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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뵤뵤리나 Nov 03. 2024

너는 우리 집 흑백요리사다.

꼬마 요리사와 함께하는 주말


엄마, 나 이거 요리해보고 싶어. 주말에 이거 해 먹자.”   

  

 이거가 뭔데? 설거지하느라 시선을 싱크대에 고정한 채 묻는다. 어라? 저걸 어디서 발굴했지?

꼭 이번엔 성공하리라 사놓고 책꽂이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다이어트 레시피 책이다. 마음에 드는 요리 페이지마다 곱게 접어놓은 귀퉁이로 먹고자 하는 네 열망이 눈에 보인다.

 아이는 꿈이 파티시에와 요리사일 정도로 요리를 좋아한다. 어린이집과 문화센터 키즈 쿠킹&베이킹 수업으로 숙련된 조기교육의 힘이랄까. NO 가스레인지 레시피라 불은 안 써도 되니 요리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넘긴다.


오늘의 메인 셰프는 너다. 내 역할은 그저 성실한 조교.


 이참에 장보기부터 주도권을 넘겼다. 장 볼 재료 리스트를 삐뚤빼뚤 써내려 간 포스트잇을 카트 손잡이에 붙여두고 부지런히 재료를 탐색한다. 알이 굵은 감자를 찾느라 채소 코너를 둘러보는 네 눈동자가 바삐 굴러간다. 작은 알감자밖에 없다고 투덜거리고, 필요한 양을 훨씬 초과한 묶음 상품을 두고 살까 말까 고민하는 꼬마 셰프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장을 다 보고 차에 올라타자 너무 집중을 해서인지 졸리단다. 어허, 정신 차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뽀득뽀득 손 씻고, 할머니 같다고 아빠의 놀림을 받는 잔 꽃무늬 앞치마를 걸치고 조리대 앞에 선 네 표정이 사뭇 비장하다. 오늘의 요리는 3가지. 감자와 게맛살이 메인 재료다. 감자칼은 위험하니 조교의 도움이 필요하다. 까놓은 감자를 셰프님에게 전달하면 날이 무딘 빵칼로 조각조각 작게 썰어둔다.


셰프님, 감자의 익힘 정도가 이븐(even)하게 익어야 하니 더 작게 썰어주세요. 교의 충언을 듣고 성실히 이행하는 꼬마 세프님. 집중할 때만 나오는 힘 꼭 주고 앙다문 입술 모양이 꼭 참새 부리 같다.      


3가지 요리를 위해 각기 다르게 썰어 놓은 감자

 


잘게 찢은 게맛살을 익힌 감자와 버무리는 차례, 그릇 밖을 탈출하는 재료가 식탁을 어지럽힌다.





“엄마는 진공청소기네.”


그릇 주변에 흩어진 감자와 게맛살 조각을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로록 입에 쏙쏙 집어넣는 나

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괜찮아, 3초 안 지났어.

에어프라이기, 전자레인지와 식탁을 바삐 오가느라 분주한 셰프님의 눈빛이 시종일관 진지하다.


“엄마가 한 번에 반찬 3가지 만들 때 얼마나 정신없는지 알겠지?”


생색내길 좋아하는 엄마는 이때다 싶어, 정신없이 바쁜 셰프에게 고맙다는 말을 기어이 받아내고 흡족해한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 꼬마 셰프는 요리하는 내내 눈을 반짝이고 생글생글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너무 웃고 있어서 입꼬리가 아프다며 볼을 잡고 꺄르르 넘어가는 모습에 나는 또 고슴도치 엄마가 된다.



 

너는 꿀물, 나는 맥주. 다이어트식이 안주가 돼버린 건에 대하여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레시피지만 플레이팅을 마치고 보니 딱 맥주 각이다. 장 볼 때 병맥주 하나 장바구니 안에 스윽 밀어 넣은 나 자신 칭찬해. ‘갈릭치즈감자구이’ 한 입에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쭉 들이키니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처럼 안대를 끼진 않아도 절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예상이 가는 뻔한 맛일지라도 고사리 손 셰프의 지휘 하에 완성된 요리는 마지막 셰프님의 말이 진정한 '킥'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잖아. 나도 그래.
엄마도 잘 알겠지. 나 같은 먹순이 딸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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