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별할 때

by 로움

너와 나 사이의 첫 균열은 말소리가 아니라 옆얼굴에서 시작되었다.

어제저녁, 모니터 불빛에 얼굴을 묻은 채 건성으로 대답하던 너의 옆모습.

낯선 각도가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너를 놓아야 할 때가 왔다고.


사랑에 빠질 때는 이별을 예감하지 못한다.

너와 나 사이에 세상의 관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균열은 시작된다.

네가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접점이 조금씩 멀어진다.

마침내, 그 접점이 완전히 분리되었을 때, 우리는 이별이 찾아왔음을 감지하게 된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임을 직감한다.

이제는 너를 '나의 아이'가 아닌, 온전히 독립된 존재인 '너'로만 바라보아야 할 때인 것이다.





어제저녁, 너와 나눈 대화는 그 예감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너는 내가 말하는 삶의 방식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지. 너의 생각과 느낌대로, 너의 방식으로 살아 보겠다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네가 지겠다고. 엄마를 원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네 방식대로 살아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시 방법을 찾겠다고.


나는 당황했다.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그래, 이건 너의 삶이지.




내가 두려워해왔던 건 정말 너에게 닥쳐올 고난과 역경과 쓰디쓴 실패였던 것일까.

어쩌면, 내가 진짜로 두려웠던 건, 너의 고난과 역경과 실패와 좌절을 바라보아야 하는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다 너를 위한 충고이고 조언이라는 말은 거짓말.

어쩌면, 내 마음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네가 세상의 기준과 조건을 충족하는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바람을 설교처럼 거듭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경계가 생겼다.

나의 아이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정하고, 경계를 그었다.


아이의 경계를 인정하고,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경계선 너머의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불안하고 두려운 일일 테지만,

지금은 그 불안과 두려움이 부모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다만, 너에게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굳건히 서 있기로 한다.

어젯밤 모니터 불빛 아래 보였던 너의 옆얼굴처럼,

나도 네 시야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며

네가 너의 삶을 너로서 사는 것을 지켜보며 응원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의 삶을 부단히 살아가야겠다.

삶의 태도와 자세에 대한 모든 요구와 바람은,

이제부터 네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도록.




오직 스스로를 온전히 통과해 낸 사유와 태도만이 끝내 삶을 이룬다는 것을,

나는 이 아픈 이별을 통해 조금씩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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