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10]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DAY 4, 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허난설헌 생가에서 받은 그녀의 왕성한 '예술혼'과 좌중을 압도하는 '기' 때문이었는지, 오랫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던 소나무 숲과 벚꽃 길 산책 때문이었는지, 꽤나 노곤 노곤해진 몸을 달래기 위해 잠시 호텔에 쉬러 온 나는, 침대에 누워 아까 커피숍에서 친구가 추천해 준 여행 장소를 생각해 봤다.
'이번엔 산으로 함 가봐!'
그래... 잠시 잊고 있었었는데, 여기 강릉이 정말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동쪽으로는 시원한 동해 바다와 그림 같은 해변이, 그리고 맞은편 서쪽으로는 끝없이 드리워진 드높고 푸르른 태백산맥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 다른 매력을 전달해 준다는 것일 텐데, 그건 마치 뭐랄까.. 아름다운 두 얼굴이 함께 합쳐져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가끔 바다와 해변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강릉 여행 서너 날째, 이제 일상의 한 풍경처럼 되어가는 이곳과 잠시 떨어져 새로운 여행지에 온 듯한 설렘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산과의 만남'을 적극 추천한다.
'그래, 잠시 떨어지면 오히려 바다가 더 그리워질 수도 있어~!'
누군가가 '헤어져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귀안을 간질간질거린다.
'뭔 개소리야..' 혼자 피식하고 웃었다.
어쨌든 큰 결심은 필요 없다. 차로 몇십 분 정도만 움직이면 우리가 상상했던 나무와 풀내음이 그득한 그곳에 갈 수 있으니...
친구는 발왕산 정상에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맞이할 수 있는 일몰이 꽤나 괜찮으니 머리를 식히고 오라고도했다. 난 처음에 친구가 머리를 식히고 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 상상 속에는 발왕산 정상의 풍경이 아른거려 친구의 말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운이 좋다면'이라는 말이 좀 거슬렸다.
여기 산에서 보는 일몰도 동해 바다의 해돋이처럼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건가?
'까짓 거 운에 맡겨보자~! 그래도 산 정상은 생각만 해도 좋잖아?' 모험심이 발동하기 시작한 나는 작은 도전을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발왕산으로 출발했다. 발왕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는 흔히 용평 스키장으로 알려진 리조트 단지 내에 있는데, 스키나 스노우 보드를 즐겨 타지 않는 나에게는 여기도 참 오랜만에 오는 곳이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님 시즌이 끝난 스키장의 시기 때문인지, 사람 한 명 없던 발왕산 케이블카 스테이션을 지나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놀이기구(?)인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출발했다.
케이블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산 정상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사방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산과 나무의 풍경은 또 다른 설렘과 볼거리를 전해 준다.
산 정상에 도착하면 이곳이 자랑하는, 스카이워크가 있는 발왕산 정상 전망대에 다다르게 되는데,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 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스카이 워크를 걷는 것조차 나름의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데, 조심조심 걸어 스카의 워크의 마지막 끝 난간에 다다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드높은 강원도 산이 주는 웅장함과 광활함에 가슴이 벅차오르게 된다.
두려움을 떨치고 이곳 스카이 워크를 걸으니, 스타워즈의 두 주인공인 루크나 아나킨 스카이 워커와 같은 제다이 기사가 된듯했다.
'아 맞다, 친구 녀석이 머리를 식히라는 게,
스타워즈 포스를 느껴보라는 것이었구나!'
드디어 같은 스타워즈 광팬인 친구가 내게 전한 그 의미심장한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 듯했다.
한참을 스카이 워크에서 몰아치는 그림과 같은 풍경에 넋을 잃고 있다가, 아직 눈도 녹지 않은 이곳 정상의 추위와 세찬 바람을 견디기 힘들 즈음, 잠시 몸을 녹이러 전망대 카페에 들어왔다. 혹시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꽤 두꺼운 겉옷을 준비하시는 걸 추천드린다. 계절에 따라 틀리겠지만, 이른 봄 해질녁 날씨는 엄청 춥다.
아직 일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는터라 따뜻한 커피 한잔을 시키고 카페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까부터 부쩍 구름이 많이 끼기 시작했던 날씨가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되었다.
'볼 수 있으려나...'
이윽고 일몰 시간이 근접했다는 걸 느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우와!!!
솔직히 감탄사밖에 글로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거짓말같이 흐린 구름 사이로 빼곡히 내민 붉은 해가 거친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기가 천국일까? 아님 신이 주신 선물일까?
이곳에 거주하는 현지인조차 보기 힘들다는 강원도 정상에서 맞이하는 기적과 같은 일몰...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괜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머리 정수리 마저 찌릿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감사합니다.
난 어느 누구를 향한건지 그리고 그 이유도 잘 모르지만 그냥 '감사하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연이 주었던 감동과 속죄의 진한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멍하니 서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멋진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케이블카 안에선 뭔가 심정이 계속 복잡해졌고 알 수 없는 미묘한 울림을 진정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승착장에 도착하니 강원도 답게, 이미 날씨는 진한 어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에너지를 너무나도 소비한 탓인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허기가 져왔다.
이곳 대관령은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냥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먹어도 최소 몇십 년씩 하는 오랜 미식의 역사와 전통을 가졌기에 실패하기가 더 어렵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다.
오히려 맛집이 많으면 더 고민된다. 뭘 먹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 끝에 난 메밀막국수로 유명한 방림 메밀막국수 분점을 찾았다. 원래 본점은 여기에서 꽤 먼 거리인 평창군청 근처에 있는데 1968년에 개업했으니 벌써 50여 년이 넘은 오래된 맛집인 거다.
예전에는 방림 메밀막국수를 먹으려고 일부러 그곳으로 돌아오기도 했는데, 이곳 대관령 분점이 생기고 나서는 본점에 가는 일이 좀 더뎌진 듯도 하다. 암튼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에도 나오는 이곳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다. 간판과 문안으로 보이는 내부도 불도 켜져 있는데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간판에 적힌 전화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를 않는다.
일몰 보는데 내 운을 모두 썼다보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이런 순간이 꽤 서글프고 안타깝긴 하지만, 일몰의 감동을 되새기며, 애써 나를 진정시키고 또 다독거렸다.
난 바로 납작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방림 메밀막국수 vs 납작 식당을 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먹고 싶은 게 달라지는 것뿐인 게다. 그만큼 여기 납작 식당도 그 오래된 역사와 전통의 맛을 자랑하는 유명한 식당이다.
난 예전과 같이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한 오삼불고기, 그리고 꽤 괜찮은, 맛난 막국수를 동시에 시켰다. 혼자 먹기에 꽤 많은 양이지만 오늘은 과식할 수 있다. 다 먹어 치워 버릴 테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맛보는 오삼불고기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대로 일 테고, 오늘 진한 울림을 준 이곳의 일몰의 감동도 그대로 일 텐데, 혹시 나만 늙고 나만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센치함이 잠시 몰려왔다.
그래. 몸은 변할지라도,
온전한 정신만 변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이 수년 후 또 다른 감동의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 넷째 날의 밤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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