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일 차
별 일없이 삽니다. 별 일이 너무 없어서 이따금 감사함을 잊고 권태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요. 사실 올해 봄까지는 별스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시아버지가 기나긴 항암치료를 마치고 영면하였고, 주변에서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줄곧 머릿속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작년에 급작스럽게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안과질환을 진단받아서 더욱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주는 삶의 감사함을 복기하면서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에 애써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그래서 별 일을 자꾸 만듭니다. 새벽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아이가 숙제를 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야 했기에 미술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고, 취직을 해야 했기에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지만 안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눈치 보고, 계산하고, 주저하면서 이 십 대를 허비했습니다. 자연스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삶과는 남의 것인 양 아득히 멀어졌고요.
작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저는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가슴에 묵혀둔 말을 말이 아니라 글로 풀어내니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서요. 날 것의 감정을 체에 걸러 고운 언어로 담아내니 마음도 제법 정갈해집니다. 덕분에 회사에서 숫자와 씨름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활자로 찾는 활기로 수혈을 하며 생기를 얻습니다.
제주에 입도한 지 12년이 되어갑니다. 제 의지로 내려온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제주가 아닌 곳에서의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이곳을 사랑합니다. 출산과 육아, 워킹맘으로서 단절된 경력을 새로이 잇는 인생의 전환점을 모두 제주에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제2의 고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곁에서 나는 우레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고, 쉽게 기뻐하고 쉽게 슬퍼하는 사람. 이런 성정을 가진 저에게 제주는 평정심을 찾는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한라산이, 풍경이 저를 다독이고 위로해 줄 때가 많습니다. 시시각각 변덕스러운 날씨의 자연 앞에서 보이는 것을 의식하고 남과 견주는 마음은 한없이 보잘것없음을 깨달으면서요.
다행히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서귀포의 여유를 태생적으로 품고 자란 이들입니다. 때로는 그들의 느긋함에 답답해하며, 때로는 그들의 너그러움에 감사해하며, 직장인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는 제가 글을 쓰는 걸 응원하고 지지해 줍니다. 좋은 생각 9월호에 짧은 제 글이 실렸을 때 아이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해 마지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잔소리와 신경을 쏟기보다 읽고 쓰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이의 성적표보다는 저라는 개인의 소소한 성취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 이기적인 엄마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는 제 노력이 아이에게 긴 말이 필요 없는 동기 부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글을 쓰다가 종종 제 한계에 부딪히곤 합니다. 사유의 깊이가 얕다는 생각,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부단히 읽고 쓰는 것이 답이겠지만,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듣고 교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 시점에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배터리처럼 소모되기 일쑤인 의지력이 불씨가 사그라들 때 서로가 성냥이 되고 장작이 되어주길 바라봅니다. 결코 사위지 않을 불씨를 위하여 제가 성냥개비가 되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