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2일 차
바게트 빵은 퍼석하게 바스러졌고 불고기 패티는 냉동 떡갈비를 전자레인지에 데운 맛이 났다. 베트남식 반미 샌드위치라길래 골랐는데 베트남 음식점에서 먹던 풍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그렇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맛은 기대를 종종 배반하곤 하니까. 더욱이 공항에 자리 잡은 곳이라면 간단하고 신속하게 끼니를 때우면 그만일 텐데 정성 어린 맛을 기대한 내가 욕심이 과했다.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먹은 샌드위치와 아이스허브티로 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맛없는 음식으로 속을 채운 허탈함 탓인지 심리적인 이유 때문인 건지 헷갈렸다. 안 먹는 게 더 나았을 법한 샌드위치를 허브티로 헹궈낸 입 안에는 명절 내내 친정과 시댁에서 차려 먹은 집밥의 감칠맛과 짭조름함이 남아 혀 끝이 얼얼했다.
평소에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산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기질도 있겠으나 연고 없는 섬에서 새로운 인연을 일구며 적응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공연하게 제주가 제2의 고향이라 말하고 다닐 정도로 삶의 근간을 이루는 대부분이 이 섬에 붙박여 있다. 외로움이란 단어가 생소해진 게 언제부터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그다지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바로 고향에서 긴 명절 연휴를 지낸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곧 착륙을 앞두고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볼 때, 그때서야 자각하는 것이다.
'아, 나는 이 섬에서 외로웠구나.'
원가족, 친구들과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가깝다 한들 각자의 삶이 바쁘면 멀리 떨어져 사는 것과 진배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곁을 그리워한다. 조금 전 우리가 함께 있던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떠올릴 만큼 아이처럼 떼를 쓰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른이다. 행복했던 시간을 길게 늘이고 늘려 끝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서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잘 안다. 시간은 유효하고, 행복은 간헐적인 빈도로 아쉽게 스쳐야만 더 귀중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해안선을 따라 빽빽이 들어선 고도가 낮은 건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듬성듬성 놓인 오름,
그 가운데서 꼿꼿이 중심축을 이루는 한라산의 자태.
분명 떠나올 때와 변함없는 풍광이건만 그 자연을 바라보는 나는 스스로가 조금 달라졌음을 느낀다. 이는 도민이라기보다 육지것에 가까운 생경함이다.
헛헛함과 그리움이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밥 먹고, 자려고 누울 때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연기 같은 그리움은 점차 옅어지겠지.
태연하게 보통의 날들을 견디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로웠다는 자각조차 잊고 살 테고.
그렇게 다시 도민의 일상으로 무사 귀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