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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Sep 03. 2023

지옥 속에서 구원을 바랄 수 있는가?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2023


'소련'. 이 국가의 이름 하나가 주는 위압감과 느낌은 뭐랄까, 서늘하다. 폐공장에서 나 혼자 서있는 기분이다. 그때의 무자비한 상황을 영화로 담아낸다면? 과연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압박감에서 나를 잡고 있을 수 있을까? 답은 이 영화로 찾아낼 수 있었다. 소련은 거대하면서도 좁았다.


볼코노고프 대위의 소속은 NKVD다. 이 영화는 NKVD의 행적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그 어느 한 장면도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 국민이자 인민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저 앞으로 죽을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어떻게든 모두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니 말이다. 이미 이곳은 지옥이다.


영화 도입부, NKVD 소속 누군가가 뛰어내리며 시작된다. 왜 그랬을지 충격에 빠져 약간의 공포에 휩싸여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위의 탈출이 시작됐다. 더 이상 충격에 빠져있을 시간이 아니었다. 그의 여정을 의심하지 않고 지켜볼 때였다.


그가 여정을 떠난 이유는 다름 아닌 '사과'를 하기 위해서다. 그가 그동안 NKVD로서 행했던 모든 학살에 대한, 진실을 담은 사과였다. 그의 모든 사과는 용서받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가 감수한 모든 위험은 마땅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모든 행적이 쫓기고,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럼에도 그는 용서를 빌기 위해 계속 떠난다. 


상관이 그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답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요.' 천국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죽고 난 후 사후세계가 편안한 천국에서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옥 같은 이 소련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천국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대숙청이 없어진 모습을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이었다면. 영화를 조금은 다른 결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유족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가 마무리에 접어들 때 즈음 그가 외쳤던, '당신 가족들 중 제58조로 잡혀간 사람이 없나요!'라는 이 한 마디가, 사실은 지옥에 갇힌 당신의 가족들을 구해달라는 의미였다면.


그는 끝내 천국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대위가 탈출하며 가혹한 고문을 동반한 심문에서 끝내 숨을 거두고 만 그의 동료 베레텐니코프가 이끌어준다. 단순 환각일 지도 모른다.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대위는 약해져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천국으로 이끌어줬다고 믿고 싶다. 지옥에 한 줄기 빛이라도 끌어오려는 대위의 노력이, 빛을 받길 바라는 마음이 한편에 있기에.


상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목적, 그리고 상관 본인의 마음을.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도, 그 기회를 줬기에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동정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그 순간에 진심을 담은 그의 선택만큼은, 조금은 존경스럽다. 암묵적으로 그도 천국을 향해 가는 여정에 함께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잡혀왔던 인민들이 모두 풀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모두가 풀려나고, 문은 다시 닫힌다. 그리고 조금 먼 미래에 NKVD도, 소련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곳에 잡혀있던 사람들이 풀린 것처럼, NKVD에 잡혀간 영혼들이 다시금 자유를 느끼게 되기를 빌어본다.


20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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