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자, 어정쩡한 자리에 놓인 '이슬톡톡'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술도, 술자리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술 한 병쯤은 집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마셔본 적은 드물지만, 이상하게도 술병 하나쯤은 내 20대를 증명해 주는 증표 같았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대학생활을 택했다. 정체성의 첫 번째 관문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비슷한 나잇대의 한국 친구들과 어우러지기만 하면,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한국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신입생 입학설명회'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 돌아보면 안일한 계산이었다. 정체성은 그렇게 쉽게 부여되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지옥 같은 입시제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자유', 한국은 '술과 캠퍼스 낭만'이라는 단어로 아이들을 달랜다. 내게 한국의 20대는 곧 술과 연결되는 이미지였다. 한강에서, 동아리 방에서, 힙한 술집에서. 길을 걷다가 술집에서 웃고 떠드는 또래들을 부러운 눈으로 오래 지켜본 적도 있다. 술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성'이 부러웠다.
나는 공식 하나를 세웠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술을 마시면 된다. 그렇게 친구가 생기고, 정체성이 생기고, 마침내 나는 한국인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술을 마셔야 했다.
첫 신입생 OT. 나는 마음을 단단히 붙들었다. 학교의 역사와 전공 설명이 끝나자, 선배들이 박스째 소주와 맥주를 들고 왔다. 처음 마셔보는 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겁이 났지만 술자리를 지켰다. 벌칙엔 장기자랑, 술게임에는 이상한 제스처.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텼다. 익숙지 않은 한국어와 술 사이에서 눈치껏 반응했다.
기적처럼, 동기들은 나를 환대해 줬다. '누나, 언니'라 불리며 반말이 오갔다. 단체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며,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나도 그들 속에 들어왔구나. 이젠 나도 한국인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전날 나에게 친근하게 굴던 동기들은 다시 공손한 존댓말을 쓰고, 낯선 사람처럼 인사했다. '서온님, 반갑습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어제는 누구의 누나였고 언니였는데, 오늘은 그저 또 다른 신입생이었다. 술자리는 잠깐의 유희였고, 관계는 다시 0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술이 관계의 열쇠는 아니라는 걸.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락이고, 유흥이고, 지나가는 시간일 뿐이라는 걸. 나는 혼자만 너무 진지하게, 너무 비장하게 임했던 것이다.
이후의 술자리들에서도 나는 애를 먹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중국 관련 번역을 부탁했고, 어떤 이들은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저 '사람'으로 나갔지만, 그들은 내게 '국적'과 '배경'을 물었다. 때로는 내 얘기를 쏟아내 상대를 놀라게도 했다. 나는 미묘하고 복잡한 인간관계의 언어를 술 없이 익혀야 했다.
20대 후반, 나는 술자리에서 멀어졌다. 정체성은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술 없이도, 관계없이도 나는 나였다.
지금은 술이 무섭지 않다.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배웠고, 내 이야기를 알코올 없이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걸 안다. 냉장고 속 이슬톡톡은 이제 자주 마시진 않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두기로 한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관계의 기록이고, 어설프게나마 한국인이 되기 위해 애썼던 흔적이니까.
그리고 나는 오늘도, 술 없이도 충분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