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안경을 벗었고, 너는 색안경을 썼다

by 서담


22살. 나는 무식할 정도로 크고 까만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두껍디두꺼운 안경알, 그것을 단단히 지탱해주는 뿔테. 나는 그 안경을 매일같이 썼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는 내 남자친구의 친한 지인이었다. 중국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형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너는, 우리 커플과 너희 커플이 함께 만나 맥주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나를 궁금해한 너의 제안이 반가웠고, 솔직히 너와의 만남이 기대되기도 했다.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뿔테안경이 거슬렸다. 거울 앞에 서서 요리조리 얼굴을 비춰보았다. 아무리 봐도 샌님 같았다. 첫인상을 망칠 것 같아 결국 안경을 벗었다. 1회용 렌즈를 끼고, 파스텔 핑크 티셔츠를 입고, 남자친구와 함께 맥주집으로 향했다.


너에 대해 아는 건 단 하나, 나보다 네댓 살 많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고 배웠다.

“오빠~ 안녕하세요!”

맥주집 문을 열며 나는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너는 고개만 까딱했다. 직장 상사도 아닌데, 무슨 이런 반응인가 싶었다. 이내 너의 시선은 내 남자친구에게로 향했다.

“형~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덩그러니 버려진 나의 미소. 나는 메뉴판을 펼쳐 무안함을 감췄다.


한참 뒤, 너는 처음 본 듯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멋쩍은 얼굴로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와~ 이 형, 살아있네! 형 진짜 능력 있다.”

나는 그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무슨 뜻이지? 나는 물었다.

“능력 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너는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한국식 칭찬이에요. 서온 씨가 예쁘다는 뜻이죠.”

나는 그날, 안경을 벗은 내 얼굴이 누군가에게 예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마웠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했다.


‘예쁜 여자를 사귀는 남자는 능력자’라는 논리라면, 그 반대는 뭘까. 나는 물었다.

“예쁜 나를 가진 남자친구는 능력 있는 거면, 저는 능력 없어서 나이 많은 남자를 사귀는 건가요?”

너는 당황했다.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감히’, ‘과하다’, ‘예민하다’는 말들이 네 눈빛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네 옆엔 내 남자친구가 있었고, 너는 그를 의식했다. 그리고는 침묵했다.

나는 안경을 벗었는데, 너는 색안경을 쓴 것 같았다.


나는 네가 말해주길 바랐다. 무엇이 불편했는지, 무엇이 언짢았는지. 그러나 너는 생각 대신 침묵했고, 표정으로 나를 공격했다. 너는 나를 몰랐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은 채로 ‘예쁨’ 하나로 요약해버렸다. 그것이 너의 첫 번째 무례였다.

그리고 너는 내 남자친구도 몰랐다. 우리 관계를 위해 그가 들인 노력, 헌신, 시간의 깊이를 너는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그를 ‘어리고 예쁜 여자 좋아하는 남자’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이 너의 두 번째 무례였다.


나는 그날 이후, 자주 안경을 벗게 되었다. 네 눈 속의 ‘예쁜 나’가 어쩐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이후에도 수많은 ‘너’를 만났다. 존심은 지키되, 존중은 모르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향해 지금도 무식하게 덤빈다. 너희가 휘두른 안경알 유리 파편에 찔리면서도, 그게 진짜 나를 향한 시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네가 쓴, 너의 안경일 뿐이라고.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안경을 쓴다.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나를 벗어나기 위해.
안경은 여전히 내 얼굴 위에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너의 색안경과 나의 뿔테는, 전혀 다른 쓰임을 가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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