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07]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 4, 둘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진도를 여행하기 전, 나에게 이곳은 미지의 세계였다. 어쩌면 좀 창피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국견인 '진돗개의 고장'이 내가 아는 진도의 전부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알고 있던 지식도, 알려고 했던 노력'도 없었다.
진도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는데, 아마도 전라남도 중에서도 인구 밀도가 아주 작은,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기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황홀한 이곳 풍경에 몸이 흠뻑 젖을 때 즈음 정신을 차려보면, 섬사람 모두가 예술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심상찮은 예술적 기질의 '증거'들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왜 이곳을 찾아본 사람들이 '보배의 섬'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급치산 정상을 내려와 나는 한참 동안 지도를 살펴보며 고민했다. 원래 계획은 서쪽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세방낙조와 방조제를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진도를 한 바퀴를 도는 지리학적 미션을 달성하는 기쁨은 있겠지만, 시간적인 손해가 커 보였다.
급치산 정상에 본 풍경이 내 머릿속에서 '이미 최고는 다 본거 아니야?'라고 속삭인다.
타협을 하자.
세방낙조와 방조제도 멋질 테지만,
소치 아저씨가 나를 부르잖아?
난 미련 없이 핸들을 꺾어 이름조차 예술적 멋이 툭툭 떨어지는 운림산방으로 향했다.
첨찰산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 그곳으로!
운림산방은 남화의 대가라 불렸던 허련 선생(1808~1893)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운림각이라고도 불린다.(진도군 홈페이지)
예전에 강릉 여행기에서도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씨족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교육받고 자란 나는, 여행지에서 나의 성씨인 '허씨', 그 뿌리의 흔적을 찾게 되는 곳을 발견하게 되면 시간을 내어 꼭 방문하려고 꽤나 노력하는 편이고, 이곳의 방문의 큰 동기부여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운림산방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면 배용준, 전도연 주연의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아름다운 한 장면으로도 유명한, 그림 같은 연못이 우리를 맞이해 주는데, 연못 중앙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배롱나무)이 그 운치를 더해준다.
무엇인지 모를 강한 끌림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이곳 연못을 바라보다 보면, 마치 오래된 수묵화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곳의 신비함에 빠지게 된다.
입장할 때 사두었던 먹이를 연못에 조금씩 던져보니, 깜짝 놀랄 정도의 많은 색색깔의 관상어들이 몰려드는데 혹시 아이와 함께 방문할 예정이라면 그 재미가 나름 쏠쏠하니, 꼭 함께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연못을 지나 안쪽 소치의 생가로 들어서면, 아담하고도 깨끗한 초가집이 나타나는데, 아직 남아있는 집안의 가구와 소품들을 보니 소박했던 그의 예전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부터 머릿결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을 잠시 달래기도 할 겸, 초가집 마루에 걸터앉아 지붕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나무들을 감상하다 보니, 소치의 예술작품이 왜 이곳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곳 자연이
소치의 작품을 만든 거였어!
이곳 운림산방 안에는 소치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인 운림사와 소치에서부터 5대에 걸친 자손들의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는 소치기념관이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방문하여 남도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추천한다.
운림산방을 나와 멀지 않은 곳에는 그 규모가 꽤 큰 '남도 전통 미술관'이 위치해 있는데, 2천 평방미터의 지상면적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로 전시실과 글씨 및 그림 체험실, 서화 경매장, 수장고 등 부대시설이 있다. 미술관에는 소치 허련과 그 화맥을 이어 온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남도예술은행 미술품 토요경매장”의 전용 경매장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진도군 홈페이지 발췌)
운림산방을 나와 천천히 숙소로 돌아가려던 나는 , 아직까지 소치와 남도의 작가들의 예술혼이 내 몸에 남아있어 정신이 혼미했던 탓인지, 아님 꽤 오랜 시간을 이곳 운림산방에서 보내느라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 내 몸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탓인지, 끝이 막힌 잘못된 도로로 들어서고 말았다.
어? 여긴 뭐지?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는데, 주변에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솔로 여행 중이라면 실패하더라도 일단 본능이 따르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걱정하지는 말자.
대부분은 숨 막히는 보물 찾기의 결과에 또 다른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될 터이니 말이다.
마치 무언가 홀린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 차를 멈추고 눈에 띄는 주황색 간판에 이름도 맘에 드는 '구름숲 아토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설레고 긴장했던 마음이 푹 꺼지도록 날 반겨주는 멋진 한옥이 나타난다.
이곳 한옥 카페는 왠지 예전에 대단했던 어느 가문의 별장으로 쓰였을 법한 외관에서부터 꽤 묵직한 풍채가 느껴지는데, 한국 전통의 멋과 아우라가 멋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카페 내부는 적절히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으로 개조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사뭇 전반적인 인테리어 컨셉은 물론 소품 하나하나에서부터 이곳을 운영하시는 주인장의 애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카페에서는 다양한 고퀄리티 핸드드립 커피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난 가장 좋아하는 커피 중에 하나인 '파나마 게이샤'와 약간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한 간식으로 데니쉬 패스트리를 주문했다.
카페 안에서 밖으로 펼쳐지는 여유로운 산과 들판을 바라보며, 마치 근대 조선의 어느 카페에 있는 '신문물' 남성이 된듯한 착각으로 수준급의 새콤달콤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더 이상 무엇을 더할 게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정말 유명한 진도의 핫플레이스였고, 커피 하우스 이외에도 다양한 진도의 풍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한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지친 몸이 좀 치유되었을까...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카페를 나와 차로 돌아가려는 찰나, 멀리 보이는 나무에 뒤덮인, 괴물이라도 나올 법한 이상한(?) 다리 하나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미 경험해 봤잖아, 이럴 땐 고민하지 말자'
난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와~!
별천지에 있는 듯해!
마치 감춰진 보물섬의 입구로 들어가듯 닫힌 나뭇가지를 헤치고 들어서면, 신비로움이 가득한 별천지와 같은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진한 라일락 향기로 가득한 '구름숲 아토리' 앞 작은 개천의 다리인데, 벤치에 앉아 나무 사이로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비치는 햇살들과, 봄바람 사이로 떨어지는 라일락 꽃잎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행 속 감춰진 또 하나의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 좋은 뿌듯함이 다가왔다.
혹시 구름숲 아토리를 방문하시게 된다면, 숨겨진 별천지와 같은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원래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 진도를 반 바퀴 이상 일주한 나는 숙소로 돌아와 이내 잠이 들어 버렸고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 저물어져 갔다.
이곳 남도의 끝,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신선한 식재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었던 나는 진도 현지인 분들이 자주 찾는다는 전복 요리 전문점을 방문했다.
예전 한 예능프로에서 '눈치 안 보고 전복을 시키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 이야기한 연예인이 생각이 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전복은 아프거나 기력이 없을 때 먹는 보양음식으로, 그리고 꽤 대접을 잘 받았다 생각될 정도의 훌륭하고도 비싼 식재료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 오늘은
완전 Flex 해 보자!
누구나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지만, 오늘은 그냥 성공한 사람이라 치자. 급치산에서 아무나 볼 수 없는 황홀한 풍경도 감상했고, 게다가 숨겨진 보물을 2개나 발견했으니...
이걸 다 드실 수 있겠어요?
숙소인 쏠비치 진도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온 전복'에 도착한 나는, 식당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게 주인, 직원분들, 손님 모두가 함께 편히 이야기를 나누는, 서로 너무 잘 아는 듯한 식당 풍경에 맘을 놓았다.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영원불변의 진리인 거잖아?'
난 전복 버터구이, 전복 회, 전복 된장찌개를 주문했는데, 주인분께서 진심 어린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걸 다 드실 수 있겠어요?'라고 물어보셨다. 시키다 보니 먹고 싶은 게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 중간에 '하나는 취소할까?'라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지만, 뜬금없이 생겨난 황당한 승부욕이 내 목소리를 조종해 "다 먹을 수 있어요!"라 대답해 버렸다.
'까짓거 뭐!!'
전복 요리는 신선함이 생명이다. 그리고 이곳 식당의 전복은 너무나도 신선했고 맛있었다.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그 연예인이 이야기한 '성공한 남자'가 된듯해 절로 웃음이 나왔고 가끔씩은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기도 했지만, 싫지 않았다.
진도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호기스러운 '성공한 남자'의 대단한 만찬과 함께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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