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11]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DAY 5, 하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눈을 뜨니 닫힌 커튼 사이로 꽤 밝은 아침의 눈부심이 방 안으로 스며 들어오는 듯하다. 한껏 기지개를 늘어지게 피고 주섬주섬 이불을 걷어내 일어나고 보니, 아침 일찍 맡는 바다의 내음이 그리워졌다.
'훗, 산에서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바다가 그리워 지냐...' 나의 조급함과 인간의 간사하고도 걷잡을 수 없는 변덕에 웃음이 나왔다.
옷을 대충 걸치고, 호텔 앞 걸어서 30초도 안 걸리는 해변으로 나섰다. 방풍림으로 조경된 멋진 소나무 숲을 지나 탁 트인 해변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림 같은 바다가 나타난다. 이곳은 호텔 투숙객들이나 관광객들을 위한 '인생 사진'을 찍는 다양한 조형물들도 있으니, 바다와 해변을 산책하면서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침바다가 이젠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봄 날씨가 완연해, 해변을 꽤 오랜 시간 걷다 보니 근질근질 맛있는 커피가 간절해졌다. 강릉이 좋은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이젠 상향 평준화가 많이 되어버린 훌륭한 커피전문점이 많다는 것이고, 차로 불과 5분 안에 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난 안목해변 제일 끝에 위치한 '산토리니'로 출발했다.
산토리니 이곳은 강릉커피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재완 대표가 보다 전문적인 스페셜티 및 스페셜티 블랜드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10여 년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까지 커피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시음회나 퍼블릭 커핑을 개최하고 있다. 수년 전 이곳에서 먹은 훌륭한 예가체폐 핸드 드립 커피를 다시 주문하고, 테라스에 앉아 안목해변을 바라보니, 더할 나위 없는 평온한 아침을 만끽하는 것 같아 맘이 푸근했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항상 저녁까지 가게를 운영해야 했기에 강릉에 머무는 동안 맛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었었다.
"글쎄.."
"삼숙이탕 어때?"
"매운탕 같은 거지? 나 매운 거 못 먹는데... 딴 건 없을까?"
"아니다... 그냥 삼숙이탕 먹으러 가자!!"
사실 친구가 처음 삼숙이탕을 추천했을 때 뭐랄까 그렇게 관심이 가진 않았다. '뭐 매운탕이 다 그렇고 그렇지 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맘을 고쳐 먹은 건 내 취향을 잘 아는 친구가 애써 추천한 음식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 생각했다.
삼숙이탕과 알탕 이렇게 2개의 음식만 파는, 회 안 파는 '해성 횟집'은 강릉의 또 다른 명소인 '중앙시장'안에 위치해 있다. 단언컨대 몇 번을 방문하여 익숙해 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일반인이 한 번에 찾기 힘든 미로 같은 길을 돌고 돌아 2층 한 구석을 가야 만날 수 있다.
난 해성 횟집의 간판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아니 이건 누구라도 이 집의 포스를 느꼈을 것이다.
조금만 늦어도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여기 해성 횟집에는 꽤 이른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운 좋게 거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 우리는 전설의 삼숙이탕 2개를 주문했다.
큰 냉면사발에 가득 담겨 나온 푸짐한 삼숙이탕은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흘렀다.
그리고, 근래 먹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맛있었던, 지금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인다.
삼숙이의 푸짐한 생선살과 내장, 맵거나 텁텁하지 않은 진하고 개운한 국물이 향긋한 미나리와 함께 입안에서 감칠맛을 터트린다. 한 수저 국물을 입안에 넣고 나면, 삼숙이탕을 모두 비울 때까지 다른 반찬에 손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와 이건 진짜.. 와 진짜..
혼자 미친 사람 마냥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친구의 추천을 의심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현지인 추천하는 맛집은 무조건이다.'라는 큰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곳의 삼숙이탕은 정말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강릉에 가면 무조건 먹어야 하는 음식 1순위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행복한 식사 후, 친구와 잠시 중앙시장을 거닐었는데, 디저트 겸 대게 고로케들을 종류별로 주문했다. 이곳 중앙시장에는 여러 유명한 맛집들이 포진해 있으니, 하나하나 찾아가 맛보는 것도 꽤 즐거운 재미를 제공할 듯하다.
우린 얼마 전 방문했던 남항진 친구 지인의 카페로 이동하여 사온 고로케들을 카페 사장님, 직원분들과 나눠 먹었고,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추억 꺼내기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강릉의 관광지를 검색하다 보면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 박물관'이 꽤 등장하게 되는데, 이름만 보고서는 선뜻 '여기 꼭 가야겠다!'라는 끌림이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 마다 관심사나 취향이 틀리기에 이를 객관화하긴 무리가 있으나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꽤나 이곳을 들락거렸던 나에게도 그동안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 박물관'은 아이들 놀이터 정도로만 생각되어서 '나중에 기회 되면...', 이렇게 항상 후순위 방문 장소로만 생각해 왔고, 그래서 생각만 있었지 막상 방문하지 못했던 곳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이젠 가볼 때가 된듯해!'라는 사명감과 '이번이 아니면 영영 못 볼 것 같아!'라는 불안감이 섞여 마치 이미 정해졌던 스케줄이었던 것처럼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되었다.
단언컨대, 이곳 박물관은 이런 선입관을 멋지게 깨 주는 볼거리가 풍성했던 명소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긴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대부분 비슷했다.
'기대 안 하고 왔는데,
유익하고 만족감이 아주 높았던 곳'
이곳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과학 박물관은 2개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건물 사이의 이어지는 통로가 있어 한번 입장하면 하나의 건물과 같이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박물관의 시작은 1980년대 그러니까 지금부터 40여 년 전 작은 '참소리 방'으로 시작하여 1990년대 정식 박물관으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2007년 이곳으로 확장 이전하였다고 한다.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은 약 2500점 이상, 에디슨 과학 박물관은 3000점 이상의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는데, 이는 전 세계 축음기/에디슨 관련 전시물의 3분의 1의 규모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작품이라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시간에 맞춰 내부 안내를 맡으신 직원분께서 너무나도 친절히 동행하며 하나하나 소장품이나 전시물에 대해 소개해 주시는데, '개인이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수집했을까? 이것은 개인적인 사명감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으로 경이롭기만 했다.
특히 직접 시연해 주셨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오랜 시간이 무색할 만큼 맑고 깨끗했으며, 아름다웠다. 중간에 잠시 들린 극장에서는 세월이 묻어나는 오래된 앰프와 스피커로 남부 유럽의 이탈리아 가곡을 청음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으며, 축음기뿐만 아니라 초기 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등 다양한 전자기기까지 보고 경험할 수 있어서 관람하는 시간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자녀가 있는 가족이라면 함께 관람하기에 최고인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충분히 유익하고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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