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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Dec 20. 2019

태권도야 잘 가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아이와 하원 하다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부모님께 카드 쓰기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유치원 일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들여다보지 않고 아이가 매일 어떻게 누구와 놀았는지가 더 궁금해 관심 갖지 않았다.

"엄마 크리스마스 카드 썼는데 뭐라고 썼는지 힌트 줄까?"

"그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쓸려고 했는데 줄이 없어서 그냥 감사해요로 썼어"

6살 난 꼬맹이가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니 그 말에 또 왈칵 눈물이 쏟아져서는,

"야~ 너 왜 엄마 감동시켜 엄마 눈물 나잖아"하며 눈을 훔쳤더니

아이가 하는 말.

"미안합니다 아줌마" 배꼽인사를 하며 너스레를 떤다.



어제 낮에 하원 하는데 아이가 한 달 다닌 태권도를 가기 싫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도 두어 번 거부를 하길래 처음이라 적응하고 있는 중이겠거니 싶어 그렇게 하라고 하고 같이 놀았다.

이미 지난주에 두 번째 학원비를 입금했고, 입금 전에 아이에게 여러 차례 물어봤었다.

실은, 아이가 더 활동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심 꾸준히 태권도를 다니면 어떨까 바라는 마음이 있어 정면으로 아이에게 태권도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뚜렷이 물어보지 않았다.

안 다니고 싶다는 말이 나올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대신 한 달만큼 다녔으니 그 기념으로 포테이토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지금 다닌 만큼을 더 다녀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러지 뭐"라고 말했고, 나는 그 간 하원 후 체육관에 가자고 손을 잡을 때 아이가 엉덩이를 뒤로 뺀다는 사실을 무시해버렸다.

결과적으로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으나 아이가 학원 거부를 하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럼 그때 몇 번이고 물어봤을 때 왜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가 안된다고 할까 봐. 엉엉엉"

그 말을 듣고 너무 속이 상해서 집에 오는 내내 아이와 손을 잡지 않고 걸어왔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날보다 즐겁지 않은 날이 많다는 걸 알았는데 무시한 내 이기심 때문에 화가 나고,

나의 언행에 문제가 있어 아이가 안된다고 할까 봐를 이야기한 걸까 괴로웠다.

재미없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래도 한 달 원비를 냈으니 다녀야 한다고 설득하는 동안 6세 꼬마에게 그런 얘기는 무리라는 걸 알았다.

재미없는 걸 하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운지 내가 수백 번 겪어봐 놓고는 아이에게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었다.

재미없는 걸 하게 될 날이 아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데 난 지금부터 재미없는 걸 참고해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설득하는 걸까.



아이의 식판을 닦으면서 분을 삭이고,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감정 정리를 했다.

첫 번째는, 태권도를 다니면 체력이 튼튼해지고 활동적이 된다는 나의 보편적인 생각에 화가 났다.

아이의 상태보다는 그럴 것이다는 가설에 아이를 맡긴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두 번째는, 태권도에서 보내고 오는 시간이 사라지면 내 자유시간도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화가 났다.

한 달 동안 4시 하원 하며 여유롭게 보낸 시간이 이제 끝날 예정이라 방학 때도 나는 딸과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이기심이다. 아이보다는 나의 편안을 위한 이기심.

세 번째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속인 것에 대해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부분이 가장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내가 무엇 때문에 가장 화가 나고 속이 상했는지를 들여다보니 이제 아이와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설거지를 멈추고, 아이를 불렀다.



"별아 이리 와 봐. 엄마는 네가 태권도를 다니던 안 다니던 중요하지 않아. 네가 즐거운 게 엄마도 즐거워.

엄마가 화가 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별이의 마음 때문이야.

싫으며 싫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는데 별이는 별이 마음에 거짓말을 한 거야.

엄마는 그게 가장 화가 나. 앞으로는 절대 별이 자신한테 거짓말하지 마. 알겠지? 만약 그러면 엄마가 그때는 아주 아주 화가 날 것 같아."

아이가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아이는 태권도를 다니며 학원에서 배워오는 것들을 함께 익히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고 엄마가 좋아하니까 자신의 감정을 양보했다.

힘들어도 한 달이나 다닌 것에 칭찬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무조건 시도하지 않고 하지 않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며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내 감정보다 아이의 감정에 더 기울여줄껄하는 미안함에 아이를 앉혀놓고 말하는 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쿨한 B형 여자들이라 조금 전 상황에 대해서는 금세 잊는다. (잊었다고 믿는다)

분위기 전환 좀 할까 싶어 아이에게 묻는다.

"별아 우리 기분 전환하러 포테이토 먹으러 갈까?" 했더니, 아이가 한마디 한다.

"웬일로 사준대?"

"태권도 그만두는 기념으로 먹으러 가자고"

"앗싸!"

설거지는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은 포테이토가 더 중허다.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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