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08]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 DAY 3, 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강릉 시내에 들어가 처음 향한 곳은 '오죽헌'이었다.
강릉 하면 떠오르는 명소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오죽헌'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강릉을 여행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아주 오래전 방문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제 그곳에 대해 자세한 것을 꼬치꼬치 캐어보면 그때부터 '갔었나?' '안 갔었나?'를 반복하며 헛갈려한다. 그래 오죽헌은 가보지 않았지만 너무 유명해서 마치 가본 것 같은, 그렇게 이미 우리에겐 익숙한 곳이다.
나 또한 정확한 기억이 없다. 당연히 와본 적이 있는 듯도 한데, 그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죽헌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 예술가이자, 현모양처로 알려진 신사임당과 그리고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로 알려진 율곡 이이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이 집은 조선시대 문신 최치운이 처음 지었다고 하는데, 대략 지금부터 약 600여 년 전 일 것이다.
오죽헌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옆면에서 볼 때 멋진 여덟 팔자 모양을 한 지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특히 오죽헌은 이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오천원권에 그 전경이 사용되었는데, 실제 촬영된 촬영 장소에서 비슷한 풍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그 위치를 표시해줬다.
고뤠? 그럼 나도 한 장~!
오래된 고택이 선사해 주는 특별한 '안정감'과 '편안함'이 있는 듯 하다. 아주 어릴 적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외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때의 기억이 나서인 지, 아님 풍류를 즐기던 옛 어른들의 멋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곳은 나도 모르게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준다.
고택 내 처마며, 대청마루, 주방 아궁이까지 천천히 둘러본 후,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았다는 몽룡실에 서서 신사임당의 영정을 바라보니, 꼭 신사임당과 이율곡 같은 위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애틋하고도 냉철해야만 했던 사랑이 떠오른다.
그리고내겐 신사임당 보다 더 훌륭하셨던, 자주 연락 못 드리고 사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래, 이런 곳에나 와야 어머니 생각을 한 번 더 하지..'
이런반복된 반성은 마치 불효자들의 특기인 듯하다.
오죽헌을 나와 탁 트인 광장으로 나오면, 향토민속관, 시립박물관 등 2개의 큰 건물을 마주하게 되는데, 관람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니 한 번씩 둘러보는 게 좋을 듯하다.
향토 민속관은 오색의 화려했던 우리 선조의 의상이나 액세서리 전시물들이 눈에 띄었는데, 지금 봐도 그 색감이나 디자인이 세련되고 멋스럽게 느껴졌다.
강릉 시립 박물관은 토기, 조각상, 그림 등 강릉을 대표하는 문화재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원래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에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립박물관 관람까지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동안 나를 고민하게 만든 표지판이 있었다. 그건 오죽헌 숲길 안내 표지판이었는데,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꼭 둘러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표지판에는 30분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조금만 서두른다면 510m 정도이니 훨씬 짧은 시간 내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나무, 그리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숲길로 들어서는 입구엔 대나무와 소나무가 묘하게 잘 어울려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런 풍경을 보다 보면 뭔가 마법에 홀린 것처럼 안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듯이 걸어가게 되는데,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소나무 숲은 신비한 느낌마저 전달해 준다.
마치 아무도 몰랐던 비밀의 장소를 발견한 것 마냥 난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어마시며 생각했다.
헤헤, 뭔가 또 하나 건진 듯해~!
즐거워~!
나에겐 강릉에 살고 있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같이 사고도 많이 치고 술도 많이 먹고, 함께한 추억만 이야기하자고 치면 몇 날 며칠을 밤새도 모자랄 지경의,어쨌든 정말 격이 없는 고등학교 시절의 오래된 친구다. 강릉이 내게 특별한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내 어릴 적 추억의 조각을 함께 나눠 가지고 있는 친구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다.
'난데, 나 며칠간 강릉 놀러 갈 건데 언제 시간 돼?'
'그냥 와~ 와서 전화해~!'
그래... 친구란 이런 거지 뭐.
오죽헌을 떠나 난 오늘부터 묵게 될 세인트 존스 호텔로 이동했다. 세인트 존스 호텔은 평창 동계 올림픽 즈음에 생겨난 몇몇 규모가 있는 호텔 중 하나였는데,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에 이어진 바다와 해변가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혼자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는 깔끔한 호텔 방과 오션 뷰, 그리고 얼마든지 방콕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넷플릭스까지, 맘에 들었다.
대충 짐들을 풀어놓은 뒤 나는, 오전, 오후 나름 바쁘게 이동했던 터라, 잠깐 동안의 휴식이 필요했다. 그대로 몸을 침대에 던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친구로부터 온 전화에 잠을 깼다.
친구와 친구 와이프에게 맛난 걸 사주고 싶었던 나는, 만류하던 친구를 설득하여 강릉항 수산물 회센터의 단골가게를 소개받았다. 여기 회센터는 안목해변의 끝쪽 강릉항에 들어서면 바로 만나볼 수 있는데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아기자기하게 수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직접 산 회를 맛볼 수 있는 공용 식당이 있는 구조이다.
지인 찬스로 그리고 사장님의 넘쳐나는 정과 인심으로 '이리 많이 받아도 되나'하는 수준의 회와 해산물들을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였다.
서울 토박이였던 친구가 서울을 떠나 이곳 강원도 강릉에 터를 잡은 이유는 아마도 강원도하고 친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스키 국가대표 경력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그는 여전히 겨울이면 스키 관련 일과 사업을 한다.
그래서 사실 그를 만나려면 스키 시즌이 끝나, 보다 한가해지는 이때쯤이 제격이다.
그는 스키뿐만 아니라 맛난 음식을 만드는 재주 또한 있어서 작은 선술집을 강릉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강릉 로컬 맛집이라 소문난 '홍주작'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설렘에 두근거림을 참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앞까지 나와 있는 친구 와이프가 먼저 날 반겨준다.
'오빠~!'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서로 껴안고 둥실둥실을 몇 번씩 한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는 이제 막 도착해 폭탄 주문을 한 손님들의 음식을 만드느라 주방에서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그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나는 이곳을 보니 친구가 압구정동에서 운영했던 예전 가게가 떠올랐다. 참 그때 술 마시러 많이 갔었는데...
주방에서 나온 친구와 난 수컷들만 알 수 있는 찐한 포옹을 꽤 오랜 시간 했다.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않아도 우린 알 수 있었다. 이미 많은 대화를 이 격한 포옹 속에서 했다는 걸... '잘 지냈지?' '그럼~!'
그렇게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오랜 시간 동안 깔깔거렸다. 아마 코로나 때문에 정해진 시간이 아니었다면 남자들끼리의 수다로 밤을 새웠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우린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자리를 일어나서 보니, 내 것과 똑같은 친구의 스타워즈 에어팟 프로 케이스를 발견했다. 우린 어이없이 서로를 보며 또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뭐 못 살 정도의 희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한정판인데...
'그러니까 친구지...'
그렇게 강릉의 세 번째 밤은 오래된 우정으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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