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이 Oct 17. 2021

젊은이들과의 대학 생활

비어퐁부터 간밤에 동네 수영장 침입까지

문화 차이 때문에 그런 안타까운 경험을 하다니... 하지만 이 또한 이 후 사람들에게 마음을 좀더 여는 계기가 되었겠지? 나에게도 30년 동안 한국에서 다져온 좁디좁은 나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건 문화 차이보다는 나이차로 인한 것이었어.


장미씨, 20대때 30대인 사람들을 보면 느낌이 어땠어? 나는 30대는 더이상 인생에 대한 고민도 없고 직장 생활에도 익숙해져서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진정한 "어른" 일거라고 생각했었어. 나랑 같이 살게 된 나이 차이 많이나는 나의 어린 하우스메이트들이 내가 했었던 생각을 똑같이 한다면 날 이상한 30대로 봤을거야 분명. 아직 갈 길을 헤메이고 있는 자신들과 별달라 보이지 않아서. 뒤늦게 뛰어든 유학 생활에 예상했었던대로 내 주변은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로 채워졌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깝게 지내게 된 건 당연히 하우스메이트들인데 한명은 나보다 8살 어린 나름 느즈막히 새로운 학사를 공부하러 온 이란출신 아이고 다른 한명은 10살 차이가 나는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아이야.


나름 한국에서 동안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고 특히 여기서는 거의 다들 내 나이를 짐작도 못하는 듯 해서 은근슬쩍 그들과 섞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어. 한국과 다르게 서로 나이를 잘 물어보지 않으니 그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체력! 이 어린 친구들은 밤새 비어퐁을 즐기고 보드게임을 하면서도 다음 날 수업은 문제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엄청난 체력을 보유하고 있어. 다음 날 반나절은 비몽사몽에 아무것도 못하는 저질 체력을 지닌 나와는 다르게.


물론 나도 이런 시기가 있었지. 내가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내가 내 어린 하우스메이트들의 나이였을 그 당시, 나의 안테나는 항상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있지 않을까 감지하는 것에 열심이었고 무엇인가 찾아내면 그 것은 내 마음을 마구 들썩이게 만들었었어. 그리고 내 하우스메이트들과 다른 어린 친구들도 그때의 나와 같았어.


매우 외진 곳에 위치한 캠퍼스 덕분에 그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건 학교에서 주최하는 파티들이 거의 유일하지만 나름 자주 행사가 열리더라고. 1년에 한번 4월에는 새로운 학생들을 위한 Freshment party가, 매 학기 시작과 끝에는 각각 Semester opening party, Semester ending party가 열려. 그리고 그 외에도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게임하고 노는 하우스 파티도 자주 열리지. 몇몇은 기차타고 거의 왕복 6시간 거리에 있는 쾰른으로 파티 원정을 가기도 해.


저질 체력임에도 불구하고 사교(?) 활동을 위해 스리슬쩍 몇몇 파티에 참여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비어퐁을 해보게 됐어. 미국 영화에서만 보던 비어퐁. 서로의 맥주컵에 동글동글 작은 탁구공을 완벽하게 거리를 가늠해서 골인 시키는 단순하면서도 맥주를 많이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는 신박한 게임. 나름 피구, 발야구, 배드민턴 등 공으로 하는 게임에 자신 있었던 나는 자신만만 했지만 나보다 일찍이 실력을 갈고 닦아온 나의 어린 친구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어. 장미씨의 비어퐁 실력은 어땠는지 새삼 궁금해지는군.


이 어린 친구들은 또한 용감 무쌍 했어. 학교 주최의 가면 무도회 파티가 있었던 어느 날. 흥이 한 껏 오른 아이들은 그 늦은 시간에 수영이 하고 싶다며 동네에 하나 있는 수영장에 담을 넘어 들어가는 작전을 세우고 실행했어. 작전부터 실행까지 몇분 걸리지 않은건 안비밀. 담을 넘고 들어가 다들 속옷만 입고 수영장에 뛰어들었어. 물론 서로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치면서. 지금쯤 장미씨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 소심한 림이가 이런 짓을 했다고?' 맞는 말이야. 내 모험의 일부가 된 이 일들은 다 내가 독일에 오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해보지 않았을 것들이야.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가 없어도 파란불이 켜질때까지 꿈쩍 않는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이 어린 친구들의 에너지에 휩쓸린 걸까, 한국이 아닌 타지라서 내가 지켜오던 룰이 느슨해졌던 걸까. 그나저나 분명 CCTV가 있었을텐데 아무도 잡혀가지 않은거보니 동네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 딱히 따로 관리하지 않나봐. 아니면 또다른 행운이었을지도. 장미씨에게도 이런 행운들이 있었어?

매거진의 이전글 From Russia with lov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