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파이어」, 2023
영화를 관통하는 요소가 있다. '산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잊지 못할 정도로 산불은 계속해서 언급되고, 존재한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산불은 필수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주인공 '레온'의 캐릭터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레온이 없었으면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레온이 어파이어의 시작이고 끝이다. 사회를 살아가며 겪게 될 모든 감정들을 레온이 보여준다.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리고 친숙하다. 흔히 얘기하는, 주변에서 보는 관점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이지만 막상 내 곁에 있으면 어려운 사람. 이 말만큼 레온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산불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영화 내에서도 볼 수 있었다. 멧돼지에도 불이 붙고, 넓은 들판에도 불이 붙고, 남은 건 앞으로 불이 붙을 땅들이었다. 이 말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머무르고 있던 곳은 안전지대였다. 바람은 반대로 불고, 불도 그에 따라 움직였으니까. 그러나 언제까지나 안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집 앞까지 재가 들어온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레온의 친구 펠릭스, 그리고 휴양지에서 만난 펠릭스의 친구 데비드. 둘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재가 날리던 그날. 마치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말과 같이 그들도 함께 휩싸였다. 아무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고, 막아서도 안 됐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함께였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나디아. 중심점 같으면서도 영화 외곽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디아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돌아가는, 조금 더 깊게 보면 사람과 교류하는 게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레온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존재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며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레온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여러 대사로 엿볼 수 있었는데, 이 또한 나디아의 한 마디로 잠깐이라도 자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감정적 발전까지도 이루었다!
볼 때 재미있는 영화가 있고, 보고 난 후에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는 말을 친구에게 들었다.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보는 내내 조금은 잔잔한 전개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다시금 영화가 시작된다. 나는 지금도, 레온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지 떠올린다.
영화 속 인물 한 명 한 명 모두가 입체적이라 글로는 차마 다 담을 수 없었다. 어파이어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고 또 보는 것이다. 그들의 복합적인 관계를, 그리고 모든 성격들을.
2023.9.15