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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May 27. 2022

운명처럼 만난 인생 음식, '복탕'

[전라남도 06]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 4, 하나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14 |  Driving Heaven!!, 진도 일주도로


진도에서의 두 번째 날, 힘겹게 감긴 눈을 찔끔찔끔 겨우 떠보니 어느새 몸집을 불린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그래, 뭐 아쉽지만 아침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린 듯했다.


밤새 열어놓은 창문 때문인지 팔락거리며 아침인사하는 커튼을 열어 보니, 흐릿했던 어제의 하늘은 사라지고 기분 좋은 뭉게구름으로 가득 뒤덮인 푸른 하늘이 날 반기고 있었다.


난 대충 세면을 마무리하고, 이곳 쏠비치 진도 웰컴센터에 있는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 뒤, 늦은 아침 산책에 나섰다.


리조트 내에 있는 '웨스트라인 산책로'는 절벽 위 작은 언덕으로 가는 루트를 제공하는데, 아담한 정상에 다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아름드리 펼쳐져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언제 봐도 다도해는
늘 새롭다.
쏠비치 진도의 웨스트 라인 산책로를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남해의 섬들이 아름드리 펼쳐져 있는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정상에서 내려와 굽이진 아래쪽 '비치라인 산책로'로 가다 보면, 리조트 앞 작은 섬인 '소삼도'로 가는 입구가 보이는데, 하루에 한 번씩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의 바닷길을 통해 이곳으로 갈 수 있다.


좀 더 안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리조트의 절벽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데,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암석 밑으로 뿌려지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지중해의 어딘가에 서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된다. 리조트의 산책로를 둘러보는 일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니, 바닷바람에 몸이 추워지지 않도록 따스한 점퍼 하나 정도는 챙겨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소삼도와 연결되는 바닷길 입구에서부터 절벽을 따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비치라인 산책로'

늦은 아침 산책에 제법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나는 산책로에 걸터앉아 모든 게 느리게 돌아가는 이곳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고, 어느덧 시간은 11시, 오늘의 새로운 진도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도를 여행하다 보면, '진도 일주도로'라 써져있는 표지판을 보게 될 때가 있는데, '진도대교 > 세방낙조 > 진도대교'로 돌아오는 120km의 이 도로는 바다를 보며 느릿느릿 가다가 중간에 차를 세워 구경하고 다시 경치 감상 삼매경에 빠지는 여유롭고 편안한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녹진관광지와 진도타워에서 보는 울돌목, 1년에 4~6회만 열리는 신비의 바닷길,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설치한 남도진성,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 일몰이 유명한 세방낙조 등 진도의 유명한 여행지들은 이곳 도로를 지나다 보면 만나볼 수 있다.


진도 일주도로를 따라 여행 스케줄이나 이동 루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으니, 혹시 진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참고해 보자.


'쏠비치 진도'는 진도 일주 도로 중 중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이동하기에 편리하다.

진도 일주도로는 생각보다 높고 그 수도 꽤나 많은 산들을 지나가게 되는데, 우거진 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산등성이 사이로 굽이굽이 펼쳐진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즐거움 또한 경험할 수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다양한 모습으로 쌓아 올려진 돌탑 그리고 아름다운 시가 새겨진 비석들이 있는 '여귀산 돌탑 길'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아마 예술을 대하는 이곳 진도 사람들의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도는 뼛속까지 진심인,
예술인들의 섬인 듯!


여귀산 일주도로를 지나다 보면, 많은 돌탑과 시가 새겨진 비석들이 모여있는 돌탑길을 만나게 된다.


물론 마치 천국의 어느 곳을 달리는 것과 같이 해안도로를 드라이빙하는 것은 덤이다. 맘에 드는 해안의 풍경을 발견했다면 언제든지 도로 옆 공간에 잠시 멈춰 서서 자연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풍부한 감성을 만끽할 수도 있다.


천국 같은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 잠시 멈춰서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는 것도 좋다.




15 |  헛웃음 가득했던 인생 음식, 굴포식당 '복탕'


오늘 점심 메뉴는 진도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 항구인 '굴포항'에 있는,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굴포식당의 '복탕'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사실 이번 여행에서 '꼭' 먹어야겠다는 '머스트 해브' 음식은 아니었다.


원래 '탕'이라는 음식은 '국'을 제사에 사용할 때 높여 부르는 말이기에,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복국의 다른 버전 혹은 럭셔리 버전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난 오늘 점심만큼은 뭔가 '뜨끈한 국물'이 필요했다.


이번 여행에서 그동안 먹은 음식들을 다시 천천히 소환해 보면, 꽃게살, 바게트, 떡갈비, 육전, 한정식, 간장게장... 생각만 해도 죽었던 입맛이 다시 살아날 듯한 최고의 음식들이었지만, 한국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뜨끈한 국물로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 한국 사람은
한 번씩 국물이 필요해!


진도 일주도로를 빠져나와 조금만 더 이동하면 굴포항과 굴포식당에 다다르게 되는데, 식당의 모습부터 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간판이며, 건물이며... 식당 외관으로부터의 오래된 내공과 포스가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데, 예상치 못했던 만남에 난 굉장히 당황했고 또 설레었다.


'아니 이런 곳에...?'


굴포식당은 식당 이외에도 식료품 및 생활용품을 파는 슈퍼마켓을 같이 운영하고 계신 듯한데, 건물 좌우를 살펴보니, 아마 이 동네에선 유일한 식당이자 마트인 듯싶었다.


아 진짜 심상치 않다...!


굴포식당의 오래된 외관으로부터 풍겨오는 포스로 지역의 맛집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추억 가득한 시골 슈퍼마켓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지나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가족사진과 동양화 액자들이 반기는 예전 시골 할머니 집 안방과 같은 푸근하고도 친근한 공간이 나타난다.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와 보면 '복탕' 한 가지 음식만을 조리하고 있는 '믿을 만한' 식당 메뉴와 '오전 8시 30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영업시간표가 눈에 들어오는데, 밑에 '약간은 조정 가능'이라는 말이 남도 특유의 정과 애교를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아 절로 미소가 얼굴에 지어졌다.  


이쯤 되면 사실 '기대'는 '확신'으로 바뀐다.

그리고 새로운 맛집을 향한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된다.


예전 시골 할머니집에 온 듯한 추억을 소환하는 식당 내부와 '복탕'만을 제공하는 메뉴 그리고 애교스런 영업시간표가 정겹게 다가온다.

자리에 앉으면 별도의 주문을 하지 않아도 인원수대로 음식을 내어주시는데, 식탁을 가득 채우는 큰 쟁반에 한가득,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스르르 입안으로 퍼지는 밑반찬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복탕'.


솔직히 음식 외관으로만 본다면 훌륭한 비주얼이라 할 수없다. 걸쭉해 보이는 국물에 생선 고깃살, 고사리와 부추 등이 투박하게 섞여있다.


'복국'의 복지리를 상상했던 나는 '복탕'의 이런 등장에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참기름을 넣어 먹어보라는 직원분의 독특한 레시피 조언에 그 맛이 미칠 듯이 더 궁금해졌다.


허.. 거참.. 하하..
참 이거 뭐.. 하하..


아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가지고... 내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헛웃음이 계속 나왔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비슷한 음식으로 비유한다고 하면, 굴포식당의 '복탕'은 고깃살이 일부 풀어진 약간은 어죽 스타일의 탕요리인데, 작은 '복어'들의 뼈까지 우려내 만들어진 담백하고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혀끝으로 은은하게 느껴지는 시골된장의 맛은,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칼칼한 청양고추와 진하다 못해 걸쭉해진 국물과 잘 어우러지고, 작지만 통통하게 올라온 복어살은 쫄깃하기까지 하다. 무심하게 툭툭 올려진 고사리는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음식에 즐거움의 식감을 더해주고, 이 식당의 '신의 한 수' 참기름이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이어준다.


이 음식의 유일한 단점은 작은 복어의 뼈를 발라내기가 정말 귀찮은 건데, 욕하면서 계속 먹게 된다.


세상에 도대체 맛있는 음식과 식당은 얼마나 많은 건지, 태어나 처음 맛보는 '복탕'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고, 혹 거만하게 음식을 바라보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자만하지 말자,
최고의 음식은 끝이 없나니~!


나를 보다 겸손하게 만들어준 최고의 여행 음식 굴포식당의 '복탕'을 꼭 맛보길 추천한다.


그렇게 한 숟가락, 두 숟가락을 먹다 보면 몸속까지 꽉 채워지는 든든함과 더불어 어느새 뚝배기의 바닥도 금세 드러나고야 마는데, 이때처럼 아쉬운 시간이 없었다.


참고로 참기름과 식초는 필수로, 맛보면서 적당량을 개인 취향에 따라 넣는 것을 강력 추천하고, 반찬과 함께 제공되는 다대기는 처음부터 넣지 않기를 추천한다. 다대기와 더해지는 풍부한 맛 또한 나쁘지 않지만, 충분히 원래의 것을 즐긴 후에도 늦지 않다.


헛웃음과 함께 한 숟갈 먹다 보면, 순식간에 한 뚝배기가 뚝딱 사라지고야 만다.


식사를 마친 나는 깔끔히 비워진 '복탕'의 마지막을 아쉽고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식당 안과 밖에는 차례를 기다리느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빨리빨리'를 재촉한 내가 뿌듯해졌고, 왜 이곳이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인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도에 혹시 오게 된다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꼭 굴포식당의 '복탕'을 맛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남도 시골 어촌의 담백하고도 정이 느껴지는 '인생 음식'을 맛보게 될 터이니!  


그래.. 이건 운명이었어!




16 |  구름이 파도처럼, 급치산 정상


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한 작은 해프닝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뜨끈한 국물에 속이나 든든히 채우자'는 평범하고도 순수한 목적으로 방문한 굴포식당에서 만난 인생 음식에 하루가 더욱 즐거워졌다.


난 굴포식당을 나와 세방낙조와 더불어 진도 해안 풍경, 특히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사라지는 일몰의 진수를 볼 수 있다는 급치산 전망대로 향했다.


한반도 최서남단 진도군 지산면에 위치한 급치산 전망대는 가장 늦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인데, 200여 미터의 높지 않은 산도로를 조금만 이동하다 보면 금세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사방으로 막힘없이 뚫려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면, 동석산 암골맥(巖骨脈)의 수려한 바위 능선과 끝이 없이 펼쳐지는 진도 해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참조)

 


도대체 어디가 바다고 하늘인 거야?


약간은 흐리고 습했던 날씨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급치산을 에워쌓고 있던 그림과도 같았던 구름은 마치 파도처럼 산과 바다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고, 저 멀리 아득하게만 보이는 수많은 다도해 풍경과 어우러져 '말문을 턱 하고 막히게 하는' 광경을 만들어 낸다.


조금은 쌀쌀해진 산바람이 겨드랑이 속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이 아름다운 적막을 깨고 싶지 않았다. 난 잠시 자연이 주는 또 다른 위대함에,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아무말 없이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아무 생각하지 말자. 아무 것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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