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을 사랑하는 이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

by 로움
필멸하기에 특별하고, 유한하기에 고귀한 존재.
우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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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는다. 이 명료한 사실 앞에서 인간의 모든 것이 시작된다.

우리가 무엇을 창조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기억하려 애쓰는 모든 행위는 결국 이 필멸성에서 비롯된다.


동굴 벽화를 그렸던 원시인을 생각해 본다.

그는 왜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손바닥에 색을 묻혀 벽에 찍어냈을까.

사냥한 들소를, 달리는 말을, 자신의 손을 그렸을까.

그것은 분명 "내가 여기 살았다"라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사라질 자신의 존재를 돌 위에 각인해 두려 했던 것이다.

수만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 손바닥 자국을 보며 먹먹해지는 것은

그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예술은 필멸에 대한 저항으로 탄생했다.

캔버스에 세상을 그리던 화가도,

오선지 위에 영혼을 새기던 작곡가도,

모두 같은 열망을 품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 있었다"고, "이것이 아름다웠다"고,

"이 순간을 기억해달라"는 기도.

예술은 필멸하는 존재가 영원을 향해 던지는 간절한 손짓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영원을 담을 무언가를 만들려 했다.

이 역설 속에 인간의 비극과 위대함이 공존한다.


글을 쓰는 것 또한 소멸하는 것들을 붙잡는 행위이다.

흘러가버릴 순간을 문장으로 붙잡고, 사라질 감정을 단어에 봉인한다.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모든 창작은 덧없음에 맞서는 인간의 고집스러운 저항이자,

동시에 덧없음을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항복이다.


인간이 영원히 산다면 어떨까.

무한한 나날 속에, 오늘은 의미를 잃는다.

기쁨이 눈부신 것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슬픔이 사무치는 것은, 그마저도 스러져 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만남의 설렘은 퇴색되고,

이별의 아픔도 사라진다.

분노도 애틋함도, 그 어떤 감정도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은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

끝이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은 아름답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기억하고, 창조한다.

덧없음을 알아서 더욱 치열하게 살아간다.

저녁노을을 보며 가슴이 시린 것도,

아이의 웃음소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유한함은 약속이다.

제한된 시간이 우리에게 긴장을 주고,

그 긴장이 삶을 선명하게 만든다.

인간은 필멸하기에 매 순간이 소중하고,

끝이 있기에 지금이 찬란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껴안으라.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평온함도, 그 모든 것이

당신이 뜨겁게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


필멸하기에 특별하고, 유한하기에 고귀한 존재.

우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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