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늘

내가 만질 수 있는 시간

by 로움


어제는 냉장고 안에 있는 김치찌개 같은 거다.

분명히 어제 끓였는데 오늘 먹으면 맛이 다르다.

국물이 좀 졸아들었고, 김치가 더 익었고, 두부는 좀 퍼졌다.

그게 어제다. 이미 변해버렸다.


내일은 아직 장을 보러 가지 않은 상태다.

뭘 살지 목록은 적어뒀는데, 막상 마트에 가면 다른 걸 사게 되기도 하니까.




오늘이 좋은 이유는,

오늘은 내가 진짜로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의 온도도 오늘 거고,

방금 건조기에서 꺼낸 수건에 얼굴을 댔을 때의 보송함도 오늘 거고,

봄바람이 뺨을 건드리고 지나갔을 때, 나도 모르게 눈을 감은 것도 오늘의 일이다.


이런 것들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엄청 구체적이다.

구체적인 게 진짜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더니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사뭇 달랐다.

더 이상 겨울 냄새가 아니었다.

여전히 차갑긴 한데, 뭔가 물기가 섞인 것 같은.

'이제 봄이 오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산책길에서 빨간 조끼를 입은 하얀 말티즈를 만났다.

강아지의 옷 입은 태가 웃겨서 눈길이 갔다.

강아지도 나를 쳐다봤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이게 오늘 일어난 일이다.

어제는 이 강아지를 못 봤고, 내일도 못 볼 수 있다.

오늘만이 서로를 바라본 순간이다.


사람들은 "어제 이래서, 오늘 이런 거야"라고들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어제 일찍 잤는데도 오늘 피곤할 때가 있고,

어제 기분 안 좋았는데 오늘 갑자기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인과관계가 늘 명확한 건 아니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일인 것 같다.

어제의 나는 이미 지나간 타인이고, 내일의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낯선 사람이다.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몸, 이 마음만이 내가 만날 수 있는 나다.

오늘의 나에게 "멋지네, 잘하고 있어" 하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자기 사랑의 시작이다.


어쩌면 오늘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는 건, 오늘이 너무 평범해 보여서인 것 같다.

특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선명해서.

어제와 내일은 기억과 기대라는 안갯속에 있어 왠지 더 크게 보이는데,

오늘은 있는 그대로 눈앞에 있으니까.

우리는 종종 손에 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자려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오늘이 지나간다. 오늘이 어제가 된다.

그리고 내일이 오면 그 역시 또 오늘이 된다.

결국 우리는 평생 오늘만 산다.


어제도, 내일도, 결국 오늘이었다.

그래서 오늘이 좋다.

오늘밖에 없으니까.

오늘이 전부니까.


잘 자,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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