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팬데믹 상황에서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갇혀 있는 힘겨운 여름을 맞이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무기력하고 답답한 날들이었다. 더운 날씨에 지쳐가던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에서 일 년만 살아 보기로 했다.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니 실행은 빨랐다. 이사까지 남은 시간은 네 달 남짓. 이것저것 알아볼 여유 없이, 몇 년 전 한 달 살기를 했던 한적한 마을에 집을 구했다. 가을 내내 이삿짐을 싸고, 남편 혼자 살게 될 집을 정리했다. 새해를 며칠 앞두고, 정말 오랜만에 여행 가는 기분으로 포근한 겨울비가 내리는 제주에 왔다.
제주의 작은 집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유안이는 작은 분교에, 지안이는 병설유치원에 입학을 했다. 눈부신 일 년이었다. 제주에서의 첫해가 끝나가던 무렵 여덟 살 유안이는 딱 일 년만 더 살고 싶다고 그저 떼를 썼는데, 그다음 해 아홉 살의 유안이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덕분에 우리는 2023년 현재 제주에서 세 번째의 일 년을 살고 있다. 세 번의 일 년 살기란, 단순한 제주살이가 아니다. 모든 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더 각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치열하고 열정적인 삼 년이었다.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는 농도 짙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유안이의 편지를 읽고 처음으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고, 다정했던 우리의 눈부신 나날들에 대해. 늘 제주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할 우리에게, 언제든지 꺼내 보면서 서로 실컷 이야기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 나에게 앞으로 남은 모든 날들 중 가장 돌아가고픈 순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제주로 왔고, 나는 책을 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이제 열 살의 유안이는, 혹은 여덟 살의 지안이는 어떤 행동을 할지, 우리는 어디에 있게 될지 나도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