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은 비를 타고

퐁당퐁당 100편 글쓰기 58화

by 뵤뵤

출근길마다 가파르게 넘나드는 오르막 너머로 한라산을 본다. 두터운 먹구름에 둘러싸인 탓에 꼭대기는커녕 산자락도 보이지 않는 날이다. 차창 밖으로 점점이 맺히는 빗방울이 굵어졌다. 점심시간에 뒷산으로 올라가 땀을 내려던 결심이 식어버렸다. 날씨가 그림처럼 화창해도 핑계가 많아서 무거운 엉덩이다. 하물며 하늘에서 분사하듯이 흩뿌리는 빗발이라니. 굳이 맞으러 나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전 근무를 마칠 때쯤 변덕스러운 기분이 생각을 바꿨다. 업무로 인한 갑갑함을 산책으로 털어내고 싶은 욕구가 귀찮음을 이겼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해도 바뀌지 않는 소통 방식과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개선의 의지가 없는 무신경함에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난 여전히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가슴을 치고 있다. 말로만 내려놨지,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한 게 분명하다.


서둘러 배를 채우고 회사에서 십여 분 남짓 떨어진 뒷산으로 갔다. 젖은 나뭇잎이 나뒹구는 계단 위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질척질척과 바스락바스락이 한데 섞인 소리가 들린다. 인간의 보행을 위해 인위로 길을 내어준 나무와 덤불 잎사귀에 알알이 이슬이 영글었다. 등 뒤로 지나온 계단이 눈앞에 펼쳐진 계단보다 많아질 때쯤 숨이 차오른다. 확장된 호흡기로 들이마신 공기에서 젖은 풀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들숨으로 한껏 부풀어진 폐 속 깊은 곳까지 초록으로 물드는 기분이다.


허벅지와 엉덩이의 뻐근함보다 귀, 눈, 코의 감각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전망대에 올라 360도로 펼쳐진 풍광을 둘러본다. 구름이 시원하게 길을 터주지 않아서 시야가 영 답답하다. 그런데도 서운하지 않은 이유는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 맞아. 나 비 오는 날을 좋아했지. 문득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 놀이터를 혼자 거닐던 장면들이 낮은 해상도로 재생되었다.






의젓하다,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줄곧 듣고 자란 아이는 마음껏 철없이 굴어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육 남매 중 장남의 첫째 딸로 태어나서였을까. 몇 살 때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몰라도 될 어른들의 사정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시부모와 시동생들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엄마는 여덟 살 딸의 어리광을 받아주기에는 늘 분주하고 고단해 보였다. 고등학생인 고모와 삼촌이 간간이 나를 데리고 놀아주었지만 어린 조카보다는 또래 친구들을 자기 방으로 데려가 기타를 치거나 만화책을 빌려보는 일이 더 재밌을 나이였다. 아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연중 열 번이 넘는 제사와 차례에서 지방문을 쓰고 절 하던 모습이 그나마 선명할 뿐.


유일하게 다른 성씨를 가진 맏며느리의 외로움이 어린 딸 눈에도 보였다. 나 때문에 엄마가 웃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대체로 순종적으로 구는 편이 이롭다고 여긴 거 같다. 그래야 모두를 기쁘게 하고 칭찬받을 수 있으니까. 인정욕구가 강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게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내키는 대로 아이다울 수 있어서.


비 오는 날은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놀이터를 들렀다. 날이 화창할 때는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아이들이 번잡스러워서 찾지 않던 곳이다. 한가롭고 고요한 풍경은 비가 와야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날은 인기 많은 그네를 오롯이 차지할 수 있어서 이득이었다. 새치기를 당해도 차례를 뺏은 얍삽한 아이에게 비키라는 한 마디를 못해서 속만 끓이는 성격이었다. 서둘러 찜해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비어 있는 두 개의 그네를 여유롭게 바꿔 탈 수 있다니. 내 세상이 따로 없는 셈이다.


축축하게 젖은 그네에 앉다가 엉덩이가 흠뻑 젖더라도 상관없었다. 있는 힘껏 땅을 박차면 그네가 앞뒤로 흔들리는데 포물선이 점점 커지다가 더 이상 발을 구르지 않아도 될 만큼 몸체가 높이 뜬 순간이 가장 스릴이 넘쳤다. 공중에 붕 뜬 발밑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슬쩍 단조로워질 때쯤 우산과 고개를 확 뒤로 젖히고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입안으로 들어온 비가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다. 누군가 보고 있다면 감히 시도해 보지 못할 장난이었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어린이는 '별난 아이'로 낙인찍히는 게 세상 무서웠으니까.


놀이터에 깔린 모래밭에 둥글게 파인 웅덩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였다. 고인 물의 표면과 빗방울이 맞닿을 때 메아리가 퍼지듯 작은 원이 큰 원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면 온 주위가 평온해졌다. 수직 낙하하는 빗방울, 바람의 세기만큼 흔들리는 그네의 쇠사슬, 점점 면적을 넓혀가는 흙탕물 웅덩이. 멀리서 보면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고개를 숙여 가까이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파장을 일으키며 미세하게 변화하는 사물들이 보였다. 마치 세상과 비밀을 공유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관찰자인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착각마저 일 정도로.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쪼그려 앉은 탓에 다리가 저릴 때쯤에서야 자리를 털고 집으로 갔다. 그때부터였을까. 고독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접해본 적 없는 나이였지만 사람은 본래 외로운 존재라는 감각을 어렴풋이 느꼈던 거 같다.






혼자만의 시간이 편했던 꼬마는 여전히 이성보다 감성이 우세한 어른으로 자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감수성이 메마르고 상상력 또한 빈곤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어른이 되고부터 비 오는 날이 달갑지 않았다. 신경 써서 매만진 머리와 출근복이 비에 젖는 게 싫었고 두 손이 바쁘니까 우산이 짐스러웠다. 빗속을 걷기보다 유리창 너머로 비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럼에도 오늘 우중 산행은 성공적이다. 장막 같은 구름이 한라산을 막아섰지만 오히려 지끈거리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고민의 실마리가 보였다. 햇살의 보위를 받을 때와는 달리 음영이 짙게 드리워진 숲길은 고즈넉한 운치를 제공했다.


의도치 않게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다. 우연히 여덟 살의 나와 조우할 수 있었으니. 마음의 굳은살이 박인 지금이라면 별 일 아니라며 무심했을 일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물만 훔치던 어린 날.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너를 조용히 안아줄 테다.



모두의 마음에 들 수 없어.
싫은 건 싫다고 해도 괜찮아.
미움 조금 받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



거니는 동안 충분히 위로받았다.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더듬어본다. 우리 삶 곳곳에는 의외의 기쁨이 숨어있다.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살 뿐. 그중 한 가지를 발견한 거 같아서 뿌듯한 날이다. 앞으로 비가 오더라도 종종 오름 산행을 나서야겠다. 그럼 또 비를 좋아하던 울보를 만나 위로해 줄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