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3일 차
<마음오름 5분 글쓰기>
주제: 오늘
수산한 못에서 만난 수상한 그녀.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쓰면 더 의식하게 된다.
마치 북극곰을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북극곰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듯이.
그래도 다 좋다. 오름과 못이,
왜가리와 고추잠자리가,
보드라운 가을바람이
괜찮다, 괜찮아 어루만져 주니까.
마음의 집, 영혼의 둥지.
자연이 내면의 집터를 고르게 다지고 그 위로 주춧돌을 얹어 집 지을 여유를 안겨주었다.
여유가 사라졌을 때,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눈을 감아도 오래 남을 잔상으로 오늘의 풍경을 가슴에 담아본다.
한산한 연못가의 정자 마루에서는 한창 명상 수련이 이뤄지는 중이다. 몸의 긴장을 늦추고 호흡에 집중하는 일련의 동작들을 마친 후 마지막 명상만이 남았다. 우리들은 일제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느꼈다. 몸 구석구석 손 끝, 발 끝까지 가 닿는 숨을 섬세하게 느끼려던 참이다. 명상 초보자인 나에게는 꽤 어려운 시간임이 분명했다. 내면이 고요해지기는 커녕 수시로 끼어드는 잡념을 가열찬 도리질로 떨쳐내느라 되레 마음속이 시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몰입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읍, 후우."
쏴아아, 쏴아아. 못을 둘러싼 억새풀, 물속에 뿌리를 담근 부유식물, 멸종위기종이라는 전주물꼬리풀이 바람결에 잎사귀와 줄기를 부대끼며 빚어내는 소리를 듣는다. 드디어 '명상'의 '명'자 근처라도 가보려나 싶던 찰나였다.
후다닥, 명상의 '명'자가 다가오려다 도망갔다. 빨강, 파랑, 초록, 연두, 하양, 검정. 천연 원색을 뽐내는 거대한 앵무새와 그녀에게 온통 주의를 빼앗기고 말았으니까. 새의 주인인 그녀는 선명도 높은 깃털 색만큼이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명상에 잠긴 우리를 투명인간으로 생각하는지 목소리를 낮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궁금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휴대폰 너머 상대의 목소리와 그녀의 대화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명상에 있어서 하수 중에 하수, 초보 중에 왕초보인 내가 과연 이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당신과 저희는 결이 전혀 맞지 않네요.'
귓바퀴에 맴도는 그녀의 말소리를 억지로 밀어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참다못해 수련을 이끄는 선생님이 양해를 구하자 "우리 애(?)가 자리를 옮기면 저도 갈게요."라는 말을 남긴 그녀가 경이로웠다. 하긴 이곳은 주인이 따로 없는 천혜의 자연이고 그녀와 그녀의 앵무새는 산책 중이었으니까. 우리는 그들의 산책 코스에 오래 머무른 방문객일 뿐이다. 각자의 필요에 의해 공용 장소를 활용할 따름이니 그녀에게 배려를 강요할 문제는 아니었다.
예전의 나라면 눈치 없음과 배려 부족을 구실 삼아 속으로 그녀를 비난했을지 모른다.
'나였다면 명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자리를 비켜주었을 텐데.'
'나라면, 나였다면, 어찌어찌하였을 것이다'라는 판단은 결국 나의 기준에 따른 것일 뿐 그녀의 기준은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그녀 덕분에 아름다운 연못 위로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미끄러지듯이 착륙하는 앵무새를 보았으니 눈 호강 한 번 잘했다.
무사히(?) 명상을 마친 뒤에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명상은 마음에 정주할 집을 짓는 일이라 한다. 우리는 세상살이에 영혼을 다쳤을 때 언제고 귀소 본능처럼 돌아와 기대어 쉴 곳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고향이거나, 사랑하는 이의 품 속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장소도, 그런 사람도 없다면 자신 안에 둥지가 필요하다. 명상이 내 안에 집을 짓는 일이라 생각하니 마냥 어렵기보다 근사하게 느껴졌다.
다만 소란한 외부와 아예 소통을 차단하고 내면으로만 숨어든다면 그것은 고립이라 할 수 있겠다. 자발적으로 고립을 선택한 이의 사례를 듣자니 과거의 내 모습을 비추는 것 같아 남일 같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쩔 수 없이 고립이 필요한 시기일지 모른다. 고립 속에 내면의 안정을 찾은 후, 조만간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손을 건네볼 용기가 생길지도. 나는 다행히 그 시기를 지나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독립과 소통의 기쁨을 누리려는 참이다.
명상과 다름없이 글쓰기도 내 안에 생각의 집을 짓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와 명상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글쓰기는 수시로 나를 들여다보게 만들고 생각을 자라게 한다. 그렇게 자라난 생각은 입체적인 인간을 사려 깊게 이해하는 일을 돕는다. 페스트리처럼 겹겹의 의도로 둘러싸인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때론 어렵고 감정 소모를 필요로 하지만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노력이다. 이해받고자 한다면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명상을 통해 이뤄진 사색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수산한 못'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인근에 자리한 '낭끼오름'이라는 야트막한 동산까지 오르고 나서야 마음오름의 모든 수련이 마무리됐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이들과의 대화는 결이 곱고 보드랍다. 늘 그렇듯 존중과 배려를 주고받는 대화는 짧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배가 된다.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향하는 내비게이션을 켰다. 차에 시동을 걸자 부르릉 경미한 떨림이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전해져 온다. '오늘'을 잘 보냈다는 고양감을 진동으로 느끼며 액셀을 밟았다.
#활활살롱
#마음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