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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Mar 07. 2022

여사친과 19금 영화 :
배신, 여덟

엽기적인 그녀에게 돌려 말하지 마라

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던 1990년대 말,

커뮤니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영화화된 "엽기적인 그녀"였다.


사실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자가 PC통신 나우누리에 게재한 글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퍼진 것인데,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재에 실제 존재했던 논픽션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지만,

글쓴이의 세부적인 묘사나 스토리텔링이 새롭게 등장했던 PC통신체라고 불린 신언어적 기법과 잘 어울려 많은 공감과 웃음을 줬고, 당시 큰 흥행성적을 거두며, 이슈화 되었다. 


잠시 추억을 가다듬고자, 그때의 게시물을 생각해 보면,

한글 발음 그대로를 글로 썼던 PC 통신체는 단순 형용사로는 채워지지 않던 문장에,

표현의 생생함과 활력을 넣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그녀와 저는 같은 문으로 함깨 지하철을 타게 되씀미다.
취해서 비틀거리지만 안는다면 정말 매력저기고 갠차는 아가씨여쪄....
푸하하핫~~! 진짜 특이하다! 저는 그녀가 술에 취해서 배를 기대고 서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힐끔거리며 그녀를 계속 지켜보아씀미다. 그런데 몸을 미세하게 부르르 떨던 그녀가 왠지 불안해 보이더니만 마침내 우웨에엑~~~ 우웨엑~~ 좌르르르르~~

네, 그러씀미다! 그녀가 앞에 앉아 이떤 대머리 아저씨 머리 위에 순식간에 일을 친 거시여씀미다!!
순간 지하철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절라 재미는 상황이었져. 그런데 진짜 일은 거기서부터 터지고야 말아씀미다. 오바이트를 시원하게 하던 그녀가 게슴치레한 눈빛으로 저를 보며 이러는 검미다!

자기야!~ 어어억~ 우욱~ 자기~ 웩~! 쿵~!




내 인생의 엽기적인 그녀도 있을까??

그 사건사고를 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엽기적인 그녀에 등장하는 그녀만큼이나 엉뚱하고 발랄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항상 당혹시키지만 미워할래야 할 수 없는...


말하는 뉘앙스에 따라 혹은 듣는 이의 생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흔히 4차원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돌+I로 돌변하기도 하는 그녀들...


음... 생각해 보자.

내 인생의 엽기적인 그녀들은 누가 있었을까?? 


지금은 연락이 끊긴,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와 난 사실, 초등학교 때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기억하는 초등학생 시절의 그녀는 엽기라는 단어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그녀는 마른 체격에 긴 머리를 하고 있었고, 항상 머리는 파마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쁘장한 외모에 아마 학생회 간부 같은 것을 했던 것으로 보아 나름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던 거 같다. 


기억나는 일화 중 하나는 초등학교 때에 그녀가 친구 4명과 "4분 음표"라는 소그룹을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또래끼리 뭉쳐 다니는 데에 뭔가 이름을 붙이고 싶었었나 보다. 선생님은 4분 음표라는 이름을 붙이고 몰려다니는 것이 불쾌하셨는지 주의를 주신 것으로 기억나고 그 이후 4분 음표라는 말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으나, 여전히 4명은 친한 친구로 항상 함께 했던 것 같다. 그녀들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요즘 이야기하는 '일진', '불량 서클' 같은 건 아니었다. 그때는 무슨무슨 독서모임, 무슨무슨 모임 등 아이들끼리 나름의 취미생활로 뭉쳐진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으니... 좀 더 솔직하자면, 그녀가 뭘 하는지 사실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어찌어찌 그녀와 연락을 계속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이성적 호기심이나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요즘 이야기하는 '남사친', '여사친'으로 점점 관계가 발전해 갔고, 서로의 관계가 끊기지 않을 정도 수준에서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리 사이의 오랜 인연은 대학생을 지나 사회인이 되서도 지속되었는데, 어느새 우린 서로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터놓는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우린 서로의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고, 가끔은 서로의 이성에 대한 흉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엉뚱했지만 발랄했다.

기본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항상 거침없고 시원시원했다.

외모는 두말할 것 없이 예쁘고 아름다웠지만, 보이시함을 가진 뭔가 이중적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황당하고 예상치 못한 '엽기적 행동'을 하는 그녀였지만, 사실 난 은근히 그런 그녀가 재미있고 좋았고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뭔가 삶의 청량제처럼 느껴졌달까?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갈 때면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되는 미묘한 감정이 내 맘 한켠에 두근댔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러한 내 맘을 알았던지, 언제나 재미있는(?) 하루를 내게 선사(?)해 줬다.  




우린 자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는데, 일종의 규칙이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내가 영화표를, 그녀는 저녁을 샀고 그 다음번은 그녀가 영화를, 내가 저녁을 사는 루틴이었다. 재미있는 영화는 언제나 있었기에, 우린 이 루틴에 따라 만남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절친한 친구로서 서로에게 충실했고 진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엔 그녀가 영화를 고를 차례였는데, '해피엔드'를 같이 보자고 했다.


훌륭한 연기자이자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대배우 전도연과 최민식이 부부로 나오는 영화인데 전도연이 다른 젊은 남자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을 안 최민식이 둘을 살해한다는 다소 무거운 내용이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전도연과 불륜 남이었던 주진모와의 배드씬이 등장하는데, 몇 분 안 되는 짤막한 씬이었지만 상당히 수위가 높았다. 전라로 등장하는 두 배우의 모습도 좀 충격적이었지만, 실제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이 장면은 나름 가십거리로 많이 회자되기도 했다.


이 영화와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이 영화가 촬영될 당시, 불륜남 연기를 맡았던 주진모의 코디네이터를 담당했는 분이 아는 누나였다. 당시 나는 인터넷 관련 Start-Up을 압구정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하고 있던 때였는데, 하루는 누나가 사무실로 놀러 와서는, 자기가 요즘 일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배우 한명의 극 중 직업이 웹디자이너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거였다.


누나가 얼마나 나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얼마나 영화에 반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때의 그 영화가 '해피엔드'였고 영광스럽게도 멋진 외모의 주진모 캐릭터가 나의 모습에서 일부 참고되었다는 걸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당시에는 아직까지 영화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촬영 초반 단계였으니...


우린 강남의 어느 극장에서 만났고, 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팝콘과 콜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던 나는,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두 배우의 극적인 연기에 극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마치 숨넘어가는 소리도 들릴까 봐, 침도 조금씩 나눠 삼켜야 할 지경이었다. 오직 두 배우의 거친 숨소리와 숨 막힐 듯한 고요함이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어머, 어머, 어머, 어머"


그녀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극장 안에 퍼진다.


"저거 저거 저거 봐!!.."

"저 엉덩이 좀봐!!.."

"어머, 어머, 어머."

"엉덩이 돌리는 게 예사스럽지 않지 않니?"

"어머, 어머, 어머."

"저건 연기가 아니라 실생활 같지 않냐?"


그녀는 평소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항상 나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건 영화 보는 도중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난 주변 사람들의 눈흘김과 부끄러움을 안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 시작 후 잠깐의 해프닝이었던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창피함도 사람들의 관심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날 이후, 난 그녀와 19금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배드신이 있는 영화를 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무리 친하고 쿨했던 그녀라 할지라도, 뭔가 좀 불편하고 어려웠다. 마치 19금 영화를 부모님이랑 같이 보는 느낌이랄까?


암튼, 그 이후 우리는 몇 번의 영화를 더 보았고,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왔다.




이번엔 내가 영화를 고를 차례였다. 난 당시 최고 흥행작이었던 '친구'를 골랐다.

19금 영화인 게 맘에 걸렸지만, 이미 영화를 본 주변 친구들의 평이 무척 좋았기에 선택하는데 큰 걸림돌은 없을꺼라 생각했다.


'야.. 영화에 이상한 장면 안 나오지?'


난 몇 번이나 미리 영화를 본 친구들에게 영화에 배드신이 나오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럼.. 이거 건달 영화인데, 그냥 친구 이야기야.. 남자 영화야!!'

'이상한 장면 뭐?'

'그런 거 좀 나옴 어떤데?'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뭐 딱히 믿을만한 놈들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이상한 정보를 줄 놈들도 아녔기에 안심했다.


우린 평소와 같이 자주 가던 강남의 한 극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는 내 또래보다는 10년 정도 나이가 많은 선배들의 이야기였지만, 충분히 공감 갈 수 있었고 학생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더더군다나 유오성, 장동건 등의 출연 배우의 연기 또한 훌륭해서 영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스토리에 푹 빠져 영화 중반부가 되었을 때쯤,

바로 문제의 그 장면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합격한 두 친구가 마약에 찌든 주인공 유오성을 찾아가는 장면이었는데,

그들끼리의 대화 속에서 거칠고 저속한 사내들의 단어가 많이 튀어나왔다.


'빠구리'


이 단어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남자들 대부분, 적어도 내 주변에 모든 친구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습득하고 기억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 "빠구리"는 "섹스"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서 "빠구리"라는 단어가 몇 번씩 반복되자,

궁금증을 못 참는 그녀가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빠구리가 뭐야?"

"...." 


순간 난 예상치 못한 그녀의 질문에 당황했다.


"빠구리가 머냐고?"

"저기... 음.. 저... 내가 이따가 알려줄게"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빠구리가 머냐니깐?"

"여기 영화관이니까 조용히 하자. 응? 내가 이따 밥 먹으면서 알려줄게"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한계치를 넘고 있었다.


"야! 빠.. 구.. 리.. 가 머! 냐! 구!!!!!!" 


......


순간 난 머리가 삐죽삐죽 섰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영화관에 까랑까랑하게 퍼져나갔고,

몇몇 앞자리의 사람들은 뒤돌아 우리를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미친...'


여자들은 자기도 궁금했던 질문의 답을 나에게서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온 신경을 내 입에 귀 기울이고 있는 듯했고, 남자들은 도대체 저 녀석이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가에 대해 키득키득 거리며,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래... 모두들 나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난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대답할 때까지 계속 물어볼 것이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대답을 해야 한다. 최대한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한다.


'빠구리..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땀이 비 오듯이 한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 어질어질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어찌 되었던 이 위기를 모면해야만 한다..


"빠구리는...... 성교의 은어야" 


'!!!!!!'


난 내 자신의 어휘력에 감탄하며 식은땀을 닦았다.

기나긴 암흑 속 터널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듯했다.

용기가 없어 뒤를 돌아보지는 못했으나 여기저기에서 남성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떤 한 몰지각한 남자는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무지 흐뭇하다. 뭔가 내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것만 같다.


'그래 이 정도면 아주 훌륭했어!!'


그녀는 아주 잠깐 동안의 정적을 깨고 웃겨 죽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꺄르르르... 순진하게 뭔 말을 그리 어렵게 해.. 빠구리는 섹스라고!!"


......


배신이다.


그녀는 그 뜻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날 놀린 것뿐이었다.


'이런 엽기.. 아니 돌+I 같은.....'


몇몇 사람들이 참고 있던 웃음을 뿜기 시작했고, 전염병처럼 극장 안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녀도 함께 웃었다. 모두들 나만 빼고 하나가 된 듯했다.

아마 모두들 "빠구리"의 뜻을 평생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와의 연락은 이젠 모두 끊겼지만,

그 이후 영화 '친구'는 드라마로, 그리고 '친구2'로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그 때의 일, 그녀가 생각나 웃음짓곤 했다.


'내 엽기적인 그녀는 잘 있겠지?'


엽기적인 그녀가 무엇을 물어본다면,

애써 돌려 말하지 말라. 


그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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