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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Jan 26. 2022

청개구리의 꿈 :
배신, 일곱

누구나 한번쯤 신분 상승을 꿈꾼다.

지금은 없어진 제도이긴 하지만, 난 군대를 단기사병, 즉 '방위'로 다녀왔다.

사람들은 키크고 신체건강한 내가 방위라면, 다들 의아하며 한번씩 물어본다.


"아니, 니가 왜....?"


요즘 시대엔 절대 이해 가지 않는 것 중 하나겠지만, 그 때는 손이 귀해 가문과 집안을 이어야 한다며, '2대 독자', '3대 독자'들은 군대를 짧게 복무할 수 있게 배려해 줬다. 반대로 되짚어 추측해 보면, 군대에서 다치거나 죽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리라..


방위가 되는 요건은 앞서 이야기한 독자 이외에도 눈이 나쁘거나, 키가 크거나, 몸무게가 많이 혹은 적게 나가거나, 평발이거나 등등 많이 있었던으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난 2대 독자였고 그래서 방위로 군대를 가게되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방위의 군복은 현역과 달랐다. 현역은 일명 개구리 군복으로 녹색, 황토색, 갈색등이 호피 무늬처럼 패턴화 된 옷감이였는데 방위들의 군복은 녹색 한가지 색으로만 된 옛날 군복이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은 군복만 봐도 현역과 방위를 구분할 수 있었고 가끔은 우리를 '청개구리'라 놀리기도 하였다.


난 뭐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사람 많은 곳에 방위 군복을 입고 출퇴근 하는게 싫었다. 그래서 항상 구석진 곳에 모자를 눌러 쓰고, 얼굴을 푹 파묻고 그렇게 조용히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4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친 뒤, 나는강남/서초, 강동/송파에 거주하는 예비군을 대상으로 일년에 몇번씩 예비군 훈련을 실시하는 부대로 배치 받았다. 우리 부대에는 예비군을 교육하는 '조교', 무기관리를 담당하는 '무관',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병' 그리고 내가 속했던 '기동대' 등 4개의 보직이 존재했다.


기동대는 일종의 소요진압 부대로 만일의 사태가 발생 시, 경찰력으로 진압이 불가할 때 1차로 수도권 남부지역으로 출동하는 역할을 했다. '무슨 방위가 그런일도 하냐'하겠지만, 실제로 각종 무술 및 소요 진압 훈련을 받았고, 나름 방위 중에선 꽤나 거칠고 힘든 방위였다. 참고로 방위 기동대는 내 군생활 마지막 무렵에 완전히 사라졌고, 예비군을 교육하는 조교업무 보직으로 모두 바뀌었다.


내가 왜 여기 기동대로 배치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흔히 편한 군생활로 여겨졌던, 내가 상상했던 방위와 실제 기동대 생활은 차이가 컸다. 가끔 힘든 훈련을 받을 때면,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이럴 바엔 차라리 현역으로 가는게 낫겠다!'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사실, 힘들다는 건 상대적일 때가 꽤 많다.

몸은 힘들지만 스트레스가 적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몸은 편하지만 정신적 고통이 큰 일도 있다.


내 기동대 생활은 전자에 가까웠다. 다들 몸이 힘드니 선후임병 간의 지나친 갈굼이나 괴롭힘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방위는 거주지 기준으로 자대 배치를 받기 때문에 한 두다리씩만 건너면 초/중/고등학교 왠만한 선후배나 동네 친한 형/동생으로 인연이 걸리기 마련이였다.


어쨌든 나름대로의 군생활에 적응하며 지내던 어느날, 고참하나가 내무반에 모든 부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야! 사단에서 문선대 뽑는다는데, 대대별로 무조건 1명씩 뽑으란다, 누구 갈 사람?"


그 때의 문선대, 정확한 표현인 '문화선전대'는 부대 내에서 장병의 사기 진작을 위해 각종 행사 및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하였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입대 후 이곳에서 복무했다. 언젠가 문선대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도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속해 있던 사단은 대부분이 방위병으로 구성되어 있던 곳이라, 별도로 문선대란 보직은 없었다.

사단 내에 속해있는 정훈병을 중심으로, 1년에 한 두번씩 각 산하 부대 별로 병사들을 차출 해서 공연을 준비했다.


난 문선대 파견을 두번 나갔었는데, 한번에 대략 2~3개월 기간으로 기억되니, 군생활의 약 3분의 1은 문선대에서 보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자의반 타의반으로 문선대에 지원하게 된 나는, 모든 대대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오디션을 보러 사단으로 출발했다. "너 떨어지면 죽을줄 알어~!"라는, 왕고참의 협박어린 격려와 함께...


오디션 장엔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화려한 의상, 소품 등등 엄청나게 많은 것을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여기 저기에서 가수 뺨을 좌우 수천번을 때릴듯한 기가 막힌 노래 소리도 들려왔다.


난 사실 준비한게 없었다. 그냥 특기 사항에 '악기'라고 간단히 적은게 다였다.

고참에게 거의 반 떠밀려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이등병 딱지를 겨우 뗀 내가 사단에서 차출하는 문선대에 사전 지식이 있을리 만무했고, 우리 대대에서는 문선대에 합격한 병사가 그동안 한 명도 없었기에 뭘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디션이 시작되고 세상엔 참 재주 많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난 또 느꼈다.

연기, 춤, 차력, 노래, 악기 연주, 개그/코미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늘을 위해 엄청난 연습과 준비를 해온 것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난 마치 슈퍼스타 K나 K-Pop 스타와 같은 오디션 TV 프로그램을 보는 관객인냥 그렇게 키득거리며 앉아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난 초초해 지기 시작했다. 

무슨 악기를 연주하는지 쓰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악기를 들고 오지도 않았다.

새삼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난 100% 불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다.


"넌 뭘 잘하냐?"

담당 간부가 내게 물었다.


원래 모든 걸 내려 놓으면 용감해 지기 마련이다. 욕심이 없으니 거리낌도없어지고 잃을게 없으니 후회할 것도 없다. 그냥 질러나 보는 거다!


"밤무대에서 10년 베이스 쳤습니다!"


사실 내 나이가 그때 갓 스무살인데, 10년 동안 밤무대에서 일했을리 만무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 노안을 믿자!'하고 그냥 질러본 거다. 게다가 베이스는 내 주력 악기도 아니였다. 다만 분위기를 보니 베이스 다루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랬다.


난 결국 오디션에 합격했다. 

베이스 악기 지원자는 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주 한번 안해보고 오디션을 통과한 사람도 내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문선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원래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서울 양재동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 했었지만, 파견 부대는 경기도 광명에 있어 아침 새벽에 일어나 오랜 시간 동안 버스와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새벽에 타는 출근 전철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항상 자리가 남아 있었지만, 나름 군복입은 군인이라 대부분은 자리를 양보한 채, 전철 벽 한 귀퉁이에 기대어 섰었다. 가끔 그렇게 졸기도 했고...


그러던 어느날 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 중이였다.


"꺄악~!!!"


다급한 여자의 비명소리였다.

잠시 졸고 있던 나는, 깜짝놀라 두 눈을 떴다. 


"도둑이야~!!"

반대쪽 끝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이 어느 한 남성을 쳐다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팔과 어깨를 잡아 그를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아이 씨, 나 아니란 말예요!!"

잡힌 어깨와 팔을 떨쳐내려 힘껏 몸무림을 치며, 사내는 연신 억울한 듯 외쳐댔다. 


아침부터 뭔 난리인가 싶어 잠시 바라보다가,

대략 어떠한 상황인지 이해한 나는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다른 쪽 칸으로 발길을 돌리고자 했다.


이미 어느정도 정리된 모습 같아서 굳이 나까지 돕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날따라 몹시 피곤하기도 했다. 좀 더 솔직하게 심정을 펼쳐 놓자면, '뭐.. 방위까지 나서서..'라는 맘도 있었다.


난 눌린 모자를 한번 더 꾹 내려 쓴 뒤, 뒤돌아 섰다.


"어이~! 군인 아저씨!!"

"군인 아저씨가 도와 줘야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할머니께서 나를 불러 세웠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쏠렸다. 아마 그 할머니는 현역과 방위를 구분 못하셨으리라...


"아 거기, 군인아저씨! 여기 좀 도와줘요~!"

사내의 팔을 잡고 있던 아저씨도 나를 보며 도움을 요청했다.


"아.. 네.."

빨리 도망갔어야 했는데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 눈에 들어와 버린 나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난 쭈빗쭈빗 사내와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섰고 도움을 요청한 아저씨 반대쪽 팔을 성의없이 잡았다. 그리고는 빨리 이 상황이 끝나길 바랬다.


생각보다 사내의 저항은 꽤 징글징글했다.

끝까지 자기는 도둑이 아니라면서 몸부림 쳤다.

그러다 온몸의 힘을 모아 걷어챈 그의 힘에,

방심한 나는 잡았던 팔을 놓쳐 버렸고, 그는 잠깐의 탈출을 감행했다.


난 당황했다. 그가 왠지 도망갈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모두 내가 떠 안을듯 싶었다.

난 부모를 죽인 철천지 원수를 잡듯, 힘껏 날아올라 그를 덮쳤다.

그리고 그와 함께 땅바닥으로 뒹굴었다. 


"아이~씨.. 방위 새끼가~!"

"???"


난 잠깐 동안 이성을 잃었다.

'아니 가만히 있는 방위를 건드려?'

있는 힘을 다해 그의 팔을 뒤로 꺾었다. 그는 아파 소리를 질렀다.


"와!!"

"짝짝짝!!!"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몇몇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또 몇몇은 박수를 친듯도 하다.  

분명 내가 꼭 붙들지 않아 팔이 풀린 것인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뭔가 우쭐해 졌다. 내가 전세계를 구한 히어로가 된 듯 했다.


"허허 아저씨! 훈장 받아야 겠어!"

아까 반대쪽 팔을 잡았던 아저씨가 한마디 던지신다.


순간, 오래전 군대 고참이 말해준 '전설의 방위' 이야기가 번개 처럼 스쳐갔다.

이 전설의 방위는 시내 한복판에서 혈투 끝에 맨손으로 간첩을 잡았는데, 높은 군인정신과 국방에 대한 공로로 1계급 특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위 최초로 현역과 같은 계급인 병장으로 제대하게 되었고, 남은 군대 생활도 수많은 군부대와 학교, 정부기관을 돌아다니며 강연과 환영/만찬 행사로 마무리 했다는 거다. 그리고 행사 이동시에는 국방부에서 특별히 헬리콥터를 제공해 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충성!"

"자네는 우리 군대의 희망일세~!"


그래.. 난 가슴에 4개의 작대기가 반짝거리는 계급장을 달고 국방부 장관에게 멋진 훈장을 받을 것이다.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계급이 뒤바뀐 고참들은 돼레 내게 존경심어린 경례를 보내고, 부러워하는 동기 녀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날 껴안을 것이다.


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께 달려가 어머님 품에 안기고, 함께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나가,

눈부신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많은 꽃다발과 꽃목걸이에 파묻힌 채,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 것이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된 헬기에 오른 뒤,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한 어디론가로 떠날 것이다. 


......


"아~씨 이것좀 놔봐..."

"나 아니라니깐!! 증거 있어? 증거?"

사내의 반항은 더 심해졌고, 잠시 행복한 상상에 젖어있던 나는 혹시나 또다시 팔이 빠질까봐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아저씨가 제 가방에 손을 넣었잖아요!"

"아니 난 넣은적이 없다니까! 지갑도 그대로 잖아!!"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알고보니, 이 사내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다만 가방 안에 있는 지갑을 훔치려 했다는게 여자의 주장이고, 실제로 지갑은 가방 안에 있었다. 결론적으로 심증은 있었으나, 확실한 물증이 없었던 게다.


'아 젠장..'


난 그렇게 끝낼 수 없었다. 내 1계급 특진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저기요~! 우선 내려서 경찰서로 가죠!"

어떻게든 경찰서로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다 보면 뭔가 내 활약상을 부대에게 전할 길도 있을 것 같았다. 


"아.. 짜증나네.. 아뇨.. 됐어요"

온갖 귀찮은 표정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여자는 다음역에 도착하자 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내려버렸다.


......


배신이다.

무슨 이런 개념없는 XX같은 여자가 다있나... 난 어떻게 하라고...


온몸에 힘이 풀린 나를 밀치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신기방기한 욕을 한참동안 내게 퍼붓더니 사라져 갔다.


그리고....

내 '전설의 방위'를 향한 꿈도 그렇게 물거품 처럼 사라졌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인지, 아님 지하철 전문 소매치기였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난 그날 담당 간부에게 한참동안 왜 부대 출근이 늦었는지 설명해야 했고, 하루종일 군기교육으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내 이야기는 문선대 전체에 퍼져, 하루 아침에 난 유명인이 되었다. 1계급 특진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보다 더 좋은 사람들을 알게되었고, 어쨌든 난 이들과 성공적으로 문선대 순회 공연을 모두 잘 마치게 되었다.


가끔 지하철에서 멋진 군인들을 볼 때면,

난 그 때 그시절 잠시 꿈꿨던 '청개구리의 꿈'이 생각나 혼자 미소 짓곤 한다.


그리고 이젠 연락이 모두 끊긴 우리 전우들 모두 다 잘 지내기를...

모두들 인생 '1계급 특진'들을 하기를... 그렇게 바래본다.




(에필로그)


첫번째 문선대 파견이 끝난 후 수개월 뒤, 난 두번째 문선대 오디션에도 합격했다.

그리고 어느날 문선대로 신병 두명이 들어왔다.


"충성! 이병 이정재입니다."

"충성! 이병 유재석입니다."


그래.. 난 이들과 내 두번째 문선대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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