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허락된 사랑

모든 것을 알지 않아도 되는 관계

by 로움


사랑에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세상 끝에 이르러

오직 한 단어만 남길 수 있게 된다면,

그 단어는 아마도 <사랑> 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곧 사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인간은 사랑에서 와서,

사랑 속에 살다가,

사랑을 통과해 사라진다.

그래서 사랑은,

전인류의 숫자만큼이나

수많은 정의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사랑을 하나의 방식으로 정의하려 든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믿음.


정말 그래야만 할까.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본인도 잘 모르는 내면의 지하실까지

환히 밝혀야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제 아침,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이 낯설었다.

나는 나 자신조차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어떤 아침에는 내가 왜 이토록 우울한지 설명할 수 없고,

어떤 저녁에는 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다.


내 안에도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아니 사랑하고 싶지 않은 구석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나의 주인인 동시에 때로는 낯선 타인 같기도 하다.

이런 존재가 타인의 내부까지 완전히 들여다보겠다는 건,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요구다.



사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언제나 상대의 '일부'만을 본다.

말하는 방식, 눈빛, 세상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

우리는 그 일부에 반응하여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애초에 부분적인 인식 위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작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과 마주한다.

그가 화를 낼 때의 낯선 표정,

예상하지 못한 편견,

납득하기 어려운 집착.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를 사랑한다면서

왜 이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면과

감추고 싶은 면이 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상대가 나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그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닫힌 문을 억지로 열지 않고,

그가 열어 둔 방에만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것.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끄집어내려 하지 않는 것.

닫아놓은 방 앞에서는 기다릴 줄 아는 것.



사랑에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숨결이 부담스럽고,

너무 멀면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 서로가 편안하고,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거리.

모든 것을 알아야만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오만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나도, 당신도.

각자에게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방이 있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영역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기꺼이 내어 준 영역을 존중하고

닿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는 용기가 아닐까.

그 적절한 거리에서,

우리의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자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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