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21일 차
잘 지내시지요? 글로 인사드리려니 쑥스럽습니다. 뜬금없지만 이건 저만 간직하는 편지니 우리가 나눈 수많은 대화 중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볼까 해요. 당신 앞에서 조심하느라 앞으로도 삼가게 될 저의 속내를 말입니다.
본디 우리는 연중 두 번, 명절에만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지만 올해는 유달리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같은 성씨를 가진 형제를 남편으로 둔 덕에 아버님을 먼 하늘로 보내 드리는 길을 함께 걸었지요.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매캐한 향내에 목이 잠길 세라 울고 연도를 드리는 짬짬이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지 모릅니다. 신기하리만치 대화가 끊이지 않았어요.
홀로 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온 이번 여름휴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위를 식히느라 잠시 들른 정자에서 얼마나 재밌게 수다를 떨었는지, 곁에 머무르던 방문객이 우리더러 자매냐고 물었지요. 어머님은 동서 간에 우애가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셨지만, 그 얘기를 듣고서 당신은 기분이 어땠나요? 솔직히 저는 좋다기보다 묘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화기애애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요.
당신은 아이를 낳고, 저는 결혼을 하고 맞이하는 첫 명절이었어요. 모르셨겠지만 저는 꽤 긴장했더랍니다. 시댁 식구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인정 욕구가 저를 저답게 굴지 못하도록 옭아매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당신 앞에서 유독 버벅거렸고 눈치 없는 흰소리를 좀 늘어놓았던 거 같습니다. 수년간의 직장 생활로 예리해진 당신의 눈썰미에 어설펐던 제가 영 못 미더웠던 걸까요? 저는 그만 감지해 버렸습니다. 달갑지 않아 하는 눈빛, 솔직함과 장난기로 무장했지만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농담들. 당신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꽤나 속앓이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세상사 다 통달한 듯이 노련해 보이던 당신도, 그리고 저도, 둘 다 미성숙한 어른이었단 것을요. 당신이 한 아이의 엄마가 처음이듯, 저도 누군가의 아랫동서가 처음이었지요.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상처 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나누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한때 간절히 바랐습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를요. 그래서 얼굴을 아예 안 보고 살 수 없는 당신을 더는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요. 더는 당신이 저를 미워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당신과 제가 서로 맞잡고 있던 실. 미묘하게 떨리던 팽팽한 긴장감을 기억하시나요. 서로 웃으며 예의를 갖추지만 드문드문 서로의 속내를 떠보던 시간들. 지금 돌아보면 우리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거 같아요. 간 보고 떠보는 대화들 속에 우연히라도 내밀한 사정을 발설하게 되면 소중한 비밀을 하나 빼앗겨버린 것만 같은 억울함이 들었거든요.
어느 날 당신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요. 첫 손주와 새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명절이라 대게찜을 한 상 차렸던가요. 당신은 자지러지게 울음이 터진 아기에게 젖 먹이느라 몇 입 대지도 못하고 방문을 걸어 잠가야 했지요. 방문 밖에서 식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곁들으며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자주 울적하고 자주 예민하고 자주 원망스러웠다지요. 그중에서 제 목소리가 가장 튀었나 봅니다. 막내며느리로서 곰살맞게 구느라 애를 쓰던 저는 당신의 외로운 사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기를 낳고 비슷한 처지가 되고서야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한때는 두려웠던 당신의 솔직함이 진솔한 사과로 돌아왔을 때 말입니다.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고고한 학처럼 자존심 강하게만 보이던 당신이 제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 언어를 이해하려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하고, 제 입장에 서보려고 의견을 묻고 귀담아 들어줍니다. 맛있는 걸 먹고 예쁜 걸 보면 감탄을 숨기지 못하는 저를 과장된 반응이라며 이해하지 못했던 당신이 지금에 이르러 이렇게 말합니다.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할 줄 아는 해맑은 저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요.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우리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짐을 느끼시나요. 아무래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더욱 그럴지도요. 뒤끝이 제법 길다면 긴 저도 그만큼 미움의 농도가 옅어집니다. 당신의 솔직함도 세월에 깎였는지 많이 둥그레졌습니다. 솔직과 무례의 경계에서 생채기 난 마음도 제법 아물었고요. 상처받았던 시간에 갇혀있지 않고 지금의 당신을 온전히 바라보려고 하니까요.
미움이 걷어지길 바랐던 기도의 내용을 이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너무나 다르지만 지금처럼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로요. 만약 또다시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서로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면,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는 건 어떨까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 그럴 수 있겠다."라고 했던 밤이요. 무거워진 눈꺼풀을 비비고 하품을 연신 하면서도 새벽 네 시까지 그치질 못했던 우리의 수다를 말입니다.
대화의 온도를 지금처럼만 유지한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이보다 더 가깝고 더 먼 것은 욕심인 거 같아요. 부디 서로가 서로를 오래도록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침과 저녁 바람이 제법 싸늘합니다. 환절기 감기 유념하시고요. 내년 설에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