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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을 자중하는 법

100일 글쓰기 19일 차

by 뵤뵤


"얘, 뒷자리 너! 그만 떠들지 못해?"

"아, 아니. 저는 그게 아니라요......"

"어디서 변명이니? 조용히 하고 있어!"

"... 네..."


반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억울함과 창피함이 순식간에 밀려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분명 옆 자리 애가 먼저 툭툭 건드렸다. 전학 와서 새로운 반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던 국민학교 2학년 여자아이는 수업 시간에 자꾸만 걸어오는 그 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기 싫었다.


몇 번은 모른 척했던 거 같다. 그만해도 될 텐데 포기를 몰랐던 그 애가 점점 장난의 강도를 높였다. 종합장 귀퉁이를 잘게 찢어 던지기, 팔꿈치로 툭툭 치기, 유치한 놀림을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살대기. 처음엔 무시하다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쉿' 단속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만. 해.'

소리를 죽인 입모양으로 그 아이에게 경고하던 찰나, 딱 걸려 버린 것이다. 단속이든 거부의 몸짓이든 선생님의 시선에선 다 같은 수업 방해로 보였나 보다. 눈 안 가득 눈물이 고였다. 수업 시간에 울면 더 혼이 날 것만 같아서 수도꼭지 잠그듯 눈물을 단속했다. 그날 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엉엉 참았던 울음부터 터뜨렸다.


살면서 느껴보았던 억울함, 민망함, 당혹감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랄까.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데 기침을 자중하는 법, 누가 좀 알려주세요.


기침이 때와 장소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코로나 때 방역마스크 착용을 단속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백발이 성성한 그분의 정수리를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마음이 뒤숭숭했다. 무턱대고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기침을 남발한 게 아닌데. 억울했다. 참을 대로 참아보고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했건만 그의 야단 한 마디에 기침을 참아보려 애쓴 보람이 사라졌다.


연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났고 나 홀로 공항 리무진에 캐리어와 몸을 실었다. 리무진 안은 붐비는 귀성객들로 빈자리 하나 남지 않아 입석에 당첨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시간가량 자리가 날 때까지 버스의 통로 한가운데를 버티고 서야 했다. 급정거로 고꾸라지는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균형을 잘 잡고 버텨야 하므로 손잡이를 붙들기 마땅한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좋겠네. 자리 선정의 기준은 지극히 단편적이었다. 바로 좌석에 앉은 승객의 인상. 다소 붙어 서게 되더라도 불편함을 뾰족하게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너그러운 인상을 찾아 그 옆에 섰다. 그이와 일정한 간격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의식하면서.

목적지 중반쯤 왔을 때일까. 버스 안의 건조한 공기와 좌석 칸칸이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 탓에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시원하게 헛기침을 해서 목을 긁어줘야 해소될 것 같은 간지러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감기 증상은 없었고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밀집한 좁은 공간이라 조심스러웠다. 때마침 코로나가 다시 유행한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숨을 들이마셔 참아보기로 했으나 참아지질 않아 난감했음은 물론이다.


아이 학교 가정통신문과 언론에서 무수히 알려준 기침 에티켓을 떠올리며 고개를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돌렸다. 입을 팔꿈치 안쪽에 깊숙이 묻고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딱 한 번이라면 좋았을 텐데 이 놈의 간질거림이 그치질 않았다. 팔에 얼굴을 더욱 깊숙이 파묻고 세 번째 기침을 막 마치던 참이었다.

"하, 거참, 기침 좀 자중허세요!"

내가 붙잡고 있던 손잡이가 달린 좌석의 주인이었다. 그는 뒤편에 선 나를 향해 날카로운 호통을 쏘아붙이고 눈이 마주칠세라 재빨리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당혹스러웠다. 그의 꾸짖음으로 졸지에 대책 없이 기침을 저지른(?)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찰나였으나 머릿속은 바삐 돌아가는 사고 회로 탓에 어지러웠다.


우선 기침이 자중할 수 있는 선택적인 신체 반응이었나부터 시작해서 그를 불편하게 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나, 아니라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낸 걸까. 이대로 잠자코 있어야 하나, 뭐라고 입장 표명을 해야 할지까지도. 어린 시절의 나라면 화끈거리는 얼굴로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불혹이 지난 나는 아니었다.

"입 가리고 기침했어요. 저는 에티켓을 지켰습니다아~."

웃으면서 던진 상냥한 말투였지만 '참 유난이세요'란 비아냥을 전혀 담지 않았다곤 말 못 하겠다. 그가 배짱 부족한 비아냥거림을 감지했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 그가 세 번의 기침 소리를 듣고 마치 내가 본인의 정수리에 아밀라아제를 분무기처럼 뿌려댄 줄 의심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아니었으므로 오해를 풀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버스 천장에 달린 CCTV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선진 문화시민으로서 에티켓과 배려를 아이에게 가르쳐온 엄마로서 이런 취급은 마땅치 않다고 여겼다. 45인승 리무진 버스에 입석 두 명을 포함해 47명 중 단 두 명만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코로나가 재유행한다는 소식이 신경 쓰이거나 건강이 염려되었다면 마스크를 꼈으면 될 일이건만 그는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다.

그가 내리고 나서 몇 정거장을 지나친 후, 나 역시 목적지에 당도했다. 휴우, 같은 동네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했다. 별 흉흉한 일들이 판치는 무서운 세상이라 만약에 같은 곳에 내리면 어떡하지 내심 마음을 졸였던 것이다. 소심한 천성 어디 안 가는 법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말을 못 하고 안으로 삭였다. 어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아이였다. 친정 엄마가 너는 키울 때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까지 하셨으니 말 다했을지도. 하지만 삭인다고 삭여지는 게 아니고,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었다. 분출되지 못한 감정은 억누른 시간의 압력만큼 적절치 못한 시점에 필요 이상의 반동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차라리 그때그때 표현했어야 했다.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무작정 참았을지 모르겠다. 관계와 심리 관련 책들을 읽고 실전 경험을 통해 조금씩 용기를 얻고 여유를 찾고자 했다. 그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리무진 버스 안에서 무안한 상황에 대처한 방식이 치기 어렸나? 난 아직 철이 덜 들은 걸까.'


습관적으로 자기 검열을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 말도 안 했다면 그 나름대로 잠을 못 이뤘을 거 같다. 왜 필요한 상황에 당당히 해야 할 말을 못 했는지 자책하면서. 배려하는 마음과 조심하려는 노력이 아예 없었다면 당시에 그 정도로 속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워도 반성에 그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해졌다. 오해를 산 게 억울했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기침'과 '자중' 두 단어의 조합이 신박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자중'이 몸가짐을 신중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를 소중히 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그날 용기 내어 외쳤던 항변도 자중의 일환이었다. 앞에 앉은 당신을 위해 기침을 조심하려고 애썼던 나를 위한 자중 말이다.


우스운 사실은 조금은 신이 나기도 했단 거다. 이걸 또 어떻게 글감으로 구워삶을까 궁리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리무진 안에서 집까지 서서 가는 길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 쓰고 보니 한편으론 그분에게 감사하기도 하다. 별 일을 겪으면 평상시에 해보지 않던 별 생각에 이르게 되니까. 글을 써서 천만다행이 아닌가. 억울했던 경험이 불쾌한 감정으로만 고여있지 않고 어린 시절의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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