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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Dec 25. 2019

올해도 산타는 창문을 타고

어젯밤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했다.

올해 초부터 갖고 싶어 했던 몰펀이 들어있는 상자였다.

우리가 주는 선물이 아닌 산타 할아버지에게 바라던 선물이었다.

가격을 모르고 있다가 놀라고, 특별한 기능이 없는 장난감을 왜 갖고 싶지라는 생각에 나의 고정관념이 참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유치원에서 예술제를 마치고 반 친구 아빠가 잠깐 동안 산타로 분장해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는 왜 산타 할아버지가 안경을 썼냐고 물어봤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한국어를 잘하는지에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올해는 유치원에서 방학식을 하며 외국인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줬는데 진짜 산타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뜨끔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반 친구 중 몇 명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말해주었다.

"할아버지가 전 세계를 돌면서 얼마나 바쁘시겠어. 그래서 잠깐 깜빡하셨나 보네"

그래도 자신의 이름은 기억해주었다며 가벼운 발걸음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작년부터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았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해오면 아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종종 언급했다.

"엄마, 나 정리했으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시겠지?"

"엄마! 나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줄 것 같아"하며 6살의 자신을 평가하기도 했다.

아이가 종종 떼를 쓰다가 울면 산타 할아버지 핑계를 대고 행동을 멈추게 했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잠잠해지면 산타 할아버지가 이런 상황을 다 알고 계시니, 창문에 대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얘기해야 선물을 준다고 했다.

아이는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을 손등과 상의 끝자락으로 닦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산타 할아버지! 저 이제 안 그럴게요 엉엉엉"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 아이와 잠들기 전에는 머리맡 창문을 잠그지 않는 액션을 취했다.

"할아버지가 원래 굴뚝으로 오는데, 아파트는 창문 열고 오시거든. 그래서 창문을 절대 잠그면 안 돼. 그러면 잘못 찾아온 줄 알고 그냥 가버리셔"

아이는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을 겨드랑이 아래로 끝까지 올린 아이는 내일을 기다리며 설레는 밤을 만나러 갔다.




며칠 전 유튜브로 크리스마스 동요를 듣고 있는데 휴대전화의 화면을 본 아이가 내게 질문을 한다.

"엄마, 크리스마스 노래는 왜 꼭 산타가 처음으로 나오는 거야?"

"크리스마스니까 그렇지"

"크리스마스에는 쿠키가 먼저 생각날 수도 있고, 루돌프가 생각날 수도 있고, 선물이 생각날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 다른데 왜 산타가 먼저 나오냐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라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게, 네 말대로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사야 하고, 선물을 줘야 하고, 흰 눈이 와야 한다고 믿는 걸까.




가능하면 나는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오래도록 믿길 바란다.

나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산타를 믿었는데 선물을 언제까지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정말 받았었는지도 의문이다.

상상 속에서 만난 산타 할아버지는 내게 선물만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악당을 물리치거나 정의를 위해 대신 싸워주기도 하는 히어로였다.

아이는 며칠 전에 내게 말했다.

"엄마, 우리 산타할아버지 만나러 가자"

"그래 좋지. 그런데 핀란드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엄청 엄청 오래 타야 해"

".... 그럼 싫어. 그냥 안 갈래"

나는 아이가 10살이 되어도 핀란드의 산타 마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받고 싶은 선물을 몇 달 동안 몹시도 고대하길 바란다.

엄마 아빠는 왜 선물을 못 받냐는 질문이 스스로 이해가 되고, 상상보다는 현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어른으로 빨리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사실은, 더 이상 내가 산타 역할을 대신하며 선물을 포장할 날이 얼마 안 남을 것 같은 기분에 섭섭해서다.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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