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놀이터의 아빠

아이와 함께 노는 일, 그리고 사람 사이의 따뜻함

by 서담

이번 주말엔 아이와 무엇을 하며 보낼까.
부모가 된 뒤 늘 반복되는 고민이다.


다섯 살이 된 아들은 개구지고 장난기가 많다.
외동이라 혼자 하는 놀이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책도, 레고도, 미술놀이도 꼭 누군가와 함께해야 즐겁다.


낯선 어른이나 처음 보는 또래에게도 금세 말을 건네는,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면 자연스레 놀이터로 향한다.


아이는 친구를 사귀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러다 문득,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은근히 지루해진다.
핸드폰을 꺼내 들자니 마음이 불안하고,
다른 부모들과 어울리는 일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다 하나의 묘책을 발견했다.

‘아이가 되어 놀아보기.’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맨발로 밟고,
아이들 틈에 섞여 뛰어다닌다.
잡기놀이도, 괴물놀이도 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아이는 에너지를 다 쓰고, 나는 저녁을 조금 더 여유롭게 맞는다.


놀이터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신기함. ‘어른이 저렇게까지 놀아줄 수 있구나.’
둘째는 경계가 섞인 의아함. ‘젊으니까 가능한 거겠지.’
셋째는 무관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아마 그 셋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 조금 먼 단지의 놀이터를 찾았다.
파란 미끄럼틀, 파란 그네, 파란 조형물들.
나는 그곳을 ‘파란 놀이터’라 불렀다.

“마음에 들면 다음엔 ‘파란 놀이터 갈래요’라고 말해.”


아들은 다른 아이가 있는지 먼저 살폈다.

마침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빠와 함께 놀고 있었다.
그 아빠는 우리를 보자 가벼운 미소로 인사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웃음이었다.


아들은 금세 그 아이에게 달려갔다.
나는 멀찍이서 인사만 건네고 아이들 놀이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 아빠가 호주머니에서 젤리 하나를 꺼냈다.
손이 더러웠는지 입으로 물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가 아빠의 입에 물린 젤리를 한입 베어 먹는 모습이
묘하게 사랑스러웠다.


그때 우리 아들이 다가가 젤리를 향해 입을 들이밀었다.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자 그 아빠는 웃으며 우리 아이에게도 젤리를 한입 주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조심스레 눈짓했다.
‘괜찮을까요?’
그 배려가 고마웠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다음엔 허락을 먼저 받자.”

그 말 이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요즘은 자기 아이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남의 아이에게 무엇을 내어주는 일은 조심스러워진 시대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가볍게 서로의 마음을 건넸다.


아이들은 금세 함께 모래 폭탄을 만들며 놀았다.
나는 괴물 역할을 맡아 그들을 쫓았다.
웃음소리가 놀이터에 퍼졌다.


얼마 뒤, 그 아빠가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돌아왔다.
평소보다 훨씬 시원하고, 이상하게 맛있었다.


나는 요즘 고민하던 육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이가 때리거나 발차기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 아빠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럴 땐 바로 제지하고 눈앞으로 불러서 알려주는 게 좋아요.
멈출 때까지 반응을 멈추는 것도 확실해요.”


어쩌면 너무 허용적인 엄마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의심해오던 때였다.


그는 이어 말했다.
“엄마의 사랑은 아빠의 사랑이랑 조금 다를 수 있어요.
그래도 아이는… 이렇게 놀아주는 엄마가 있어서 정말 행복할 거예요.”

그 말은 조언이 아니라 위로처럼 들렸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료가 건네는 말처럼.


세 시간이 넘도록 아이는 신나게 뛰어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시 스치게 된다면,

꼭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네고 싶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놀이터의 바람에도, 커피의 향에도,
조용한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술 한 잔의 국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