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씨가 장미빛이 아닌 핏빛으로 가득한 시작을 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걸. 독일어라고는 알파벳 읽는 것만 하고 온 나와는 다른 시작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공부하게 된 이곳 Kamp-Lintfort는 아주 작은 빌리지야. 독일 사람들도 잘 모르고 아는 사람도 교통방송에서 이름만 들어본 정도가 다일거야. 그래서 나름 외국인 친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Nordrhein-Westfalen 서독지역에 속하지만 처음부터 영어가 통할거라는 기대감은 거의 없었어. 학교 안에서는 거의 모든게 영어로 가능했지만 한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면 모든게 독일어였어. 마치 한 장소에 다른 두 세상이 있어서 텔레포트를 통해 옮겨 다니며 사는 느낌 이었지. 학교안에서는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다가 학교 근처 카페에서는 영어로 커피 한 잔 시키는 것도 불가능해서 얼마나 신기하고 또 답답했는지 몰라.
하지만 가장 날 걱정스럽게 했던건 독일 케바케의 진수를 보여주는 관공서 업무였어.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내가 필요한 것을 독일어로 찾아 큼직한 노랑이 포스트잇에 충분한 굵기의 사인펜으로 써서 들이미는거였어. 거주지를 등록하는 건 "Anmeldung(등록)"이라는 마법의 단어로 쉽게 해결했어.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벌어졌지. 새로 만든 은행 계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체국에 가서 “Postident”라는 신원 인증을 해야했는데 우리나라 여권은 그게 안되서 관공서에 그걸 대신 인증하는 편지를 따로 부탁해야했어. 근데 이건 매우 드문 경우라 한단어로 설명이 불가능 했지. 다른 선택지가 없던 나는 일단가서 영어로 물었어.
"영어로 질문을 해도 될까요?"
나도 장미씨처럼 매우 천천히 또박또박 질문했어. 나이 드신 분이라 혹시 잘 못들으실까봐. 근데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과 분위기상 영어 못한다는 듯한 대답 이었어 (부정적인 어투와 유일하게 들린 English라는 단어를 조합한 결과 내린 결론). 하지만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집세는 커녕 쫄쫄 굶게 될 상황이라 매우 슬픈 얼굴을 하고 그 앞에 마냥 서있었어. 1분이 10분 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지. 그 때 첫 번째 행운이 내게 찾아왔어. 한 젊은 직원 분이 나타나 매우 기본적인지만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줬어. 그 순간 생각했어 종교에서 구원 받는다라는게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고.
한 고비를 넘기고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초기 정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임무, 학생 비자 신청에 돌입했어. 나름 파워가 있는 대한민국 여권의 힘 덕분에 일단 3개월 동안 머무는 것이 가능한 관광 비자로 들어와서 필요한 서류를 착착이라기 보다는 엄청나게 예민한 상태에서 치밀하게 준비했어. 뭔가 부족한 게 있을 때 독일어로 물어보면 알아들을 수 없으니 최대한 문제 없게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 다시 금방 눈물이 떨어질 듯한 슬픈 얼굴로 멀뚱히 서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근데 놀랍게도 두번째 행운이 찾아왔어. 외국인청에서는 성의 이니셜에 따라 담당을 결정하는데 내 담당이 미스터 마쯔(Marz)로 결정된거야. 미스터 마쯔로 말할 것 같으면 매우 젊은 외국인청 직원으로 유창한 영어가 가능하고 매우 친절해서 학교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야. 소심한 성격에 불면증이 생길 정도로 걱정했었는데 덕분에 아주 쉽게 비자 신청을 할 수 있었지. 이 때 진짜 종교를 하나 믿어야하나 진심으로 고민했었는데 종교세 때문에 포기했어. 이 작은 도시에서 두번이나 이런 행운을 맞이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어. 초심자의 행운 뭐 그런 거 였던 걸까?
나도 여행과는 다르게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게 사람을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하게 만드는지 제대로 느낀 것 같아. 하지만 학교 바로 옆 기숙사에 살면서 영어가 가능한 학교 내부에서 거의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다보니 나는 또 학교라는 상자에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어. 한국에서 독일로 환경이 바뀌었다고 내가 30년 넘게 살아온 패턴이 단번에 바뀌지 않는거지. 나는 영어 하나만으로도 버겁다는 미명아래 독일어를 홀대했어. 충격은 같았는데 결과는 이렇게 다른게 나에게만 흥미로운가? 그래서 그렇게 꿈꾸던 유학 생활은 어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