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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조각(3) 마지막 유산

by 뵤뵤


입관식이 진행됐다. 평온하게 누워 계신 아버님을 두 눈으로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고인의 양 옆을 둘러선 가족들은 거칠고 뻣뻣한 수의 위에 저마다 손을 얹고 오롯이 전해질 지 알 수 없는 속엣말을 아낌없이 토해냈다.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졌던 눈물과는 사뭇 다른 강도의 슬픔이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그동안 마지막일지 모른다며 치러왔던 그 어떤 일들보다 강렬하게, 끝이 도래했음이 와닿았다.


슬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휘청이다가, 휙 뒤로 넘어갈 뻔한 어머님을 부축하고 나서부턴 눈물이 뚝 그쳤다. 제발 쓰러지시면 안 돼요, 어머니. 쏟아낸 눈물이 파도처럼 휩쓸고 간 머릿속은 맑고 또렷했다. 남은 사람은 살라고, 부디 잘 살아남으라고 얼얼하게 정신을 차리게 해 주는 건가 싶었다.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비쩍 말라붙은 얼굴로 문상객들을 맞이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로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반가운 얼굴을 속속 드러냈다. 때로는 좋은 일보다 슬픈 일이 더 강한 결집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다들 바쁜 일상에 틈을 내어 기꺼이 와주었다. 건조했던 웃음이 친인척들의 안부와 아버님의 생전 에피소드를 주고받으며 해사하게 바뀌어 갔다.


장례식은 지나간 기억을 소환하고 기리는 자리였다. 저마다 마음에 새겨진 고인의 모습을 불러와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치 아버님이 살아계신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분이 살아온 궤적만큼이나 식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화기애애했으므로.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빈소를 찾은 사람들마다 착하신 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니, 며느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궁금해졌다. 무슨 신념으로 어떻게 살아내면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이렇듯 죽음을 애달파할 수 있는지, 그리워할 수 있는지.







가톨릭 교리에서는 '연옥'이라는 개념이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른다고 믿는 장소이다.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를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다.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옥 [purgatory, 煉獄]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를 좋아하셨던 아버님을 위해 위령 기도를 수차례 드렸다. 연옥에 있는 영혼을 천국으로 끌어올려 주기를 간청하는 기도라 한다. 아버님은 연옥에 머무를 새가 없을 것 같은데. 천국행 고속 티켓을 손에 쥔 양반이라는 믿음을 저마다 갖고 있었지만, 혹여나 자식들의 정성이 부족해서 천국에 당도하는 게 지체되진 않을까 노파심이 일었나 보다. 삼일 내내 피워둔 매캐한 향 연기에 목이 따갑도록 연도(위령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지상에 남은 이들이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며 참으로 열심히였다.


병마와 지난한 싸움을 하는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섬망으로 의식을 점차 내려놓으실 때도, 아버님의 연옥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 적 있다. 흩어진 기억의 퍼즐을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고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를, 내가 아는 아버님이라면 몹시도 괴로워하셨을 테니까. 연옥에서 겪을 고통을 지상에서 이미 가불 해서 겪은 거라면 좋겠다. 부디 하이패스로 지나치게 하옵소서. 더 이상의 고통 없이 천국에 당도하시길 바라옵니다. 결혼 전까지 무교였던 며느리는 이제껏 친숙하지 못한 신에게 면구스럽게도 간청드려 본다. 서투른 기도마저 진심이라면 들어주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안고.


발인을 하고 화장터로 향하기 전에 장례 미사를 치렀다. 아버님의 생애 중 의미 있던 굵직한 사건들이 5분여 남짓한 시간 동안 신부님의 목소리를 통해 낭독되었다. 자식들이 바쁘게 사느라 모르고 지냈던 그간의 기부와 봉사, 신앙 활동이 담긴 기록이었다. 성당 안을 울리는 아버님의 행적은 연관된 장면과 함께 불쑥 그리움을 끄집어냈다. 어려운 자를 돕고 싶다는 신념을 흔들림 없이 실천하며 사셨구나.


언젠가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 마 톤즈"의 초대권을 드린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으셨는지 이태석재단에 기부금을 정기 납부하기로 냉큼 신청해 버리셨단다. 새 아가 덕분에 좋은 일을 하게 돼서 기쁘다며 인자하게 웃으셨었는데. 기부를 위해 용돈의 일부를 살뜰히 모아놓으셨던 아버님의 유지는 영면하신 후에도 올곧게 행해졌다. 기부 의사를 밝히고 절차를 밟는 자식들의 얼굴에는 긍지가 피어올랐다.






당신 없이 나 어떻게 살아요.
사랑했어요... 사랑했어요...
당신이라서 행복했어요...
내가 갈 때까지 천국에서 기다려줘요.



입관식 때 모두가 오열하던 와중에 곁에서 생생히 들었다. 너무도 뜻밖이라 여태껏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잊기 힘들 것 같다. 시어머니의 입에서 이토록 절절한 사랑고백을 들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어머님은 분명 시절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아버님 덕에 50년이 내내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고단한 세월을 함께 감내하면서 뿌리내린 단단한 믿음과 사랑이 두 분 사이에 있었고, 그 사랑을 보고 자란 아들이 행운처럼 내 곁에 있다. 여보, 우리도 과연 저토록 변함없을 수 있을까.


근면 성실과 근검절약을 몸소 보여주셨던 아버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보다 깊은 울림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남 부럽지 않을 재력을 가진 금수저는 아닐지라도, 남 부끄럽지 않을 만큼 실천해온 정직과 사랑을 말이다. 때론 고루하고 답답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융통성이 없으셨지만, 그만큼 본인의 원칙을 한결같이 고수하셨던 분이기에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버님이 남기신 유산은 잡히지 않는 무형의 씨앗이다. 이내 우리 가족들의 가슴마다 콕 박혀 뿌리를 내릴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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