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퐁당퐁당 글쓰기
"날씨가 새꼬리 하네."
"엄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날씨가 어떻게 새의 꼬리라는 거야?"
내 고향 부산에서는 어감만으로 척하면 척, 통용되는 표현인데 아이는 도통 알아듣지 못한다. 제주에서 쭉 나고 자라서 익숙지 않은 방언일 거다. 엄마의 사투리보다 제주도민인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씨에 더 영향을 받아서일까. 어쩌다 간혹 일어나는 소통 오류가 답답하기보다는 예기치 않은 웃음을 유발한다.
아이한테 생소한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 생각에 잠긴다.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울 땐 국어사전 어플을 켜서 '새꼬리하다'를 입력해 본다. 표준어로는 '새치름하다'인데, '쌀쌀맞게 시침미를 떼는 태도가 있다', '쌀쌀한 기색을 꾸미다'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날씨가 새치름하다는 표현은 지금 시기를 이르기에 손색없을 것이다. 봄을 데려오는 훈풍에 자리를 내주기 싫다는 듯 버티고 누운 추위의 자태가 제법 새치름하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걸 샘내서 꽃샘추위라던가.
한풀 꺾인 추위가 뭉개고 있는 모양새가 어쩐지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나와 닮았다. 설 연휴 동안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푹 쉬었던 탓일까. 집으로 돌아와서도 달콤한 휴식의 여운을 오래 붙들고 싶었다. 진즉에 겨울잠이 달아났지만 눈 뜨지 않고 잠든 척하는 곰처럼.
아이는 겨울방학이 끝나서 섭섭한 눈치다. 남편도 잠시 쉬었던 공부를 재개해야 하므로 다가오는 3월이 마냥 달갑지만 않다. 나라고 다르겠는가. 육아와 일에 몰아두었던 무게 추를 다시 글쓰기로 옮기고 전념해 볼 참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우리들은 힘차게 튀어 오르기 전 한껏 압착된 용수철처럼 납작하고 게으르게 2월의 끝자락을 보냈다.
2월 27일, 새 학기 반 배정이 발표됐다. 친한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버린 아이는 "망했다"는 말을 입에 올리며 배시시 웃는다. 고운 말을 써야지, 잔소리를 하려다 의미와는 별개로 해맑게 웃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단짝을 꼽을 순 없었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을 두루두루 사귀었던 작년의 경험이 자신감이 된 걸까. 어쨌거나 진짜 망한 기분으로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3월 3일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날이다. 세시풍속으로 정월대보름, 천문학적으로 개기월식, 유통업계에서는 삼겹살 데이. 학부모인 나로서는 새 학기 첫날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기분 좋은 하루를 기원하며 호두, 피스타치오, 땅콩으로 부럼을 깼다. 견과류를 오도독오도독 씹으며 잠에 취한 정신을 흔들어 깨우고 부스럼 없이 반드러운 앞날을 빌어주었다.
부럼 깨기 의식이 영험했는지 아이가 하굣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담임 선생님이 좋은 분인 것 같다며 들뜬 목소리에서 기대와 벅차오름이 느껴진다.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내일 당장 반장선거라서 갑작스럽다는 녀석은 벌써부터 내세울 공약이 고민이라며 전화를 끊는다.
개기월식을 보러 나섰다.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적한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시야를 가로막는 빌딩과 휘황한 네온사인이 드문 곳을 어렵사리 찾아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 선 가로등 불빛이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강렬해서 아쉬웠지만 어찌 보면 안심된다. 이곳 한적한 올레길을 캄캄한 밤에 산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섭지 않을 테니까.
시력이 나빠서 달에 얼마큼 지구의 그림자가 드리웠는지 선연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작고 붉은 동그라미가 뎅그러니 떠있을 뿐. 휴대폰 렌즈를 최대로 확대해 봐도 SNS에서 보았던 사진만큼 달 표면이 구체적이지 않다. 아주 잠깐이지만 성능 좋은 카메라나 천체망원경으로 이 시각 달을 보고 있을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대신 달과 반대편 하늘에 수놓아진 별빛으로 위안 삼는다. 다이아몬드 가루를 흩뿌려 놓은 거처럼 반짝거려서 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한참이나 보고 또 바라보았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 보기 힘들 광경이니까.
아이와 나는 두 손 모으고 붉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옛 조상들이라면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을 떠놓고 빌었을 것이다.
"반장 선거에 당선되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이랑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만수무강하게 해 주세요."
"평생 맛있는 거 실컷 먹어도 배탈 안 나게 해 주세요."
아이다운 소원이다. 만수무강이라는 말은 어찌 알았을까. 내 소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행복이라는 단어 속에 각자의 꿈, 건강, 사랑이 빠짐없이 이루어지길 욕심부려 보았다. 덤으로 고난과 시련은 아주 짧게 스치길, 행운까지 바란다. 소원은 자유니까 분수에 넘치도록 빌어도 괜찮은 거겠지.
만약 듣다 못한 달님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총체적이라 다 이뤄줄 수 없다고 한다면 이렇게 소원을 수정해 볼까.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순간 같게만 해주세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