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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Aug 23. 2023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카를이다」, 2021


당연히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한 줄 알았다. 그러다 얼마 전, 글을 돌아보던 중 아무리 봐도 이 영화의 제목이 보이지 않았다. 놓쳤다... 이 영화를 보던 시기에 너무 많은 영화들을 봤다. 서론이 길어졌다! 사실 엄두가 안 난다. 너무나도 무거웠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심리적으로 중압감이 상당했다. 왠지, 전에 썼던 <아마도 악마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카를은 나르시시즘이 강하다. 본인이 가장 중요하고, 본인이 가장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뭐... 자신에게 당찬 태도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태도 같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올바른 길로 갔을 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카를의 나르시시즘은... 이것과는 다르다. 그는 '나치즘'에 가깝다.


알렉스와 막시 부녀는 테러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알렉스의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오로지 가족에는 두 사람만 존재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정신을 유지하겠는가. 게다가 취재진들은 모두 막시를 담기에 바빴다. 배려도 위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카를을 마주한다. 본인을 배려하기 바쁜 모습의 카를을.


가장 힘든 순간에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어떻게 내칠까. 그리고 어떻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막시는 아버지 알렉스를 떠나 카를과 함께하게 된다. '나치즘'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게 된 것이다. 카를과 친구들은 오로지 타민족을 배척할 생각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을 함께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려고 하고, 또래 청년들을 모아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한다. 


영화 시작부에 알렉스 부부는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난민 청년 유수프를 도와준다. 그리고 이후 테러 사건의 범인이 중동 쪽이라는 말로 좁혀지고, 당연하게도 그를 의심하게 된다. 그 청년은 연락도 끊기고, 아무런 행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서서히 의심하게 됐다. 왜 없어졌을까, 그리고 왜 하필 그들이었을까. 그러나, 그저 배척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명을 했고,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온 마음으로 위로하고 함께했다. 굳건한 마음을 가지기란 참 힘든 일이다.


결국 카를과 친구들의 계획은 끝에 다다르고, 카를은 자살을 결심한다. 난민의 무차별 총격으로 둔갑시키기 위함이었다. 과연 카를이 막시를 진짜 사랑하긴 했을까, 허탈했다. 막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조차 없다. 그리고 총격과 동시에 총리 후보자는 라이브를 켜 상황을 전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 또, 전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난민들은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막시와 알렉스, 그리고 난민 유수프는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떠난다.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빛이 보였기 때문에 조금은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쪽에 더 마음을 두고 싶다. '이미 이러한 폭동이 일어났다는 것부터가 충분히 암울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찾아야 한다.


2023.6.23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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