야!
짐을 차 트렁크 안 구석으로 대충 던져 놓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동해의 봄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제만큼만 멋진 하루가 되자!' 혼자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강릉 시내로 출발했다.
난 여행에 있어 아주 대략적인 계획만 세우는 스타일인데,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이나 뜬금없는 스케줄이 생기곤 한다. 어쩌면 그런 예기치 못한 해프닝에서 즐거움이나 재미를 느끼는 조금은 4차원적인 정신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슬라 아트 월드에서 강릉 시내로 출발한 지 몇 분 남짓이나 지났을까? 해안가 건너편에 넓고 넓은 주차장에 놀라 '여기가 뭐하는 곳이지?' 궁금증을 유발했던 곳, 한번 들어서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이름조차 참 어려운 '등명낙가사'를 보게 된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사찰이나 절을 자주 방문하는 편인데,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유명한 곳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우연히 운명처럼 만나는 선물 같은 사찰은 꽤나 오랫동안 강렬한 기억으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난 무언가 강렬한 이끌림에 나도 모르게 이곳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벚꽃이 만개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서 '괘방산 등명낙가사'이라 새겨진 현판과 화려한 오방색 단청이 아름다운 사찰 입구를 지나면 예쁘게 단장된 길이 나오는데, 이를 조금만 따라 걸어 올라가게 되면, 시원한 약수를 먹을 수 있는 등명 감로 약수터가 나온다.
그 어떤 보약보다도 좋다는
사찰 약수는 못 참지!
또 몸에 좋다니까, 왠지 어리숙한 욕심으로 평소 먹는 물 양보다 두세 배는 많은 양의 약수를 벌컥벌컥 들어마시고, 사찰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면 여기 등명낙가사의 백미인 등명루를 만나게 된다.
등명루는 누구나 편히 잠시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신발을 벗고 올라가 딱딱하지만 너무나도 편안했던 등명루 바닥에 누워 잠시 저 멀리 보이는 동해의 바다를 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과 적당히 따뜻했던 햇살 때문이었는지,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몇십 분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하루 종일 누워 있으라 해도 좋을 만큼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던 이곳 등명루에서 또다시 나를 이끈 곳은 불경을 읊는 스님의 나지막한 소리가 퍼지는 불당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 일어나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불당 앞에 걸터앉아, 마치 내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 천천히 가슴까지 울리는 불경을 듣고 있다 보니,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또 시간이 멈춘 듯 나도, 세상도, 그리고 여기 강릉의 한적한 사찰도 하나가 된 듯했다.
나의 숨이 바람이 되고, 푸른 하늘 햇빛은 내 눈빛이 되어
온 세상을 밝힐 수만 있다면...
등명낙가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만들어졌는데, 처음은 등명사라고 불려졌으며, 고려시대까지 수많은 스님들이 참선 수도 한 유명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교 말살, 유교 정책을 펴고자 개국공신에 의해 폐사되었고, 1950년대 보타 낙가산을 따 등명낙가사로 개명, 새롭게 건물들을 다시 증축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포대화상'이 내미는 복배를 지나칠 수 없어 흐뭇한 미소로 그의 배를 세 번 만져주고 내려왔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이곳을 방문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도 그리고 내게 펼쳐질 내 인생도 아름답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강릉 시내로 들어서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어 준 주역, 강릉 로컬 커피 브랜드 '테라로사'의 커피공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강릉에 오면 꼭 한 번씩 들렸던 곳이기도 했고, 그래서 여기에도 꽤 많은 추억들이 듬성듬성 묻어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곳 테라로사 강릉 본점 안에 있는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맛난 커피와 함께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테라로사로 가는 길은 약간은 좁은 듯한 시골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테라로사에 거의 다다를 즈음 이상하리만큼 자꾸 눈에 가는 작은 레스토랑 간판이 보였다.
'다이닝 블루 레스토랑',
오늘은 저기로 가야겠다.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핸들을 꺾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이런 뜬금없는 계획 변경이나 가보지 않은, 조금은 불안한 모험의 기회를 늘 제공해 주는데, 이젠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신선하고도 행복한 즐거움이다.
레스토랑의 이름과 어울리는 아담한 푸른색이 인상 깊었던 이곳 다이닝 블루에 도착해서 들어가니, 심상치 않은 꽤 많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역시나 예약 여부를 내게 물어본 레스토랑 직원분께서는 현재 예약자로 인해 자리가 없다고 하시면서 웨이팅 리스트에 나를 올려주셨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괜찮은 레스토랑이라는 이야기니까 오히려 뭔가 잘 찾아온 나의 도전과 본능적 '감'에 흐뭇해진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레스토랑 직원분께는 테라로사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고 직원분도 가능 여부를 전화로 알려주시겠다 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여기 테라로사 강릉점은 높은 천장 지붕과 양 옆으로 펼쳐진 2층 내부 테라스,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뭔가 더 엔틱하고 올드했었던 그리고 약간은 미로와 같았던 진짜 강릉 본점이 더 그립기는 하다.
따뜻한 예가체페 콩가와 레몬 치즈 케이크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시간 날 때 읽으려던 참 진도 안 나가는 책을 폈쳤다. 역시 이 책은 읽지 말라는 계시였던지,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다이닝 블루로부터 자리가 났다는 전화가 와서 빛의 속도로 일어나 다이닝 블루로 달려갔다.
'진도 안나가는 책은 애써 읽지 말자...' 나랑 궁합이 안맞는거다.
여기 다이닝 블루는 1인 셰프 레스토랑인데 식사 주문과 동시에 조리가 시작되어 다소 시간이 지체된다고 한다. 직원분께서 양해의 말을 전해 주셨는데 오히려 그게 더 믿음이 가고 좋았다. 식당 안은 외부의 파란색과는 대비되는 진한 오렌지색 벽과 적절하게 배치된 창이 모던함과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메뉴를 살펴보니 이곳은 1일 한정으로 스테이크를 메인 음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듯했지만, 가벼운 점심을 원했던 나는 부리타 샐러드랑 직접 재배한 감자로 만든 트러플 크림 뇨끼를 주문했다.
과하지 않고 적당히 입맛을 돋궜던 샐러드와 트러플 향이 강원도 감자의 향과 어울려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내렸던 뇨끼도 맛있었다. 나중에 자리를 방문하신 셰프님께서 직접 음식에 대해 설명해 주셔서 더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뭐하나 부족할 것 없었던 행복했던 점심 식사 후, 수제 초콜릿 디저트를 입안에 넣고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여기를 다시 방문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추억을 다시 곱씹을 수 있을 그 때까지 이 곳을 잘 지켜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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