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도장을 파러 간 적이 있다.
도장집에서는 종이와 볼펜을 내밀며 내 한자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그걸 받아보신 아저씨는
'이야~ 이름이 좋네요. 작명소에서 지었어요?'라고 하셨다.
나는 내 이름이 좋은지 나쁜지 모른다.
성명학에서 말하는 한자의 음양오행은 물론이거니와 한자라고는 내 이름밖에 잘 모르는 나였다.
한자 이름이 좋다면 필시 작명소의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름이 바뀐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집을 나가신 지 수년 째였고 연락은 드문 드문 하던 때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이름을 바꾸셨다고 했다.
학교에 바뀐 이름을 알렸어야 해서 그 기억이 난다.
이름을 바꾸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음은 그대로였고 한자만 바뀌었다.
그때 아버지는 당신의 이름도 같이 바꾸셨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 알던 아버지 이름과 지금 이름은 다르다.
아버지는 이혼 즈음 매우 괴로운 삶을 사셨다고 한다.
삶에서 안 좋은 일이 반복되면서 이름까지 바꾸셨던 것 같다.
사실 이름에 복이 있다고 하는데 지성인(?)으로서 대놓고 그걸 믿는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작명하시는 분들은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아버지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시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본다.
그래서 아버지의 나쁜 운이 사라졌을까?
나의 경우 결혼한 이후의 삶은 어릴 때에 비해 매우 순탄했다.
아버지의 경우도 재혼한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말년에는 행복감을 느끼신 것 같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삶이 고단하고 불운이 겹치자, 스스로 이름을 바꾸셨다.
혹시 이름을 바꾸면 괴로운 운명이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믿으신 것 같다.
반면 나는, 그런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뿐 아니라 자식의 운명까지 더 나아지길 바랐던 게 아닐까. 나만의 해석이다.
이름을 바꾸면서 운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좀 잘 살아 보려고 애는 쓰신 거다.
바뀐 한자가 서울 '경'자였다.
그래서 내 필명이 '서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