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마주 보지 않는다

by 로움
마주 봄이 확인이라면, 나란히 섬은 신뢰다.
마주 봄이 사랑의 시작이라면, 나란히 섬은 사랑의 지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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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모임에 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는다.

마주 보는 자리도 비어 있고, 떨어져 앉을 수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택한다.

일상화된 사랑은 습관이 되는 것 같다.


나란히 앉으면 ‘우리’가 된다.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함께 귀를 기울인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머문다.

사랑은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을 맞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공감은 상대를 이해하려 애쓸 때보다

시점을 나눌 때 더 쉽게 발생한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단어다.



마주 보고 앉으면 ‘너’와 ‘나’가 된다.

너의 표정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고,

너의 말속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을 재어본다.

너에게서 나를 확인하는 일.

사랑이 거울이 되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반영 속에 갇힌다.

시야는 좁아지고, 세계는 너와 나로 축소된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상대의 얼굴을 점점 더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럴수록 마음은 자주 다친다.

사랑은 확인할수록 불안해지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마다 아프게 배웠다.



나란히 있으면 그런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아도,

같은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해지기 때문이다.


나란히 있으면 손을 내미는 일이 자연스럽다.

고개를 돌릴 필요도, 몸을 구부릴 필요도 없다.

그저 팔을 뻗으면 그의 어깨가 거기 있다.

언제라도 손을 뻗어 고단한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다.

소리 내지 않는 위로. 체온으로 건네는 격려.

나란히 있을 때만 가능한 돌봄의 방식이 있다.

옆구리를 스치는 온기, 팔꿈치가 닿는 감촉,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것들.


나란히 서면 그의 삶이 가는 방향이 보인다.

그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지.

나는 그 곁에서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걷는다.

그의 짐을 조금 덜어 내 어깨에 얹고, 내 짐도 조금 그에게 기댄다.

혼자서는 비틀거릴 무게를, 나란히 서면 견딜 만 해진다.

삶은 원래 무거운 것이지만, 나란히 지고 가면 조금은 가벼워진다.


하여, 사랑은 나란히 서는 것이다.

같은 지평을 바라보며,

같은 별을 세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

마주 봄이 확인이라면, 나란히 섬은 신뢰다.

마주 봄이 사랑의 시작이라면, 나란히 섬은 사랑의 지속이다.


오늘도 나는 그의 옆자리를 택한다.

서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랑은 그렇게,

나란히 서서 삶을 건너는 태도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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