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불러보는 일은
대상을 내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주는 일, 생명을 불어넣는 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곧 내게 주어진 생명이다.
흩어지는 순간들 속에서
더 이상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구르며 살지 않기 위해
시간에 이름을 붙여보기로 했다.
순간을 명명한다면
그 시간은 그저 흘려보낸 조각이 아니라
나를 머물게 한 하나의 의미로 남을 것이므로.
일단 생각나는 대로
아침 러닝 30분은 ‘건강지킴이’,
책을 읽는 한 시간은 ‘마음지킴이’,
식탁을 차리는 시간은 ‘돌봄의 시간’.
잠깐의 멍한 순간은 ‘숨 고르기’,
밤 산책은 ‘정리하기’.....라고 불러본다.
순간들을 어떻게든 명명해 놓고 보니,
왠지 시간이 마냥 공허하게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
명명된 각각의 시간들에 나의 감정이 머물고,
속절없이 흩어져 버리던 순간들이 온전한 한 장면을 이룬다.
명명된 시간은 생명력을 얻는다.
덧없이 사라지지 않고 흔적처럼 의미를 남긴다.
그렇게 명명된 시간이 층층으로 쌓인 하루는
엄연한 삶의 궤적이 된다.
언젠가 이 모든 이름들이 모여
내 생의 제목이 되어 줄 것이다.
시간을 이름 지어 부르니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내게로 다가와 삶에 의미를 입힌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