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02]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2, 하나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하아~...
누.. 누구신지?
목포의 두 번째 날 아침, 느지막이 게으름을 피우다 일어난 나는, 퉁퉁 부어오른 내 얼굴을 보며 잠깐의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새우 바게트 때문인 게 확실한데, 야심한 밤에 수천만 배 이상 더 맛있어지는 음식들과의 사랑을 나누려면 이 정도의 굴욕 쯤은 '쿨'하게 웃어 넘겨줘야 한다.
'작아질 거야!'라는 헛된 기대감으로 찬물에 푸닥 푸닥을 몇 번씩 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변화 없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부어오른 얼굴이 원래 내 얼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온갖 짜증과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는 이럴 땐, 효과 100%인 '외면과 긍정의 기술'을 쓰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그래, 앞으로 잘생겨지는 일만 남았다..
우리나라 유명 관광명소 내에는 많은 수의 케이블카들이 운영되고 있는데, 기다리는데 너무 큰 시간을 투자하지만 않는다면, 난 큰 의심과 고민 없이 케이블카를 즐기는 편이다. 여기 목포에도 2019년 오픈한 '대단한' 케이블카가 있는데, '두말하면 잔소리! 유 머스트 해브!!'라고 하고 싶다.
이곳 목포 케이블카는 도심에서 시작되는 '북항 스테이션', 그리고 바다에서부터 시작되는 '고하도 스테이션' 이렇게 두 개의 스테이션 중 하나를 골라 탑승하면 되는데, 뭔가 선택의 우유부단함에 고민스럽다면, 아무래도 도심과 연결된 북항 스테이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왕복 후 일정을 소화하기에 가장 무난할 것이다.(물론 중간에 있는 유달산에서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는데, 유달산 정상까지 걸어야 하는 이 루트는 논외로 하고...)
오늘은 무지 바쁜 하루가 될 텐데!
서두르자!!
목포 케이블카는 오전 10시부터 운행을 시작하는데, 오늘 하루 일정이 빠듯해 1분 1초를 아껴 써야 하는 나는 거의 빈틈없는 10시 정각에 맞춰 북항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목포 시내를 출발하여 유달산 정상을 ‘ㄱ’ 자로 지나, 푸른 바다가 감싸는 반달섬 '고하도'에 도착하는 케이블카의 여정은, '산'(설악산 케이블카)이나 '바다'(여수/부산 송도 케이블카), '도심'(남산 케이블카)'을 중심으로 설계된 다른 유명 관광지와는 달리 '산', '바다', '도시'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멋지고도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준다.
북항 스테이션에서 탑승한 케이블카는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유달산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데, 좌측으로 부터 뒤쪽으로는 목포시내가 우측으로부터 뒤쪽으로는 목포대교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 케이블카는 국내에서 가장 긴 3.23km의 탑승거리를 가지고 있어 충분한 시간 동안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155m에 이르는 세계 두 번째 높이의 지주 타워인 케이블카 5번 타워를 지날 때면 온몸에 전율이 바싹 일 정도로 웅장한 쾌감과 기분 좋은 떨림을 준다.
이거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더 찌릿!!
혹시 목포 케이블카 탑승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최소한 2~3시간 아니 그 이상이라도 좋을 넉넉한 시간을 배정해 두자. 케이블 탑승 시간만 왕복 40여분이 소요되는데, 그보다 더 멋진 주변 스팟들을 두루두루 보다 보면 아마 시간에 쫓겨 많은 걸 놓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약 20여분 목포시내와 유달산 그리고 고하도를 둘러싼 바다 위를 건너다보면, 남부 승강장인 '고하도' 스테이션에 도착하게 된다. 우선 승강장 밖으로 나가 울창한 나무가 주는 신선한 향기를 발가락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힘을 주어 푹 적셔보자!
이곳 고하도는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이 불타버린 우수영을 떠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새로운 수군 사령부를 설치한 곳인데, 이곳에서의 노력으로 조선 수군을 재건한 뒤, 강진현 고금도 덕동으로 진을 옮겨 그 유명한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깊은 이곳 고하도는 많은 볼거리들이 즐비한데, 모든 곳을 다 둘러보려면 최소 한나절 이상을 투자해야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합리적'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니, 가장 그럴듯한 루트를 고민해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둘레 숲길을 천천히 걸어 고하도 전망대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그 이후 고하도 해안데크까지 갈 것인지는 시간과 컨디션을 두루두루 판단해서 결정하면 될 것이다.
고하도의 안내표지판을 지나, 둘레 숲길로 들어가는 긴 언덕 계단을 지나면, 저 멀리 바다 건너로 보이는 케이블카와 유달산이 눈에 들어온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그리고 밉지 않을 정도로 재잘거리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벗 삼아 천천히 꽤 오랜 시간을 걷다 보면, 둘레길 정상에 서있는 굉장히 특이하고도 멋진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 여기가 바로 고하도 전망대다.
고하도 전망대는 이순신 장군의 13척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전망대인데 그 외형이 굉장히 특이하고 아름답다. 여기 둘레길의 정상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목포 대교를 지나 고하도로 진입하는 도로에서도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에서 건너오는 동안에도 보는 이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1층은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 공간, 2~5층은 전망대 및 전시공간, 그리고 옥상엔 옥외 전망대가 있는데, 옥상까지는 꽤 헐떡거리는 숨을 참고 올라가야 하니, 너무 처음부터 진을 빼거나 서두르지 말자.
이후는 해안데크를 따라 용머리까지 좀 더 걸어가서, 해안절벽과 바다 그리고 목포대교 바로 아래를 구경할 수도 있는데, 난 잠깐의 고민 후 다시 북항 스테이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난 여기까지!
참을 수 없는 떡갈비가 나를 부르니~!
사실 고백하자면, 퉁퉁 붓고 한참 못생겨진 내 얼굴을 확인하기 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일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목포의 유명한 떡갈비 맛집 '성식당'을 예약하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예약 없이는 거의 식사를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오전 11시부터 가능했는데, 오전 케이블카를 탈 생각이었던 나는 12시로 예약을 마쳤다. 또한 기본 2인을 주문해야 하는 식당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1인분은 별도로 포장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흔쾌히 그리 해주신다고 했다.
이곳 '성식당'의 떡갈비는 굉장히 특이하기로 유명했다. 거의 대부분의 방문객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일부 사람들 사이에선 꽤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는데, 나는 멈출 수 없는 호기심에 이곳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떡갈비에 '불호'가 있다고?
난 우리나라의 고기류 전통음식 중 간장을 기본으로 하는 '갈비', '불고기', '떡갈비' 등을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이미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사람들에게 검증된 맛이라는 건데, 도대체 목포를 대표하는 이곳 '성식당'의 떡갈비가 어떻길래 '불호'가 있다는 것인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러한 맛에 대한 갈망과 집착, 궁금한 건 곧 죽어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고집스러움이 고하도 해안선과 용머리를 포기하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목포가 고향인 지인으로부터 '꼭 방문해봐~! 새로운 느낌의 떡갈비를 먹을 수 있을 거야'라는 조언이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여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법칙 중 하나!
현지인 맛집은 배신하지 않는다!
6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성식당'은 목포항 근처의 목포 항동 시장 안에 있는데, 시장 안은 주차하기가 꽤나 까다로우니 항구 쪽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을 훨씬 단축하는 방법이다. 시장 안을 천천히 들어가 첫 번째 골목에 다다르면, 이미 어디선가 은은히 밀려오는 '맛있는 냄새'에 잠시 정신을 홀리게 되는데, 이는 인간 본연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지도 없이도 성식당을 바로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우선 예약시간과 이름을 확인하는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약간은 한적했던 식당 안은 이내 사람들로 꾹꾹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몇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했던 손님들은 식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했고,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미 예약할 때, 주문은 해 놓은 지라, 보기에도 '영롱한' 성식당의 떡갈비를 영접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와.. 이건 일단 비주얼이....'
많은 사람들이 떡갈비는 아마도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에 두툼한 모양이어서, 한 입은 많이 부담스럽고, 두세 번에 나누어 베어 물어야만 하는 완자 형태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성식당은 어찌 보면 바싹 불고기와 비슷한 형태의 다진 고기를 넓게 펼친 형태인데, 한 접시 가득 찬 고기의 양이나 크기, 두께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육즙까지...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그리고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과연 무슨 맛일까? 오랜만에 음식 앞에서 느껴보는 두근거림과 설렘이 참 즐겁다.
이건 너무 불친절한데?
난 성식당의 떡갈비가 왜 호불호가 갈리는지 한입을 베어 물자마자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떡갈비란 잘게 다지거나 간 고기가 부드럽게 씹히는 형태일 텐데, 이곳의 떡갈비는 그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시해 버린다.
굉장히 거칠고 투박하게 다져진 고기는 지방이 거의 없는 갈빗살로 어떤 사람에게는 씹기가 불편할 정도로 질긴데, 담양이나 광주의 유명 떡갈비집이 상냥한 아가씨 같다면, 여긴 퉁명스럽고 거친, 굉장히 불친절한 상남자와도 같다.
고기로부터 베어 나오는 진한 육향과 60년 내공의 간장 양념이 불향과 적절하게 어우러져, 코끝으로부터 시작돼 어느새 입안 깊숙이 퍼지고,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한우 갈빗살의 풍미는 '이게 원래 고기의 맛이야!'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잊고 살았어, 고기는 씹는 맛이라는 걸...
떡갈비 1인분은 건장한 남자 한 명이 아주 배부를 정도의 양인데, 고기 씹는 맛에 조금은 더딘 식사라 하더라도 한 접시가 뚝딱 사라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떡갈비 자체의 양념은 아주 세지 않게 간이 되어 있어, 굳이 밥과 함께 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고기에 정신이 팔려 한참 뒤에야 맛봤던 시원하고 깔끔한 콩나물국과 부추무침, 젓갈 내음이 물씬 풍기는 깍두기와 묵은지도 좋았다.
그리고 제일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꽤 젊어 보이는 남자분께서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정적으로 가게 살림과 고기 조리를 맡아서 하고 계셨는데, 아마도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시는 듯 보였고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도 뿌듯했다.
역시 열정을 가지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은 언제봐도 참 멋있다. 누가 뭐래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이런 그의 노력과 사랑이 음식에 모두 베어 있다는 것이고,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난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가 세상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무슨 돈다발을 한가득 받은 것 마냥, 정성스레 포장해 주신 떡갈비를 조심스레 들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했다.
맛과 전통을 꼭 지켜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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