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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 신는 내 나이가 어때서

100일 글쓰기 27일 차

by 뵤뵤
유 OO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호카와 온러닝 등 러닝화 관련주가 주춤하는 것은 중년층이 신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호카, 온러닝도 중년층이 신으면서 주가 상승 사이클을 끝내고 성장성 둔화, 주가 하락 사이클에 접어들었다”라고 분석했다.

아저씨들이 신기 시작하니... 러닝화 주가 뚝뚝?- 매경ECONOMY (2025.07.13)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호카를 40대가 신는 게 뭐 어때서. 우리 나이가 어때서.


하긴, <시대예보>를 쓴 송길영 작가가 강연에서 들려준 말도 뼈가 시리긴 했다. 40대 이상이 이해하고 사용한다면 그건 이미 트렌드가 아니며 레드오션이라고. 마치 탕후루 가게처럼 너도나도 우후죽순으로 개점하면 다 같이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상황에 비유를 들었더랬다.


특정 타겟층만 향유할 수 있는 희소성이 브랜드의 힙함을 결정하는 시장 논리를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올여름 경제면을 장식한 기사의 헤드라인은 꽤 껄끄러웠다. 직접적으로 겨냥된 아저씨는 아니어도 그들과 같은 중년이자, 아저씨를 남편으로 둔 배우자로서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통계 수치가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프레임이 과연 적절한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작년, 생일을 앞두고 눈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빨간불이 켜지기 전 이쯤에서 발견한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더 이상 진전이 되는 것만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으므로 인터넷 검색창에 병명과 나란히 '진행 속도 늦추는 법'을 입력했다. 내가 '녹내장'으로 시작하는 키워드를 검색하게 될 줄이야. 약간의 참담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크롤을 따라 펼쳐지는 게시글들이 하나같이 입 모아 말하는 대처법이란 게 다른 질환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김도 샌 거 같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과 '녹황색 채소 섭취'라니. 엄청난 비법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만병에 해당하는 예방법 같아 진부했지만, 아무튼 눈에 좋다고 하니까 곧바로 행동에 옮겨야 했다.


본디 침대를 사랑하지만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별수 없이 이별해야 해서 매일이 아쉬운 사람인데. 그런 내가 매일 뛸 수 있으려나.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운동부족으로 삼십 년이 넘게 살아온 탓에 무릎 관절이 안 좋았다. 체지방이 근육량을 능가하는 체형의 숙명으로 안 하던 달리기를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무릎 안쪽의 통증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눈을 위해서 빨리 걷든, 달리든 간에 호흡이 가쁘게 움직여야만 한다. 비장해져 버린 나는 그 옛날 시험공부를 시작하기 전 평상시 내버려 두던 책상을 정리하고 한 다스의 연필을 깎아놓던 습성이 되살아났다. 몸이 안 따라주면 장비발에 기대어 보자는 심정으로 발목과 무릎에 최대한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쿠션감이 뛰어난 러닝화, 워킹화를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내게로 안착한 그 이름마저 멋진 호카(HOKA). 하늘, 보라, 민트, 하양. 어슴푸레 밝아오는 제주의 아침하늘을 닮은 나의 호카는 땅을 딛는 순간 발바닥부터 무릎까지 전달되는 충격을 오롯이 감내하고 산뜻함을 오래 유지하며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을 선사했다. 그뿐 아니라 운동을 뒷전으로 미루고픈 게으름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호카만 신으면 동네 뒷산이라도 다녀왔다. 비록 8 기통 엔진을 단 슈퍼카가 출퇴근길만 왕복하는 모양새긴 하지만. 그렇게 엉덩이가 무거웠던 날보다 숨차게 땀 흘렸던 날들이 예년보다 잦아졌다. 이 정도면 장비발을 보았으니 본전을 제대로 뽑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호카의 주가가 떨어진 원인이 중년층이 신어서란다. 중년이 신기 시작하면 이삼십 대 젊은 세대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 간단다. 특정 세대만 공유하고 싶은 힙함을 범 세대적으로 침범당했다고 느껴서일까. 바쁜 일상 틈틈이 스크롤을 넘기며 후루룩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별 비판의식 없이 기사를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렇게 '중년이 사용하고 먹고 마시면 더 이상 힙하지 않다'는 인식이 스펀지처럼 스며들다가 확고한 대세로 굳혀지진 않을까 우려됐다. MZ를 비판하고, 영포티를 조롱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신나게 부추기는 건 정작 집단 내 구성원들이기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뉴스 기사가 아닌가라는 의문과 함께.


그런데 기사 때문에 긁힌(?) 사람이 나 말고도 한 둘이 아니었나 보다. 자조와 푸념 섞인 논평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에 내 푸념을 하나 더 얹어도 문제 될 건 없겠다. 내가 호카를 신고, 핑크색 와이드 팬츠에 크롭 셔츠를 즐겨 입는 건 젊어 보이긴 위한 짠한 노력이 아님을 변론하고 싶다. 푸르름이 빛나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나의 기호와 건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요즘의 가치관이 더해져 장착하게 된 패션일 뿐, 힙합과 젊음을 따라서 좇은 결과는 아니라는 걸.


결코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호카를 구매한 이유는 기능과 디자인, 일거양득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서였다. 젊어 보이고 싶어 샀다고 한들 그러면 좀 어떠한가. 젊음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류의 유구한 본능 아니었던가. 진시황의 불로초처럼 영생을 바란 것도 아닐진대 젊음이야, 욕심낸다고 죄짓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삼십 대때는 사십 대 이상 선배들과 언니들의 까탈스러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함께 해볼라치면 꼭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조건이 많았다.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보니 이제는 알겠다. 잠자리를 가리는 건 오랜 좌식 생활로 인한 허리 통증과 하루의 기력이 몽땅 잠에 달려 있어서라는 걸. 음식을 가리는 건 스트레스와 나이로 인해 약해진 위장 기능 탓이라는 걸. 여기저기 몸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나이를 실감하게 한다.


나 역시 매년 충족해야 할 조건이 하나씩 늘어나는 까다로운 중년이 되었다. 대신에 마음은 신체와 반대로 여유가 느는 건지 이해의 폭이 점차 넓어짐을 느낀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면서 함부로 단정 지어 말하기를 경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일 "아저씨들이 신어서 그 브랜드 한물갔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발끈하지는 않을 거 같다. 다만 속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삼키게 될지도.


"아직은 모를 수 있어요. 나이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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