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05]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 3, 둘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감히 누구에게 귀감이 될만한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굴 괴롭히거나 피해를 주며 살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난 그저 어떤 때는 비겁하게 도망치거나, 불의를 보면서도 슬쩍 외면하는... 그러면서도 적당한 내면의 타협이나 기적의 논리를 통해 '정신 승리'하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개인주의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맘은 진짜 굴뚝같지만...'
'바빠서...'
'뭐 나까지 나서서...'
'너무 멀어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항상 도돌이표와 같은 핑계를 댔던 것도 같다.
이곳 진도로의 여행을 결정하고 난 뒤, 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명감'과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이곳 '팽목항'을 오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것이 어쩌면 '내 맘 편하고자'하는 이기적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머리가 터질 듯 복잡해만 지니, 더 이상 이유를 묻거나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난, 그냥 이곳에 와야 할 것 같았다.
7년이란 세월이 지난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 선 것처럼 너무나도 조용하고 한적했다. 물론 코로나의 여파로 사람이 뜸해진 것이 분명할 테지만, 인적 하나 없는 이곳의 첫인상은 가뜩이나 흐린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팽목항 '기억의 등대'로 걸어가는 방파제엔 노란색 현수막과 리본들이 가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스레 그린 타일들이 그날의 아픔을 그렇게 위로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겨진 타일들을 하나하나 보며 걷고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내 맘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참고 있던 내 가슴을 이리저리 후벼 파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미안해
그래.. 이 미안하다는 말 외에 무슨 더 할 말이 있을까...
천천히 아이들에게 향한 부질없는 미안함을 곱씹으며 방파제 끝에 다다르면, 참사 100일째 만들어진 하늘나라 우체통이 보이고 저 멀리 팽목항 앞바다에서 혹시 있을 길 잃은 아이들의 영혼을 영원의 안식으로 안내하는 것만 같은 기억의 등대를 만나게 된다.
기억의 등대 뒤편 작은 단상에는 오늘 아침에 누군가 놓고 간 듯한, 아이들이 좋아했던 과자와 음료수, 과일 그리고 라면이 놓여있어 이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한참 동안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 아이들이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돌아오는 길에 '세월호 팽목 기억관'에 잠시 들렀는데, 팽목관 안에 있던 아이들의 사진들 그리고 평소 좋아했던 물품들을 보니 그동안 꾹꾹 참고 있던 내 멘탈이 여기서 무너져 버렸다. 갑자기 밀려오는 서글픔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찾아온,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산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다.
미안해. 너무 늦었어.
못난 어른을 용서해 주렴...
누군가는 내 맘의 편안함을 갖기 위한 이기심으로, 또 누군가는 그저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쌩쇼'로 폄하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게 혹시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부터 시작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이곳에 찾아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잠시 여행에서 무거운 마음이 들어 조금은 숙연해진다 할지라도, 이곳을 잊지 말고 꼭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단언컨대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테니 말이다.
진도로의 여행을 결정한 후, 한동안 뭔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이 계속되었는데, 그건 숙소 예약을 미리 하지 않아서였다. 2021년 봄만 하더라도 '여행'을 쉽게 떠나지 못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여행지나 숙소가 굉장히 한산했었다. 그래서 사실 별다른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지만, 숙소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여행을 지속하는 것은 곧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있는 것과 같아 맘이 편치 못하다.
난 호텔/숙소 어플을 켜고 '전라남도 진도'를 검색했다.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곳 '쏠비치 진도'를 바로 예약했다.
2019년 여름, 비교적 최근에 오픈한 이곳 '쏠비치 호텔 & 리조트 진도'는 프랑스의 유명한 지중해 해안마을 '프로방스'를 재현했다고 하는데, 남도의 끝 아름다운 해안의 기암절벽을 그대로 살린 클래식한 유럽 건축물이 격식 있고 여유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우와~ 예쁘다!
이곳 '쏠비치 진도'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바닷물이 갈라져 만드는 '바닷길'을 통해 리조트 앞 작은 섬인 '소삼도'를 방문할 수 있는데 이 또한 굉장히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쏠비치 진도는 총 2만 2천 평의 넓은 공간에 건물 5개(호텔 1, 리조트 2, 노블 1, 월컴센터 1)로 구성되어 객실 576실, 카페/레스토랑, 인피니티풀, 위락시설 등 리조트가 갖춰야 할 다양한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한다.(홈페이지 참조)
난 리조트 동에 있는 '스위트'를 코로나 특수 등에 힘입어 아주 저렴하게 예약했었는데, 방 2개, 침대만 3개였던 객실은 혼자 지내기엔 사실 너무 '과했다.' 그래도 객실 테라스 밖, 마치 해외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이국적인 남도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렴풋이 잊고 살았던 여행이 선사해 주는 기분 좋은 흥분이 천천히 온몸으로 퍼져갔다.
아~! 얼마만이야.
해외에 온 듯한 이 기분은...
국내도 마찬가지였지만,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그때 마치 향수와 같이 옛 여행의 즐거운 기억들이 몽글몽글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어.. 어.. 지금 몇 시지?
아침부터 목포, 진도 팽목항 그리고 여기 쏠비치까지 강도 높은 강행군을 한 탓인지, 잠시 눈만 붙이고자 했던 나는 어느새 마법에 걸린 것처럼 꽤 긴 잠에 들어 버렸다.
"신호등 회관이죠? 몇 시까지 하나요? 지금 가도 되나요?"
허겁지겁 깬 부스스한 얼굴과 떨림으로 신호등 회관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라스트 오더까지는 30여분의 여유가 있었고 난 대충 점퍼 하나 걸치고 정신없이 출발해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신호등 회관은 진도에 오면서 아무 의심 없이 첫 번째 Pick으로 고른 음식점인데, 진도 현지의 신선한 재료로 조리하는 간장게장과 각종 해산물 비빔밥이 굉장히 유명한 맛집이었다. 더군다나 나주에 있는 친구조차도 여기 '신호등 회관'에 가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니 근심과 걱정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신호등 회관 안으로 들어서면 벽을 모두 채우고도 모자랄 듯한 수많은 유명인들의 방문록이 우리를 반겨주는데, 대통령 후보이셨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아마 성남시장이셨을 때 방문하셨는 듯), 우리들의 영원한 젊은 오빠 가수 '전영록' 아저씨의 싸인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당연히 난 간장게장정식을 주문했다. 이전 여행기(전라남도 01편)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난 게장류의 음식이라면 피곤에 쩔어 쓰러진 깊은 잠에서도 깨어날 수 있는,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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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 여의도, 소격동, 삼성동을 지나 공덕동에 안착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간장게장 음식점들을 두루두루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게장에도 참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무슨 음식이든 간에 개인의 기호가 많이 작용하기에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다.
기다리던 밑반찬들이 하나둘씩 밥상 위에 채워지고, 드디어 보기에도 영롱한 '신호등'식 간장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능적으로 두근대기 시작하는 가슴을 보니 '역시.. 넌..'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호..!
근데 호불호가 있을 듯??
급하게 한 입 베어 문 간장 게장의 느낌은 굉장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대부분의 유명 간장게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간장에서 부터 시작한 단맛이 신선한 게와 어울려 재료 본연의 맛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게장은 처음부터 단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원래 게장은 이래야 해'라고 '신호등'의 소신을 알려주는 것 마냥, 단맛은 간장에서가 아니라 게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끝 맛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서울식 '단짠'의 간장게장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겐, 깊은 '찐 간장'으로 시작되는 그 맛이 과하지 않고 담백했다.
결론은 달달한 간장게장을 좋아하시는 분은 패스하시고, 진정 밥 비벼야 하는 게 간장게장이란 생각을 가지신 분은 좋아하실 것 같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이자면, '짠'게 아니라 '덜 달다'라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듯싶기도 하다.
게장 등딱지를 박박 긁어낸 신선한 알과 내장을 마른김에 싼 돌솥밥 위에 올려놓으면, '하... 이걸 어째...' 하며 얼굴에 감추지 못할 미소와 함께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남도의 신선한 식재료로 뭐하나 놓칠 수 없었던 밑반찬들과 든든히 속을 달래주는 된장국까지 풍요롭고도 즐거운 진도의 첫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터질 것 같이 불러온 배도 좀 꺼뜨릴 겸, 잠시 눈을 붙이느라 구경 못한 리조트도 확인해 볼 겸, 저녁 산책을 위해 리조트 이곳저곳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산책 내내 너무나 황홀했던 이곳의 야경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멀리서부터 아련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눈부시도록 화려했던 조명은 산책 내내 귀와 눈에 가득 담기에 충분했고 즐겁게 뛰노는 인피티니 풀 안에 아이들 목소리들도 흐뭇하기만 했다.
진도 여행의 첫날밤은 잊을 수 없는 '남도의 야경'과 함께 그렇게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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