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왜 또?

상속 예금 인출

by 서울

어머니는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해 오셨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농사는 중단되었고 토지는 매매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마디로 돈이 없었다.

나의 주장으로 상속재산분할협의서에 얼마 안되는 남은 예금은 어머니가 갖기로 합의하였다.


몇 달 후 공유물분할소송을 대응하느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소유로 약속한 은행 예금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4~5개 은행에 예금을 찾으러 가셨으나 모두 거절당하셨다.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있음에도 상속인 전원이 은행으로 내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액 예금이 있는 지방은행의 경우 상속자 1인의 동의만 받아 오라고 했다.

나는 담당자와 통화하고 나의 동의서를 보내주었고 그 소액예금은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예금들은 찾을 수 없었다.


보통의 가족들은 부모 사망 후 상속자 모두가 동의하고 예금을 인출할 것이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보통 가족인가?

지금까지의 글로도 알 수 있겠지만 소송으로 날이 서 있는 형제들이 은행에 같이 가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었다.


은행들은 상속예금인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다.

상속인이 다수일 경우 반드시 상속인 전원의 내방과 동의 서명이 있어야 예금인출을 해준다.



이렇게 은행들이 인출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 가족처럼 분쟁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상속인의 일부가 상속지분만큼 예금을 인출하려고 해도 그 상속자들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확인 없이 은행에서 인출해 준 것으로 소송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은행들은 대부분 내규로써 이러한 전원 동의서를 받는 것이다.


민법상은 어떨까?

법에서는 상속인이 요구할 시 상속지분만큼의 예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은행 직원들도 그 법을 잘 알지만 선관주의 의무라고 주장하며 지급을 미룬다.


결국 고객에게 남는 선택지는 하나다.
소송.
은행은 법원의 지급명령 없이는 돈을 내주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예금보다 소송비용이 더 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다.
망인의 돈을 찾으러 가는 길이 싸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변호사는 지급명령을 신청하였다.

어머니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있었으므로 바로 지급명령이 내려졌다.

지급명령서를 받은 직후 대부분의 은행들은 예금을 지급하였다.


그럼에도 예금지급을 거절하는 은행이 있었다.

시중은행 OO은행이었다.

이 은행은 지급명령에 이의를 신청했다. (이 부분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기들은 내규를 따를 뿐 절대 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OO은행은 법원을 통해 나머지 상속자들에게 소송고지서를 보냈다.

소송고지서란 특정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음을 관계자에게 알리는 법적 통보다. 소송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이를 알려줌으로써, 당사자가 소송에 참여하거나 그에 따른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송고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송에서 법원의 소송고지는 나와 형제들이 받았다. 나는 어머니의 변호사를 통해 사실확인서를 냈다.

나머지 상속인들에게는 수취인불명과 폐문부재로 수개월동안 송달되지 않았고 결국 공시송달로 송달간주되었다.


OO은행이 주장하는 민법은 다음과 같았다.


피상속인의 예금은 상속인 전체의 공동재산이 된다. 이 상태에서는 모든 상속인이 공동으로 관리해야 하며, 개별 상속인이 자기 지분만큼을 인출하려면 다른 상속인의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지급 과정에서 신중해야 할 의무(선관주의 의무_ 사실 처음 듣는 단어였음)가 있다고도 했다.

사실상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어머니 측 변호사는 이렇게 대응했다.


상속 예금은 민법상 가분재산으로 지분 비율에 따라 개별 상속인이 자기 몫을 청구할 수 있다.


금융기관 내규보다는 민법이 우선하며, 민법상으로는 예금의 경우 상속재산분할 이전에도 상속인이 자신의 지분 범위에서 단독으로 은행에 인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경우는 전원동의 된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있었다.


부동산은 공유 개념이지만 금융재산은 각자의 소유다. 부동산은 나누기 어렵지만 돈은 쉽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분채권이라고 한다.

예금은 일단 서류상으로는 상속인 전체의 명의로 바뀌지만, ‘함께 관리해야 하는 돈’ 일뿐 실제로 다 같이 소유하는 건 아니다.

법적으로는 상속인 각자가 자기 지분만큼 ‘내 몫 주세요’ 하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쉽게 말해, 3명이 상속인이라면 각자 1/3씩 본인 몫만큼 은행에 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재판이 이어졌고

1년여 만에 어머니의 승소로 판결이 났다.


결국 은행의 보수성은 이해하지만, 상속인을 또 한 번 소송으로 몰아넣는 태도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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