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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May 18. 2022

맛의 도시 목포,
마지막 전통 한정식

[전라남도 04]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 3, 하나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09 |  역사의 아픈 조각, 근대역사관과 역사문화공간


어제 하루 동안에만 '목포 > 신안(자은도) > 나주 > 광주 > 목포' 등 대략 300km에 가까운 긴 거리를 여행한 나는 굉장히 피곤했던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뻗어버렸고 늦은 아침이 되서야 눈을 떴다.


혼자 하는 솔로 여행의 묘미는 결국 '내 맘대로"인데, 어제와 같은 살인적인 스케줄 또한 이에 해당한다. 아마 동행인이 있었다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여행 계획은 세우지도 못했을 거다.


참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여행에서의 '배려'는 '포기'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 솔로 여행에서만큼은 배려 따위란 존재치 않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보자!


오늘은 목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 아직 둘러보지 못한 곳, 먹지 못한 음식이 너무 많아, 며칠 더 머물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저 멀리 남서쪽 끝 미지의 여행지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고, 다시 이곳에 오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여행 예정지였던 '진도'로의 여정을 그대로 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찐 이유'였던 전라남도의 남서 끝인 진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 목포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굉장한 서운함과 동시에,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마음 또한 바빠지기 시작했다. 난 아직까지 둘러보지 못했던, 어쩌면 목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곳인, 근대역사관과 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로 서둘러 출발했다.


이곳 근대역사문화공간 그리고 근대역사관은 목포 여행의 바이블과 같은 필수 코스인데, 이전에 방문했던 목포진 역사공원이나 장터 본점, 성식당 등이 모두 걸어서 이동 가능한 공간에 있으니 하루를 모두 투자하여 여기 모두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만약에 차로 이동하는 경우라면, 무료 주차장을 제공하고 있는 목포 근대역사관 2관부터 둘러보고 역사문화공간을 거닐다가, 근대역사관 1관으로 이동하는 루트를 추천한다.


목포 근대역사관 2관은 조선 수탈기관이자 식민정책 선봉 기관이었던 동양척식 주식회사 목포지점(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이 있던 곳이다. 당시의 모습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은 1층 제1전시실과 2층 제 2전시실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독립을 위해 구국운동을 펼친 애국열사의자료와 사진을 보니 절로 숙연함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1 전시실에는 1920년대 말 목포의 거리와 건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제2전시실에는 <영웅, 그날의 기억을 걷다>라는 특별전으로 1920년대 민족 독립의 역사 스토리와 4.8만세운동 등 근대 독립운동과 일제 침략에 맞서 살아온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며 다양한 그 당시 생활소품과 포토존도 만나볼 수 있다.(목포시청 자료 참고)


독립을 위해 구국운동을 펼친 애국열사의
자료와 사진을 보니 절로 숙연함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2022년의 지금, 자유와 평화 그리고 굳건한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근대역사관 2관을 나오면 바로 '좌우상하' 사방으로 근대역사문화공간의 거리가 펼쳐져 있는데,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뿐만 아니라 그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게 해주는 오래된 학교, 교회, 가게 등 다양한 건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3D 지도

http://www.mokponet.kr/tour/map.html

목포시에서 운영하는 3D 지도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미리 체험해 볼 수도 있으니, 방문 전 휘리릭 한번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꽤 넓은 거리로 조성되어 있으니 미리미리 큰 동선 계획은 세워두자


특히 60년 전통의 '원조 제일 돌곱창'을 비롯하여 목포 3대 꼬리곰탕집 중 하나인 '대명관', 40년 전통의 생선 요릿집 '선창', 생돼지 애호박 찌개가 유명한 '이가본가', 한정식 '명인집' 등 목포를 대표하는 맛집들이 몰려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꿈에서나 상상해 봤던,
모든 식당이 최고 맛집인 동네라니!


목포의 맛집들과 일본식 적산가옥 그리고 예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산책하는 재미가 있다.


그 시절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게 되는 거리를 걷다 보면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붉은색 벽돌의 옛 건물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구 일본영사관(국가사적 제289호)이었던 근대역사관 1관이다. 그리고 이곳은 근래 종영한 아이유, 여진구 주연의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근대역사관 1관

역사관 정문으로 가는 길 앞에는 '소녀상'이 있는데, 방문 당시 미국 램지어 교수의 망언을 규탄하는 문구가 함께 하고 있었다. 소녀상을 지나 언덕과 계단을 조그만 오르게 되면 근대역사관 1관의 정문을 만나게 되는데 멀리 목포의 항구와 근대 역사의 채취가 아기자기하게 남아있는 역사문화공간 모두가 한눈에 보인다.


근대역사관 1관 앞에는 램지어 교수 망언을 규탄하는 문구(2021년 봄)가 소녀상과 함께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2014년, 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개관된 이곳은 목포의 시작부터 가슴 아픈 근대역사까지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데, 2층 규모에 총 7개의 주제로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건물 내외부 모두는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굉장히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근대 우리의 건물의 특징이나 양식들을 이해하는데 좋은 경험이 된다.


목포진의 설치부터 운영까지 한반도 서남해 해양 방어 진지의 역할과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던 [주제 1], 개항장의 모습과 전국 3 대항 6대 도시로 성장하게 되는 목포를 그린 [주제 2], 3.1 만세운동과 4.8 만세운동, 청년운동 등을 거치며 일제에 항거한 역사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주제 3], 종교,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외래 문물이 전파되던 시기인 [주제 4].(목포 시청 자료 참고)


근대 영화 및 다양한 공연, 연극, 대중가요 등 목포 문화활동을 다룬 [주제 5], 1919년 4월 8일 정명여고를 시작으로 한 만세운동을 체험할 수 있었던 [주제 6], 마지막으로 동본원사, 호남은행, 양동교회, 일본영사관, 일본인 가옥 등 다양한 근대 건축물의 모형을 관람할 수 있는 [주제 7]까지 전시관을 둘러보다 보면 한 시간 정도가 어느새 훌쩍 지나간다.(목포 시청 자료 참고)



관람을 마치고 난 뒤, 역사관 건물 뒤쪽으로 들어서면 높이와 폭이 약 2m 가량에 총길이 82m인 방공호가 있다.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공습을 피하게 위해 지어졌다고 하며,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가면 사이렌이 울리고, 굴을 파기 위해 강제 동원된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다.(목포 시청 자료 참고)





10 |  목포의 마지막은 40년 내공의 전통 한정식, 명인집


아.. 짜증 나!
뭘 먹어야 하는 거지?


근대 역사관 1관으로 이동하기 전, 역사문화공간의 거리를 거닐며, 멋진 근대 건물과 적상 가옥들을 구경하던 나는 오늘 점심이 목포에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란 걸 깨달았다. 순간, 아쉬움이나 섭섭함은 둘째 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무엇을 먹어야 후회가 없을지.. 막막했다.


'낙지요리를 먹을까? 아님 민어?'

'곱창? 꼬리곰탕은 어떨까?'

'생선요리나 찌게 백반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여유롭던 내 마음은 나의 선택 장애와 우유부단함에 초초해지기 시작했고 수없이 많은 선택과 번복의 시간이 지나갔다. 결국 나는 4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목포의 한정식의 맛을 지켜온 '명인집'을 목포 마지막 식당으로 정했다.


명인집의 본점은 하당에 위치해 있지만, 오늘은 멋진 한옥 건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분점을 방문했다. 분점은 근대역사관 2관 바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어 이동하기에도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정식집에서 1인분의 주문을 받아주시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데, 전화로 예약하면서 직원분께 거의 울다시피 사정하고 부탁드렸었다. 다행히 코로나 등의 특수한 상황으로 겨우 받아주신 듯한데, 혹시 나중에 방문하셨을 때 식당에서 거절하신다고 하더라도,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냐'라고 명인집에 따져 물으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명인집 근대역사관점 입구, 멋진 한옥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외관만큼이나 멋지고 옛스런 내부를 볼 수 있는데 일본 근대 문화로 둘러싸여진 이곳에서 보게 되는 '우리 것'은 너무나도 소중하고도 사랑스러웠다.


명인집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한옥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명인집 내부에서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잠시 자리에 앉아 훈훈한 애국심에 불타오르고 있을 때, 정성스레 만들어진 밑반찬 하나하나가 세팅되기 시작했고 난 샐러드 한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직까지 그 맛이 입안 가득히 느껴지는, 너무나도 맛있었던 된장 베이스의 달콤한 소스로 버무린 배추 샐러드.. 아마 이 마성의 샐러드만 몇 접시는 먹었을 듯싶다.


된장의 맛을 기본으로 한 것도 좋았고, 양상추나 양배추 같은 채소가 아닌 국산 배추를 활용해 겉절이와 같은 아삭한 느낌을 낸 것도 전통을 잘 버무린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다만 같이 나온 코다리찜은 '꾸덕함'이라기 보다는 '딱딱함'에 가까웠고 중간에 고기가 잘린 채로, 그리고 주위 접시에 간장소스가 이리저리 묻어 깨끗한 접시가 아닌 채로, 서빙이 되어 조금은 아쉬웠다.


마성의 된장소스가 버무려진 겉절이와 같았던 샐러드,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내가 주문한 세트 B는 가장 많은 음식 종류가 포함되어 있는 메뉴였는데, 선택메뉴인 홍어 삼합과 낚지 중, 난 의심 없이 홍어를 선택했다. 홍어가 오랜만이기도 했고, 여기 목포 전통의 한정식에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기도 했기 때문이다.

홍어의 삭힘 정도는 일반인도 즐길 수 있을 정도 수준이였는데, 말도 안 되는 세월의 깊은 맛을 가졌던 '묵은지', 그리고 적당히 잘 삶아진 부드러운 '수육'과 어울려 삼합 특유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좀 더 삭힌 홍어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좀 아쉬웠는데, 별도로 제공된 홍어애를 입안에 넣는 순간 아쉬움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홍어애만큼 고급진 요리도 없을 거야!


선택메뉴였던 홍어 삼합, 함께 제공되는 홍어애를 입안에 넣는 순간 모든 아쉬움이 사라졌다.


양념에 두 세 공기의 밥이 '뚝딱'일 것만 같았던 게장,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얼굴만 한 크기에 두툼한 고기 씹는 맛이 황홀했던 갈치구이, 삼삼하고도 부드러웠던 고등어조림까지 뭐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의 여유도 없이 본능적으로 흡입을 시작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식사가 진행되면 각 테이블마다 갈치조림을 올려주시는데,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맛좋은 갈치조림을 그대로 따뜻한 쌀밥에 얹어먹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그냥 미간이 찌뿌려지고 고개가 끄덕여 지는 '천국의 맛'일 것이다.


40년 내공이란 게,
이런 것이로구나


세지 않은 삼삼한 간에 갈치의 풍미가 그대로 배어있는 담백한 갈치조림은 이곳 명인집의 대표 메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맛있었고, 40년을 꾸준히 사랑받아온 맛의 내공이 느껴졌다.


'보글보글' 갈치조림 끓는 소리만으로도 벌써 배가 고프다.
명인집 한정식의 '한상'과 입가심으로 달콤했던 식후 매실차

코로나를 뚫고 멀리 외지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1인분 조리를 해주신 그 따뜻한 마음과 음식 하나하나에서 묻어났던 정성과 내공은 마지막 목포의 모습으로 담기에 충분했다.


아쉬움은 남을 테지만
후회 없이 떠날 수 있겠어!

명인집에서의 점심을 마친 후, 난 다음 여행지인 '진도'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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