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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Apr 14. 2022

혼자먹는 스테이크가 더 맛있는 이유

[강릉 12] 혼자가 좋은 강릉 봄 여행 :DAY 5, 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22 | 아날로그로의 긴 여행, 손성목 영화박물관


참소리 축음기와 에디슨 박물관의 관람이 끝나고 나면, 자연스레 바로 옆 '손성목 영화박물관'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여기 참소리, 에디슨, 영화 박물관 등 함께 있는 모든 곳의 전시물을 관리하고 수집하시는 분이 동일한 '손성목' 선생님이시기에, 같은 직원분께서 이동을 안내해 주신다.

 


손성목 영화 박물관은 영사기, 환등기, 영화 카메라 등 각종 영화 기술과 관련된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는데, 그 규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설립자이자 수집가인 손성목 선생님께서 50여 년이 훌쩍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 30여 개국을 여행하시면서 수집해오신 영화 기술과 관련된 15,000여 점의 희귀 기기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추측컨데 에디슨의 흔적들을 수집하시면서 자연스레 영사기 등 영화 관련된 부속 희귀 자료나 기기들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고, 아마 수집가적인 기질이 발동하셔서 하나둘 챙겨 두셨던 그런 자료들이 모여 여기 별도로 영화 박물관을 설립하시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시관 내부는 크게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00여 년 전이 지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관람할 수 있는 1층 특별 전시관을 지나 2층 계단으로 올라가면 영화기술의 역사를 시대별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아날로그의 장비들이 눈에 띈다.


특히 박물관에서 자랑하는, 시대를 대표하는 카메라가 전시되어있는데, 이는 1939년 개봉되어 전 세계가 사랑하는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쓰였던 것으로 전 세계에 단 몇 개 밖에 남지 않은 아주 희귀한 것이라 한다.


잠시 추억을 되내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인 비비안 리가 했던 명대사인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멋진 대사의 원문은 느낌이 사뭇 다른데,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난 이 주옥같은 대사를 볼 때마다, '번역'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왜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는 일인지를 깨닫는다. 만약 번역가가 '내일은 또 다른 날이야'라고 해석했으면 어땠을까?


복도와 계단에는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희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꽤 근래에 개봉했던 포스터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지속적으로 콘텐츠나 전시물들을 교체 전시하고 관리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오랜 기간 동안 영화, 영상 기술 산업에 종사했던 나에게는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영화 기술과 관련된 자료나 기기들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었던 점이 좀 아쉬웠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한 개인이 수집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방대한 양의 수집품, 그리고 그가 영화를 대하는 자세, 진정성 있는 아날로그적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그런 아쉬움 정도는 충분히 묻힐 정도로 훌륭한 박물관이었다.


레트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즘,
만약 찐 아날로그를 느끼고 싶다면, 이곳보다 훌륭한 곳이 있을까?



1층과 2층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복도와 계단의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나면, 작은 영화관이 마련되어 있는 지하로 이동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실제 예전 극장에서 사용된 오디오가 설치되어 그때의 음악과 영상들을 그때의 느낌으로 관람할 수 있는데, 오늘은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가 틀어졌다. 수십 년 전에 부모님과 극장에서 봤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있자니,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오랫동안 한국 방송/영상 기술 발전에 힘쓰시다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시 생각났다.


여기 멀리 강릉에서도 이렇게 문득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그리운 사람과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관람을 끝내고 나서, 잠시 건너편으로 펼쳐져 있는 경포호를 구경하러 길을 건넜다. 호수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벚꽃나무들이 이제 그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고, 그 사이로 내리는 벚꽃을 눈을 맞으며 산책하는 일도 꽤나 즐겁다.


강릉은 완벽한 여행지라고 한다,
이곳엔 바다, 산, 호수 모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23 | 스테이크 핫 플레이스 강릉, 미트 컬쳐


강릉을 여행하고 있다고 마치 자랑처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리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이 꽤나 뜨거웠었다. 코로나가 잠시 주춤하는 진정세를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여행'을 즐기기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 많은 부담이 있었고 사람들에겐 배출하지 못했던 '떠나고 싶은 욕망'과 '이에 대한 그리움'이 계속 쌓여만 가고 있는 시기였다.


주관적이고도 지극히 개인적인 자화자찬이지만, 어쩌면 나의 보잘것없는 사진 몇 장의 SNS 여행기록이 여행에 목말라있던 지인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강릉 여행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한 SNS 친구이자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는데, 오랜만에 연락하는 터라 서로의 안부도 묻고 일상적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물론 지인이 내게 연락한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내 여행으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스테이크 좋아하시면 미트컬쳐에 함 가보세요!  


자기도 근래에 강릉여행을 다녀왔었다면서 레스토랑 한 곳을 추천해 줬는데, 또 다른 자신의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방문했었다고 했다. 꽤 질 좋은 스테이크와 음식들을 합리적 가격에 맛볼 수 있으니 시간이 되면 함 가보라고 하는 것이다.


스테이크는 참을 수 없지!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날 바로 강릉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였던 '미트컬쳐'를 방문했다. 당연히 이번에는 꼼꼼히 예약도 마치고... 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이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도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트컬쳐는 역시나 예약한 손님들로 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천천히 메뉴를 둘러보던 나는 골뱅이 에스까르고, 살팀보카 스테이크, 그리고 사이드로 시저 샐러드를 주문했다.




대체적으로 음식은 높은 퀄리티의 맛을 보여줬는데, 다만 에스까르고와 함께 제공된 빵이 좀 실망스러웠다. '뭐냐 이거 뭐 이리 눅눅하냐... 쩝'


살팀보카는 프로슈트의 감칠맛이 스테이크의 풍미와 맛을 잘 살려줘서 행복한 식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오로지 훌륭한 스테이크만을 천천히 음미하며 그 하나하나의 맛을 느끼는 순간 만큼 또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 있을까?


매니저께서 식사 후 내가 뿜어대는 포스 때문이었는지, 아님 혼자 식사하는 내가 궁금했어서 그랬는지, 옆으로 오셔서는 음식이나 서비스의 퀄리티에 대해 물어보셨고, 물어보면 솔직히 다 이야기하는 스타일인 나는 아쉬운 점을 거침없이 이야기해 드렸다.


'빵이 좀 별로였어요... 그리고.. 중얼중얼...'


매니저께서는 원래 제공하던 빵이 있었는데 다 떨어져서 대체한 거라며 죄송하다 말씀 주셨고, 후식은 감귤 소르베와 수제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시켰는데 소르베는 공짜로 주시겠다고 하셨다. 뭐 공짜 음식을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레스토랑의 서비스와 그 배려가 감사했다.


서울에 있던 역량 있는 셰프들이 건물주의 횡포에 지쳐, 이곳 강원도로 많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과는 틀리게 강원도로의 여행이 간편해진 요즘 '미트컬쳐'와 같은 훌륭한 레스토랑들이 이곳 강릉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 나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4 | 쉿! Speakeasy Bar, 307 PUB & POP


꽤나 만족할 식사를 마친 나는, 호텔에 도착해 오늘 하루도 바쁜 시간을 보낸 나를 칭찬하며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쳤다. 몸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듬성듬성 닦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내일이면 떠나지?
오늘이 마지막 밤이구나!


시간이 어쩌면 이렇게 빨리 가는지, 진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호텔 방안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는 너무나도 '우울'했고 뭔가 그럴듯한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 일단 나가자! 어찌 되겠지'

아무런 계획 없이 호텔방을 나선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고 그리고 대부분 호텔의 꼭대기에 있는 라운지가 궁금해졌다.


'아.. 호텔 꼭대기에 간 적이 없었지? 여기나 한번 가봐야겠네!'

생각해 보니, 여기 강릉의 여기저기를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묵고 있던 호텔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모든 가게나 레스토랑이 일찍 닫으니 괜히 지금 시간에 새로운 곳을 찾아 강릉을 떠돌다 허탕을 칠 수 있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여기 '307 PUB & POP'은 서울에서도 한참 유행을 타던 SpeakEasy Bar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술집과는 상관없을 듯한 꽤 엔틱한 사진관이 보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약간의 모험심과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아래와 같이 수상한 문구가 적힌 종이와 이상한 전화기가 눈에 띄는데, 뭔가 인디아나 존스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여러분이 입장하고자 하는 곳은 스피크이지(Speakwasy) 바입니다.

스피크이지는 미국에서 1920~1930년대 초반까지 시행된 금주령 시기에 무허가 술집의 업주들과 손님들이 경찰 등 정부의 단속을 피하면서 "조용히 말해(Speak Easy)"라고 하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간판도 없이 은밀하게 숨겨진 곳, 아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곳, 나만의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곳,

그곳으로 입장할 준비가 되셨나요?


흥미진진하다. 꼭 이럴 때면 잘하던 산수도 잘 안된다. 몇 번의 어이없는 실수를 거듭한 뒤, 드디어 알 수 없는 새로운 그 은밀한 공간으로의 깜짝 놀랄 문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간 세인트 존스 호텔의 307 PUB & POP은 모던한 분위기의 캐주얼 바였는데, 아래 풀장과 해변 그리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테라스가 인상 깊었다.


조금은 쌀쌀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바닷바람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느낄 수 있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나는,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 한잔을 하는 것 마냥, 칵테일 한잔을 시키고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준 이번 여행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랫동안 했는지 지금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건..


'여기 오길 잘했다'라는 것이었고,
모든 일의 시작은 작은 용기에서부터라는 거였다.


그날 난 앞으로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여러 선택을 했는데, 모두 작은 용기나 결심이 필요한 것들이었다.그렇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은 소리소문없는 Speakeasy바와 함께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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