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와 마라탕(2)

퐁당퐁당 100편 글쓰기 56화

by 뵤뵤


-초등 5, 6학년 부모 90%가 무조건 챙길 것들

-초등 5, 6학년 때 영어가 아무도 몰래 망하는 이유

-초등 수학 로드맵, 이렇게 해야 입시에서 살아남는다



요즘 알고리즘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영상이다. 유튜브 앱 권한에서 마이크 기능을 꺼두었는데 우리 애 학년은 대체 어떻게 알게 된걸까. 무서운 세상이다. 시의적절하게 시선을 후킹(hooking)하는 제목에 자꾸만 뻔하게 낚이는 스스로가 못마땅하다. 분명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불안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수행이 부족한가 보다. 육아 서적과 영상은 그만 보고 아이를 보라던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말을 떠올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생애 주기에 따른 성공 가도가 정해지고 설령 갈래가 나뉘더라도 선택지가 좁았던 시절을 거쳐왔다. 일단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인생의 첫 번째 과업이었다. 대학만 잘 가면 다음 단계의 성공은 보너스처럼 따라붙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AI의 발전으로 신입 채용 규모가 감소하다 못해 소멸하는 와중에 대학이 취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거란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거야?

아이가 묻는다.

-이름 높은 대학이 종착지는 아니야. 그런데 공부는 필요해.

-그러니까 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니까.

-어떻게 아는 만큼 보이는데?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가면 저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 있지. 낮은 곳에서는 안 보이던 풍경이 보이잖아.

-그래서 왜? 그렇게 넓게, 많이 볼 수 있는 게 좋은 거야?

-...... 그냥 책 많이 읽으렴.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조카가 집에 놀러 온 날, 사촌 지간인 두 아이가 작은 방 한편에서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됐다.

"AI를 다룰 줄 모르면 인공지능에 지배당할지 몰라. 힘을 길러야 해."

"맞아, 우리가 어른이 되면 지금 있는 직업들이 거의 사라진대."

열 살, 열한 살짜리 아이들이라고 해서 대책 없이 해맑기만 한 건 아니다. 장밋빛 미래를 호언장담해 줄 수 없어서 미안. 모델이 없는 현재와 미래가 막연한 건 소노여남 불문인 시대라서 그래.






도서관 맞은편에 자리한 마라탕가게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어른과 동석한 아이들보다 또래 친구끼리 앉은 테이블이 더 많아 보인다. 학생들 사이에서 우리 동네 핫 플레이스임에 틀림없다. 바로 곁에서 입 안 가득 고이는 침을 꼴까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청경채, 숙주나물, 목이버섯, 분모자, 건두부, 푸주, 납작 당면을 차례로 옮겨 담는 손이 민첩하다. 제 얼굴 두 배만 한 스텐인리스 양푼에 마라탕 재료가 금세 수북이 쌓였다. 뷔페식으로 고르는 행위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해서 매력적인 걸까. 자기 주도적으로 거두는 만족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담으라는 잔소리 따위는 꿀꺽 삼켜야 한다. 엄마는 쏙 빼놓고 엄카만 들고 친구들과 이곳에 올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가 시킨 음식이 나왔다. 아이는 마라탕 1단계, 엄마는 마라샹궈 0.5단계. 첫 한 술부터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쓰다는 중국의 오미(五味)가 입안 가득 퍼진다. 도파민 터지는 맛이라고 한다지. 옆 테이블, 옆옆 테이블을 둘러보면 제각기 다른 얼굴이지만 비슷한 풍경이다. 일회용 앞치마를 두른 소녀와 소년들은 연신 손부채질로 매운 입김을 날리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한다. 그릇이 밑바닥을 드러낼 때쯤이면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다. 밥 친구인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녀나, 친구와 함께지만 말없이 면치기를 하는 소년이나 남 같지 않다.


소녀라기엔 앳된 눈앞의 아이가 자몽색 립글로스를 새 부리 같은 입술에 넘치게 바르고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마라탕은 혀끝이 얼얼해지는 매운맛 뒤에 찾아오는 얼큰함이 매력이다. 인생을 마라탕에 비유하며 마찬가지로 고통 뒤에 쾌락이 온다는 일장 연설을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 해야 할 건 그저 빈 잔을 가져다 제로사이다를 채워주는 일일 테지.



나는 네 가방을 벗기지 못하고
물을 채운 컵을 네게 주었다

<컵하고 발음해 봐요> 김복희



지난밤, 숙제를 열심히 해오지 않아도 매번 만점을 받는 친구와 비교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던 아이의 눈물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수학 문제 몇 개로 가려질 수 없는 아이의 무궁무진한 장점들을 나열하는 것만이 최선의 위로였다. 머지않아 공부로 줄을 세우는 대열에 별수 없이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노력해서 함께 극복해 보자는 말로 탐탁지 않게 마무리한 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나는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너도 드디어 만났구나.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돼서 속상한 인생의 고비를.


레테는 망각의 신이다. 망각해야 할 건 지나간 성적과 수학 레벨테스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염려일 것이다. 잊으려거나 잊지 않기 위해서 마라맛을 찾는지 모르겠다. 다섯 가지 맛이 통렬히 일깨우는 건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다는 감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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